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야자와 겐지 컬렉션 첫 권에 부치는 말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 미야자와 겐지의 기도‘미야자와 겐지 컬렉션’ 첫 번째 책은 『비에도 지지 않고』입니다. 이 작품을 첫 권으로 꼽은 것은 이 시가 겐지의 삶과 철학을 응축하여 보여 주고 있으며, 지어진 지 9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본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고난이 닥쳤을 때, 이 시를 읊으며 위안을 받고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으로 삼아 왔습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워싱턴에서 영어로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이 시에는 지금 사는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화경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이 시에는 자신보다 남(중생)을 먼저 구원하고, 죽은 뒤의 ‘극락정토’보다 지금 사는 세상을 ‘불국토’로 만들어야 한다는 법화경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겐지의 고향 이와테현은 해마다 자연재해가 잦아 농민들은 늘 힘겨운 삶을 살았고, 겐지는 가난한 농민을 상대로 돈을 버는 가업에 평생 죄의식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던 중 열여덟 살 때 『법화경』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고는 몸소 법화경 사상을 실천해 나갑니다. 그리고 그 사상을 사람들에게 쉽게 전하기 위해 이른바 ‘법화문학’을 창작하지요. 겐지의 근본 사상에는 법화경의 가르침이 깊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것이 시와 동화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며 그의 문학세계를 형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31년 11월 3일, 겐지는 죽음을 예감하고 유언과도 같은 「비에도 지지 않고」를 수첩에 급히 써 내려갑니다. 1928년 결핵을 진단받고 병을 앓아 온 시인이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과 눈과 더위도 거뜬히 이길 수 있는 건강한 몸을 소망한 것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겐지는 사람들을 위해 동서남북으로 달려가 위로하고 중재하고 짐을 대신 짊어지는 희생과 실천의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 욕심 없는 삶, 희로애락에 휩쓸리지 않는 바보 같은 삶을 꿈꾸었지요. 하지만 마지막에 이르러 “칭찬도 받지 않고/힘들게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목에서는, 잦은 병치레로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던 겐지의 아픔이 느껴집니다.
“겐지의 철학과 실천의 다짐이 담긴 『비에도 지지 않고』는
앞으로도 깊은 울림을 남기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이 그림책의 특징은 겐지 철학과 잘 어우러지는 독특한 그림에도 있습니다. 세계적인 염색작가이자 화가인 유노키 사미로는 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시의 핵심을 그렸지만 독자에게 강요하지 않습니다. 밝고 명랑한 색채는 요란하지 않게 부드러운 생기를 불어넣고, 단순한 선과 여백은 오히려 많은 생각을 불러옵니다. 예술가로서, 인간으로서 화가의 깊은 연륜과 통찰이 시 세계를 더 풍부하게 해준 덕분입니다. 겐지의 철학과 실천의 다짐이 담긴 『비에도 지지 않고』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기며 힘이 되어 줄 것입니다.
-박종진(미야지와 겐지 연구자, 근대아동문학사 연구자, 번역가)
[미디어 소개]☞ 한겨례 2020년 2월 21일자 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