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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락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B000030629 823 -21-591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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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그가 말했다. “오래전에, 내 안에 무언가 있었어. 그런데 이제 그것들은 사라졌지. 영원히 사라져 버렸어, 이젠 가 버렸어. 울 수가 없어. 아무렇지도 않아. 더 이상 그건 돌아오지 않아.”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할 만큼 스콧 피츠제럴드에게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피츠제럴드는 한동안 나의 스승이자, 대학이자, 문학 동료였다.” 그래서였을까? 하루키의 대표작 『노르웨이의 숲』은 주인공 와타나베가 비행기 좌석에 앉아 지금까지 살아오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을 회상하면서 시작한다.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난 사람들, 돌이킬 수 없는 추억들… 이 모든 것은 피츠제럴드가 자신의 소설들을 통해 즐겨 다루었던 주제들이다.

살면서 아무것도 잃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해서 결국은 누구나 젊음을 잃어가게 마련이다. 사랑, 건강, 가족, 부, 명예와 같은 가치들이 행복이나 성취감을 동반하며 삶에 머물렀다가 사라지곤 한다. 피츠제럴드는 일찌감치 인생의 이러한 속성을 간파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문장으로 표현해 낸 작가였다. 그가 써 내려간 수많은 단편 소설은 이러한 그의 세계관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본 단편집 『행복의 나락』에 수록된 다섯 작품들은 ‘퇴색되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삶의 표면을 멋지게 그린다는 편견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그가 삶의 표면을 눈부시게 그린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그의 전부는 아니다. 환상은 환멸과 샴쌍둥이이기 때문이다. 환상을 좇는 자는 반드시 환멸에 머리를 박게 되어있다. 피츠제럴드는 찬연하게 빛나는 삶의 표면 아래 처절한 환멸의 구렁텅이도 기가 막히도록 잘 그리고 있다.
『행복의 나락』에 실린 단편들은 환상과 환멸이라는 샴쌍둥이를 잘 그리고 있다. 주로 아름다운 여인을 좇는 남자의 환상이지만, 아름다운 남성을 좇는 여자의 환상 (새로 돋은 잎) 역시 다루고 있다. 불과 세 시간에 걸친 환상과 환멸의 변주 (비행기 환승 세 시간 전에)가 있는가 하면, 수십 년에 걸쳐 환상이 환멸로 변하는 경험 (겨울 꿈과 오, 붉은 머리 마녀)도 실려 있다. 환상으로 시작해 환멸로 끝난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삶에서 환상에 환멸이 따라오는 전개는 시간 순이지만, 우리 삶의 의미는 시간 순과 무관하지 않은가. 피츠제럴드는 환멸을 겪으면서도 환상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인물들을 창조해 내었고, 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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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3] 서른다섯 살에서 예순다섯 살까지의 세월은 설명할 필요 없는 혼란스러운 회전목마처럼 수동적으로 사는 멀린 앞을 스쳐 돌아갔다. 회전목마 같다는 건 적당한 비유다. 엇박자로 달리거나 숨 가쁘게 삐거덕거리는 말들이 돌아가고, 애초에는 파스텔 칼라였으나 이제는 칙칙한 회색과 갈색으로 바랜 모습이 곤혹스러우면서 참을 수 없이 어지러운 회전목마다. 어린 시절이나 십 대 시절의 회전목마와는 절대 같을 수 없었고, 특정 구간을 달리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청춘의 롤러코스터도 이와 같을 수 없다. 대부분의 남녀들에게 이 30년의 세월은 점차 인생에서 물러나는 일로 채워진다. 처음에는 젊음의 무수한 즐길 거리와 호기심으로 가득 찬 수많은 피난처가 있는 앞자리에서 물러나서는, 피난처가 훨씬 줄어든 줄로 후퇴하는 것이다. 여러 야망이 사라지며 한가지 야망만이 남게 되고, 여러 오락거리가 한 가지 오락거리로 줄고, 많은 친구들이 소수의 친구로 줄어들다가 그들에게도 무감각해진다. 그러다가 마침내 강하지 않은데 강한 자가 되어 고독하고 황량하기 그지없는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는 포탄들이 지긋지긋한 휘파람 소리를 내지만 그 소리조차 거의 들리지 않고, 두려움과 피로를 반복하면서 우리는 주저앉아 죽음을 기다린다.
[P. 90] 때때로 하룻밤 혹은 이틀 밤 잠을 못자면 눈을 뜬 채 악몽을 꿀 때가 있다. 새로 돋는 태양과 더불어 엄청난 피로감이 급습하면서 주변 삶의 질은 확 달라진다. 누군가 영위하던 삶이 알고 보니 그저 삶의 가지에 돋은 순에 불과하고, 그저 영화나 거울처럼 삶을 비추며 사람들, 거리들, 집들은 아주 희미하고 혼란스러운 과거가 투사된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적으로 명료하게 확신하게 되기도 한다.
제프리가 아픈 첫 몇 달 동안 록산은 그런 상태였다. 록산은 완전히 녹초가 되었을 때만 잠을 청했고, 구름이 낀 것 같은 상태로 눈을 떴다. 차분한 목소리로 이어지는 기나긴 진찰, 복도에 희미하게 배어드는 약 기운, 한때 수많은 즐거운 발자국 소리가 울려 퍼졌던 집안을 걸어 다니는 갑작스러운 까치걸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함께 누웠던 침대에서 베개를 베고 누운 제프리의 하얀 얼굴, 이 모든 것들이 그녀를 짓눌렀고, 돌이킬 수 없이 늙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