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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형성 : 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B000025195 220.1 -21-1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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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어떻게 성서가 되었는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질문에 대한 흥미롭고 풍요로운 이야기들

“이 책에서는 성서의 기원에 관해 간단한 물음을 제기해 보려 합니다. 물음은 두 범주로 나뉘는데, 각각은 조금씩 겹치지만, 따로따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성서를 이루는 다양한 책들은 언제, 어떻게 저술되었을까요? 둘째, 이 책들은 어떻게 한데 모여 구약과 신약이라는 ‘경전’을 형성했을까요? 20세기 학자들은 이 중 두 번째 물음보다는 첫 번째 물음에 관심을 집중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성서라는 문헌을 가지게 되었는지, 성서가 어떠한 문헌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물음 모두 필요합니다.” - 본문 中

성서가 인류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이며 그리스도교(그리고 유대교)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서를 이루는 몇몇 책들의 내용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안다고 할지라도, 성서라는 ‘책’에 대해 아는 이는 의외로 그리 많지 않다. 경전의 무게감 때문인지, 하느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는 종교적 광휘 때문인지 사람들은 다른 책을 접했을 때 자연스럽게 묻게 되는 질문들(누가 기록했는가? 언제 기록했는가? 성서 기록은 언제 ‘경전’이 되었는가? 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언제 성서라는 ‘선집’으로 묶였는가? 그 목록은 언제 확정되었는가?)을 잘 던지지 않는다.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성서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 좀 더 입체적인 읽기는 불가능해진다.
옥스퍼드 대학교 오리엘 칼리지 명예교수로 구약학 분야와 정경 형성사 분야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존 바턴은 이 책에서 그동안 자신이 연구해 온 바를 반영하되 대중을 고려하여 쉽게 성서 문헌들이 처음 기록된 시점부터 시작해 책이 되고 경전으로 거듭나고 선집으로 모이기까지의 과정을 간결하게 기술한다. 바턴은 성서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암묵적으로 경계한다.
그리하여 성서란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기록일 뿐 아니라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류 문화의 자산임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성서를 신앙의 원천으로 삼는 그리스도교 신자뿐만 아니라 성서라는 인류 문화의 유산에 관심이 있는 인문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신선한 자극과 도움을 줄 것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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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12] 사람들은 ‘성서’Bible라고 알고 있는 책이 그리스도교 교회가 태동했을 때부터 정확히 지금 형태로 존재했으며 결코 변하지도, 의문시되지도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서구 문화에서 성서는 단일한 덩어리이지요. 성서를 진지하게 읽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이 책이 어떤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압니다. 성서라고 하면 모든 사람이 본문이 두 단으로 이루어진 한 권의 책을 떠올리지요. 그리고 성서를 이루는 책들은 어느 곳이든 같다고 생각합니다. 각 책의 이름을 모두 아는 이는 드뭅니다. 그리고 판본마다 구성이 다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주면 대다수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성서는 성서이고, 우리가 좋든 싫든 언제나 똑같은 모습으로 있었으며 언제까지나 그러할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성경’이라는 관념에는 이 경전이 완전하고, 고정되어 있으며,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있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은 성서를 하느님이 주셨다고 생각하고 바로 여기서 성서의 권위가 생깁니다. 이는 결코 타협할 수 없으며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분명 이로운 일이지요. 자신들의 신앙이 모래 같은 인간의 가르침이 아니라 반석 같은 하느님의 계시 위에 놓여 있다고 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결과 성서는 2차원적으로 변할 수 있으며 평범한 책이 지니는 깊이와 다양성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P. 78] 과거에 ‘성서’The Bible는 한 권의 책 제목이 아니라 소규모 서고를 가리켰을 것입니다(‘바이블’bible이라는 영어 단어는 ‘비블리아’βιβλ?α라는 그리스어 단어에서 나왔는데, 이는 복수형으로 ‘책들’을 뜻합니다). 오늘날 유대교 회당은 이러한 고대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를 일컫는) 모세 오경은 지금도 두루마리 다섯 개에 기록해서 ‘성궤’ark라 불리는 장에 보관했다가 안식일마다 예배 중 독서를 위해 꺼냅니다. 그러나 평소에는 그리스도교인들처럼 한 권, 또는 하나의 ‘코덱스’codex로 된 성서를 씁니다.
[P. 89~90] 네 편의 복음서는 각각 어떤 특정 지역의 교회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설명하는 권위 있는 글로 세상에 나왔을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의 복음서가 로마 교회와 관련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태오의 복음서는 시리아에서, 루가의 복음서는 (지금의 터키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에서, 요한의 복음서는 에페소에서 형성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형성 단계의 복음서에는 제목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코의 복음서 첫 문장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그리스어 ‘에우앙겔리온’ε?αγγ?λιον, 즉 ‘좋은 소식’)의 시작”은 사실상 제목 역할을 하지요. 대다수 그리스도교인은 자신들의 교회 이외의 다른 교회에서 다른 복음서를 읽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원후 1세기 말부터 2세기 초 그리스도교인들이 복음서의 관계를 어떻게 인식했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저자들은 복음서를 인용하곤 했지만, 자신이 인용하는 복음서가 어떤 복음서인지, 이 복음서에 담긴 정확한 표현은 무엇인지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으며, 보통 기억에 의존해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