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후반전, 인생의 제2막을 여는 시니어 세대를 위한 한시 산책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여, 인생 이모작을 노래하라!
아침에 일어나 직장으로 출근하던 일상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다. 옷차림도 호칭도 바뀐 낯선 삶, 딱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이 관계빈곤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자식에게는 아직 한참 들어갈 돈 천지고, 설령 출근을 하더라도 정년퇴직에 명퇴 압박까지 눈치 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 책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는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 청년과 노년 사이, 가족과 인간관계 사이에 ‘낀’ 50+ 세대에게 본격적인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보낸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50+ 세대는 겨우 절반을 넘어섰을 뿐인 나이이니, 새로이 주어진 ‘제2의 인생’을 찾기 위한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한 새로운 자아 정립과 탐색의 과정을 먼저 경험하고 노래한 이백, 도연명, 소동파, 백거이, 두보, 두목, 유종원 등의 시와 시인의 삶을 통해 치유받기를 바라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다. 인생 이모작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와 삶을 소개하면서, 특별히 시정화의詩情畵意의 맛을 느낄 수 있게끔 시와 그림이 함께한다. KBS 제1라디오 <행복한 시니어> 코너에 1년간 방송한 원고를 다듬고 보충하여 책으로 묶었다.
석양은 한없이 아름다운데, 어쩌나 황혼에 가까운 것을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 50+ 세대, 인생의 가을이라는데, 화려한 단풍은 고사하고 다가올 겨울 걱정에 몸만 움츠러집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 어찌 살아가야 할까, 허허로움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해질녘은 성찰과 미학의 시간입니다. 낮과 밤이 산문의 시간이라면 해질녘은 시의 시간이지요. 시는 우리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고무하여, 고독한 자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사랑하는 자를 더욱 사랑하게 만듭니다. 시인들의 분신인 시를 만나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우리 시대의 해질녘 정서와 비전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무는 황혼인생이라 말하지 마오, 붉은 노을 되어 하늘 가득 물들였으니 莫道桑榆晚, 爲霞尚滿天 여기 5000년 중국 시의 나라에서 인생 이모작을 노래한 시인들의 시와 삶을 소개합니다. 천재 이백과 이백 버금가는 술꾼 도연명, 달밤을 거니는 두보와 긍정맨 소동파, 천만고독의 유종원, 버리고 내려놓고 비웠던 백거이, 살구꽃 마을의 두목까지 재 속에 빠알간 열정 하나 간직한 채 때로는 유유자적, 때로는 치열하게 살아간 시인과 그들의 시를 통해 제대로 사는 법을 들여다봅니다. 우리나라의 걸출한 문사文士 이황, 정약용, 이색, 이규보, 소세양, 변계량 등과 초의선사의 시도 함께합니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詩中有畵 畵中有詩 송대宋代 소식蘇軾(소동파)이 왕유王維의 시와 그림을 보고 “詩中有畵 畵中有詩(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라고 평한 말은 유명합니다. 이 책 『서리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어라』에서는 시와 그림이 액자처럼 독립되어 시의 세계에 더욱 깊숙이 스며들 수 있도록 중국 역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구영仇英, 당인唐寅, 문징명文徵明, 석도石濤, 마원馬遠, 왕휘王翬, 화암華嵒 등의 그림 59점을 함께 수록했습니다. 시를 통해 확장되는 무한한 상상력이 그림이 되고, 그림 속의 정의情意를 통해 시의 세계에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경지를 맛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책속에서
[P.8~9] “석양은 한없이 아름다운데, 어쩌나 황혼에 가까운 것을.”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시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의 구절입니다. 세계와 자아의 황홀한 합일, 그 잠정暫定된 시간과 예고되는 결말, 도취와 각성, 탐미와 회한이 함축된 이 시구는 지상의 모든 존재와 그 역정을 압도하는 거대한 일모日暮를 우러러 노래한 천고의 절창으로 회자되고 있지요. 석양과 황혼이 광대하게 어우러지는 해질녘은 성찰과 미학의 시간입니다. 탄성과 탄식의 시간이기도 하고, 일탈과 감흥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낮과 밤이 산문의 시간이라면 해질녘은 시의 시간인 것입니다. 그런 해질녘에 아니 해질녘의 그런 정서로 고즈넉이 세계와 삶을 사색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를 읽고 또 시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지은이 서문)
[P. 25~26] 모든 결실의 과정에는 저마다의 아픔과 슬픔이 석류처럼 알알이 박혀 있습니다. 누런 황금벌판 저 너머 수확 뒤에 잉태된 텅 빈 들녘, 공허가 하늘 끝까지 이어지는 일모에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스치며 지나갑니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손에 쥐어진 초라한 삶의 성적표에 밤잠 설치며 텅 빈 거실을 서성입니다. 화려했던 그 시절과 대비되는 초라한 지금이 서러워 이리저리 뒤척이며 가슴앓이 하다가 새벽하늘에 외로이 걸린 달이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슬픔과 허무, 패배감과 울화가 조수처럼 밀려올 때 어떻게 하시는지요. 저는 종종 1200년 전에 활동하였던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술잔을 들며對酒」를 읊조리곤 합니다. “달팽이 뿔 위에서 무엇을 다투는가/부싯돌 불꽃처럼 짧은 순간 살거늘/풍족한 대로 부족한 대로 즐겁게 살자/하하 웃지 않으면 그대는 바보.”
[P. 33~34] “스스로 물어본다 난 어찌 이렇게 마음이 편한가를” “내 마음 절로 위안이 되니/늙었어도 여전히 살맛나는구나” 네……, 백거이는 자신의 삶을 폭넓게 통찰하면서 스스로 만족하고 있네요. 아주 겸손하고 지혜롭지요. 백거이는 자신에게 타이릅니다. 월급은 많지 않지만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지 않는다. 밥은 수양산에서 굶어죽은 백이보다 훨씬 배불리 더 잘 먹고, 수명은 일찍 죽은 안회보다 곱절이나 살았다. 재산은 가난뱅이 검루보다 백 배는 더 많다. 술은 도연명보다 넘치게 마신다. 여기서 백거이가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백이, 도연명, 안회, 검루는 지조나 덕행 방면에서 후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지만 백이는 굶어죽었고, 도연명은 맘껏 술 마실 형편이 못 되었고, 안회는 일찍 죽고, 검루는 평생 변변한 집 한 칸 없이 지낸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백거이는 생각합니다. 인격적으로는 자기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 복은 자기보다 훨씬 못하다고요. 그래서 행복하다고요. 그중에서 한 가지만 갖추어도 괜찮은데, 네 가지를 모두 갖추었으니 정말 행복하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