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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莊子)의 비밀정원 : 김호운 장편소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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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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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운 작가의 장편소설로 장자의 ‘나를 죽여야 나를 찾는’ 오상아(吾喪我)의 세계를 소설로 구성하고 있다. 오상아의 세계란 사람이 행동하고 의식하는 데 있어서 제약과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없애 버린 완전히 자유로운 경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닌 마음, 욕망, 감정 같은 것을 모두 없애 버려야 한다. 심지어는 자기의 의식이나 존재까지도 잊어야만, 즉 나까지도 죽여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장자의 비밀정원』은 요·순시대, 춘추전국시대 등 이곳저곳을 비행하는 나비를 화자로 내세워 ‘사람답게 세상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장자의 철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화자인 나비가 네 곳의 비밀정원을 드나들며 욕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본성으로 살아야 한다는 ‘장자의 길’을 통해, 장자가 꿈꾸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그 비밀정원에는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행복과 불행, 작은 것과 큰 것, 길고 짧은 것, 귀함과 천함, 쓸모 있고 없고,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까지도 상대적 개념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인물들의 기발한 비유와 직설적인 표현을 통해 생생하게 형상화하고 있다.
장편소설 『장자의 비밀정원』에는 풍부한 상상과 뜻의 함축이 느껴지고 뛰어난 기지와 풍자가 넘친다. 특히 장자가 자기의 사상을 증명하기 위하여 다른 일에 빗대어 얘기하는 우언寓言의 비유가 짜릿한 재미와 서늘한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사람이라고 해서 만물 가운데에서 특출한 것이 못 된다는 직설에는 전율과 통쾌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작가는 『장자의 비밀정원』에서 자르고 붙이면서 다듬는 인간의 머리가 논리나 경험에서 오는 감정에 얽매이며 살아가는 ‘앎’을 경계하면서 과감히 부수어버리는 길을 보여준다. 그것이 ‘완전한 자유의 경지’이며, 그것은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행위의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작위도 없는 무위의 경지에서 인간과 자연이 완전히 합치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장자의 길’은 현대인들의 현대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데 있어 큰 시사점이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본성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작품을 펴낸 작가는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이 땅에 ‘장자의 정원’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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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지도리다. 내가 나비가 되어 지도리에 왔듯이, 물고기 곤이 붕이 되어 하늘을 나는 건 변화다. 곤은 원래 작은 물고기 알이었다. 이 작은 알이 큰 물고기 곤이 되고, 곤은 다시 큰 새 붕이 되어 구만리(九萬里) 하늘을 날게 되었다. 장자는 이 화이위조(化而爲鳥
새가 되다. 즉 새로운 것으로 변하다)에서 하나의 길을 전하고 있다. 알에서 곤이 되고 붕이 되듯, 모든 사물은 원래 모양이 없고 변화가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틀(이름)을 만들어 모든 걸 그 안에 가두고 변화하지 않는 모양을 만들려고 한다. 장자는 이것을 경계하며 “그 틀을 깨고 나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라!”고 외치고 있다. 그렇게 가는 길이 道(도)다.
참새들이 일제히 웃었다. 나도 하마터면 쿡 하고 웃을 뻔했다. 부리에 깃털 날개까지 단 녀석이 나비라고 하니 어이가 없다. 아, 웃을 일이 아니다. 나도 내가 나비라고 믿고 있지만, 내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나는 한 번도 날개 달린 내 모습을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전에 나는 사람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나비 모습인지, 아니면 사람 몸에 나비 날개가 달렸는지 알 수 없다. 저 참새들에게 아직 들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 뭔가 다른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웃을 일이 아니다. 나는 얼른 날개를 최대한 움츠렸다.
비밀조직에 가담한 참새와 벌떼들이 모르는 일이 있었다. 성과를 이루지 못하거나 색깔이 희미해서 보안이 취약해진 참새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아미스타트(La Amistad) 호에 태워 암시장에 내다 팔았다. 용도 폐기다. 겉으로는 본인이 실수하여 참새잡이 그물에 걸려 희생된 것처럼 위장했다. 아미스타트, ‘우정’이라는 뜻이다. 악어의 눈물처럼 잔인한 폭거를 달콤한 우정으로 위장한 노예선이다. 참새들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 그렇게도 조작한다. 아미스타트 호를 탄 참새들은 결국 참새구이 식당이나 포장마차에서 소주 안주가 된다. 이것도 모르고 참새들은 죽자 살자 반대편 인사를 공격해 대고 있다. 벌떼도 마찬가지다. 용도 폐기된 벌들은 봉침 용으로 팔리거나, 소주병에 담가 벌술을 만들어 주당들에게 판다. 혼돈 대왕이 다스리던 중앙은 이렇게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모두 갈망하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