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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8, 마을을 살리는 먹거리 운동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B000035854 307.72 -21-33 v.8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B000037156 307.72 -21-33 v.8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글로벌 먹거리 제국에 의해 전 세계 농민-농업-농촌이 재식민화되는 상황에서, ‘지구 환경-농민-농업-농촌의 상호지속’을 추구하는 먹거리 운동은 무엇보다 ‘마을’이라는 삶의 터전을 중심으로 먹거리 순환 관계망’을 살리는 맥락에서 실천되어야 함을 제안한다. 안전한 먹거리와 먹거리 주권을 위해 전개된 기존 대안 먹거리 운동의 세부와 문제점을 점검하고, 자기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유통-소비 관계에 저항하는 농민 재조직을 통해 먹거리 문제에 근본적으로 접근할 실천 방안을 모색한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쟁점인 공정과 평등의 문제를 참신한 관점에서 조명하는 시인이자 건축가 함성호의 특별기고, 유행처럼 사용되는 ‘거버넌스’라는 용어가 지닌 개념적 실천적 함의를 탐구하는 철학자 유대칠의 두 번째 연재문, 30여 년간 전국의 장터를 기록해온 사진가 정영신의 사진 14점, 평생 농민으로 사셨던 부모님의 유물인 농기구들을 그린 김학량의 그림 7점, 지젝과 아감벤의 신간을 통해 팬데믹 상황이 인류에게 요청하는 성찰적 실천을 명쾌하게 다룬 장정일의 서평을 담았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다시 던지는 질문

1

농업은 단지 먹거리를 생산·공급하는 경제적 역할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전체 관계를 형성하는 생태적 결정력을 지니고, 경제 지표로 수치화될 수 없는 공공적 가치를 생성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 하의 국제 교역에서조차도 농업은 각 국가에 의해 보호되어왔다. 그러나 1980년대 신자유주의 이후 농산물 보호무역 정책이 약화되고 우루과이라운드의 다자간 협상을 계기로 농화학 기업들이 초국가적 지배력을 전 세계 농업에 행사하게 되었다. 이후 농민과 농촌은 ‘먹거리 제국’이라고 불리는 이들 기업자본에 의해 ‘재식민지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항해서 먹거리 주권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대안 먹거리 운동들이 친환경 농산물 생산–유통–소비를 중심으로 시도되어왔다. 그러나 이 운동은 자본주의 시장이 설정한 먹거리(상품)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에 바탕한 기존 농산물 유통 체계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투쟁하지 않고 지속되면서 대규모화·제도화되어 운동력을 상실했다. 오히려 대규모 단작 영농이라는 자본주의적 영농 방식을 써서 충분한 물량을 공급해줄 수 있는 대농에게 매출액의 대부분을 넘겨주는,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양극화 현상을 농촌에서 심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기까지 하다. 이 문제는, 자본주의 유통 체계가 각자의 이윤 극대화를 목적으로 부여하는 ‘상품 생산자–유통자–소비자’라는 역할 회로로부터 먹거리 운동 주체들이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전에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
우리는 모두 먹거리를 먹고 산다. 농민은 농사를 지어서 먹거리를 생산한다. 농업은, “살아있는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를 변화시키는 ‘공동 생산’ 활동”이다(얀 다우 판 더르 플루흐, 『농민과 농업』, 따비, 2018, 김정섭 옮김, 1장). 마을 즉 농촌은 이런 비자본주의적(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계에 전적으로 포섭될 수 없는) 생산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인류문명 이래 지속되어온 이 본원적 연관은 우리에게, 이윤을 목적으로 상품의 생산자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유통 관계가 아니라 지구 환경–농민–농업–농촌의 상호지속, 즉 마을이라는 확장된 맥락에서 먹거리 문제에 접근할 것을 요청한다.
이런 문제의식에 바탕해서, 『마을』 8호는 먹거리 문제에 대응해온 다양한 대안 운동들이 종국에 처하고야 마는 곤경의 원인을 진단하고 먹거리 운동을 추동할 질문을 다시 던지려 한다. 마을을 살리는 먹거리 순환 관계망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2
트임의 글들은 각 필자에 따라 구체적 내용은 다를지라도 기존의 대안 먹거리 운동과 먹거리 정책의 문제를 인식하고 마을을 살리는 먹거리 순환 관계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을 공유한다.
구자인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반한 현대 농산물 유통 체계가 낳는 모순들을 비판하면서, 농촌사회의 내발적 발전이라는 포괄적 맥락에서 먹거리 문제를 바라보기 위한 방편으로 지역자급론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먹거리 운동이 마을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역자치에 기반한 지역자급 관계망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기존 먹거리 운동의 내용을 정책화한 문재인 정부의 푸드플랜(먹거리 전략)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며 해결 방안을 제안한다.
송원규는 세계화 이후 주류 먹거리 체계에 대항하는 먹거리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과 문제의식을 정리하고, 기존 먹거리 운동의 다양한 논점과 실천 및 한계, 개별화·제도화되는 기존 운동이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고 연대를 강화할 수 있도록 통합을 시도하는 최근의 운동 흐름을 사회역사적 맥락에서 개관한다.
정영환은, 유통을 중심에 둔 생산자 조직의 대형화와 관행화로 인해 농촌 현장에서 중소농민들이 처해 있는 위기 상황을 농민의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짚고, 기존 농산물 유통 체계에 포섭되어가는 개별 생산자나 단체의 집단이기주의가 마을의 공통적 가치를 손상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안한다.
박진희는, 10여 년의 귀농 생활 동안 경험한 부익부 빈익빈의 적나라한 현실을 짚는다. 특히 ‘가족소농’과 ‘마을공동체’라는 용어가 기존의 소비자 중심 먹거리 운동과 정책 결정자 등 외부자의 시선에 의해 지나치게 이상화(대상화)되어 결코 그렇게 살 수 없는 농민과 농업이 처한 현실을 은폐하는 현상을 지적하고, 먹거리 정의의 시작은 마을을 돌보는 일 즉 노인돌봄과 농민돌봄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구점숙은, 단작화된 대농 중심의 생산·유통 체계에서 배제되는 여성 소농들을 조직한 먹거리 운동으로 평가되는 언니네텃밭 제철꾸러미 사업을 10여 년간 운영해오면서 부딪힌 어려움의 세부를 정리한다. 그리고 마을과 지역에서 생산되는 먹거리를 우선 마을과 지역 내부의 먹거리 취약 계층에게 제공하는 먹거리 순환 관계망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정은정은, 도시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협이나 로컬푸드, 학교급식 운동 등 이른바 ‘대안’ 먹거리 운동이 방향성을 잃어버리는 현상들을 예리하게 묘파하면서, 먹거리 운동의 본령은 어렵고 힘든 이들의 밥상을 지키는 것이어야 함을 역설한다.
홍연아는, 기존의 농식품 유통 체계 내에서 세계 총 곡물 생산량의 절반에 달하는 먹거리가 식탁에 오르지 못하고 버려지는 놀라운 상황을 분석하고, 농식품 폐기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발생을 억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벼림에서는, 이번 호의 기획 주제를 실천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제안되는 ‘먹거리 순환 관계망’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 것인지를 좌담자들의 활동 경험과 성찰에 입각한 관점에서 논의한다. 트임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내용들이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논의되므로,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스밈에서 복권승은, 오일장과 난장에서부터 오늘날 기획된 텃밭장터에 이르는 마을시장의 변천사와 권할 만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대농들을 위한 로컬푸드 정책에서 소외되어온 소농들을 위한 장터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정민철은, 국가의 정책적 필요와 대중의 욕망에 따라 농촌에 덧씌워지고 소비되는 이미지들의 틀에 갇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실천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여전히 지배적인 ‘농촌이라는 내부’와 ‘도시라는 외부’로 규정지어진 이분법적 틀의 경계, 변두리에서 수행해야 할 성찰과 모험의 윤리를 제안한다.
특별기고에서 함성호는, 2017년 일어난 인천국제공항 사태가 우리 사회에 일으킨 공정과 정의를 둘러싼 논란의 함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서유럽과 동아시아 문명사의 맥락, 맹목적 자유주의를 선택한 미국에서 구성된 정의와 공정 이론들을 검토한다. 인국공 사태는 이 두 문명과 미국 발 담론이 충돌하는 한국 사회가 겪을 수밖에 없는 증상임을 밝힌다. 그리고 과거제도에 함축된, 능력주의와 수신修身을 통해 존중과 인정, 사과와 관용이라는 공동체의 덕을 함양함으로써 형성되는, 공동체의 이상을 실현하는 개인으로서의 ‘나’라는 흥미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마을을 위한 개념어사전의 두 번째 연재에서 유대칠은, 어디에서나 등장하지만 그 뜻이 또렷하지 않은 ‘거버넌스’라는 용어의 개념을 철학적 맥락과 실제 사례들을 통해 알기 쉽게 조명한다.
서평에서 장정일은, 지젝과 아감벤이 제시하는, 팬데믹 상황이 인류에게 요청하는 철학적 성찰의 내용을 다룬다.
포토에세이와 지상전시에 귀중한 사진과 그림 들을 주신 정영신, 김학량 선생을 비롯한 모든 필자와 좌담자, 그리고 마을학회 일소공도와『마을』을 지지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 박영선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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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6~17] 지역자급이라는 개념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관련 체계(자원이용 체계)의 한 형태로 먹거리나 생활 자재 등의 생산·유통·소비를 일정한 공간 안에서 행하는 것”으로 좁게 정의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사는 지역사회와 자연의 상호관계를 강조함과 더불어, 지역사회 내부의 순환적 관계도 동시에 주목한 정의인 셈이다. 대체로 지역의 자급을 ‘지역 내에서의 100% 공급’으로, 반면에 지역의 ‘자립’은 100% 자급에서 100% 의존까지 다양‘하다고 구분하는 경향이다. 하지만 자연과의 순환적 관계를 강조하면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성도 고려하기 위해서는 ‘자립’보다 ‘자급’이라는 용어가 훨씬 더 명확하다.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상품으로 생산–
[P. 30] 판매–
[P. 42~43] 소비되는 유통 중심 사회다. 자연계는 (물과 바람, 태양에너지 등의 흐름으로 금방 알 수 있듯이) 에너지법칙과 엔트로피법칙에 따라 항상 역동적으로 움직인다. 따라서 본디 100% 자급사회란 있을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옛날 농촌도 완전한 폐쇄 경제, 즉 100% 자급자족 상태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쌀을 비롯한 지역에서 농사지은 먹거리들은 한편으로 가장 중요한 현금 소득원이기도 했다. 농민들은 ‘파는 사람이 사는 사람’이기도 한 오일장에 나가 농산물이나 장작·석탄·가마니 등을 팔아 부족한 물자나 현금을 보충했다.
바람직한 자급 수준은 생산되는 농산물이나 생활자재, 교육·의료·돌봄·소방 등 서비스의 종류에 따라 다르며, 자급 대상의 양적·질적 측면과 관련 있다. 농촌의 지리적 특성(산촌, 평야지대 농촌, 근교 농촌, 어촌)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다. 자급의 공간적 범위를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가라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이처럼 다양한 조합에 따라 바람직한 자급 수준이 정해질 수 있다. 지역의 토지와 사회 환경의 수용력carrying capacity을 고려하면서,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기 위한 전제로서 자급률 수준을 높여가야 할 것이다. 유기농산물 중심의 생협 운동에서 보듯이 원거리 이동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또 생협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농촌일수록 지속가능성 면에서 위험할 수 있다. / 구자인
역사적으로 산업적 먹거리 체계가 강화되고 이로 인한 폐해가 분명하게 드러나면서 먹거리 운동도 변화 혹은 진화해왔다. 먹거리를 매개로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먹거리 운동은, 주류 먹거리 체계에 저항·대항하는 운동이라는 정체성을 지닌다. 즉, 주류 먹거리 체계로 인한 문제점을 선명히 드러내고 대안적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시기별로 먹거리를 둘러싼 사회적·경제적·생태적 문제를 중심으로 운동의 내용과 형식을 구성하게 된다.
먹거리 운동들은 당연히 각 국가와 지역의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세계화가 진전되고 산업화된 먹거리 체계가 보편화되면서 대부분 국가에서 비슷한 문제점을 드러내기 때문에 상당히 유사해질 수밖에 없다. 이 절에서는 세계화 이후 지구적 먹거리 체계global food system에 저항하는 최근의 먹거리 운동을 다루기 때문에 국가와 지역에 따른 특수한 맥락은 고려하지 않았다. 먹거리를 둘러싼 사회적·경제적·생태적 문제의 부상에 따라 새롭게 시작되고 활성화되며, 때로는 쇠퇴하고 다른 운동과 협력하며 통합적 운동을 모색하기도 하는 다양한 먹거리 운동의 등장과 확산을 살펴보자. / 송원규
농민의 가치는 당연히 땅에 있다. 땅을 일구고 좋은 먹거리를 키워내는 행위 자체가 가장 중요한 가치다. 자연에 의지하고 도움 받으며, 자연이 주는 시련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 함께 힘을 모아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 가치는 여기에 있다. 그동안 만들어진 수많은 영농조합과 작목반, 협동조합에서는 ‘우리’와 ‘함께’라는 판단 기준이 ‘안으로만’ 작용해왔다.
‘우리’ 조합원과 ‘우리’ 작목반의 이익을 위해, 이익단체 ‘내부’ 구성원의 행복만을 위해 농민조직이 활동하고 생산해왔기에, 농업과 농민의 운동이 진행되지 않았다. 조직을 만들 때 설정했던 공익적 방향성이 아닌 다른 방향(집단이기주의)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의 시장논리를 따라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까지 강변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 조직을 만들어야 했던 최초의 가치는 과거의 낡은 생각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함께’의 범위도 점점 좁아지게 된다. 처음에는 조직의 설립 취지에 동의하는 모든 지역민이었다가, 점점 조직 내부의 사람으로 좁아진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왜 이 조직이 만들어졌는지를 되물어볼 때, 나아갈 방향을 잃은 채 오직 현재만을 지키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 정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