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미 수필집 [참 좋았다]는 소제가 명쾌한 생활, 문학, 신앙, 여행 등 네 파트로 묶었다. 명쾌한 소제만큼 분명한 색깔을 지닌 작품들이다.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이성과 감성 이외 또 하나의 정서가 있다. 그것은 영성이다. 가톨릭 신자답게 깨끗한 영성이 행간마다 스며들어 있다. 별도의 장에서 묶은 신앙 에세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모든 문학에서 서정과 감성이 내면화 되어 있듯, 이번 수필집의 대부분 작품 안에서 작동된 영성이 읽는 맛을 더한다. 더구나 짧고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품고 있는 글들이 독서감을 높이고 있다.
9년 만에 발표하는 수필집
저자는 스스로 몇 년 만에 책을 펴내는 건가 자문하면서, 오랜 시간을 ‘아마 9여 년 됐을 것이다.’라는 표현으로 성찰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자신의 게으름으로 치부해야만 하는 건지, 아님 열정이 분산된 건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저자는 긴 침묵을 깨고 다시 창작의 불씨를 지피려 한다. 늘 자신이 희구하듯이 자신의 삶은 책과 글과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나타냈다. 또한 앞으로 좀 더 부지런히 깊이 있는 글을 써 독자 마음에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싶다며, 다시 한 번 이 생명 다할 때까지 책과 글과 영원한 친구가 되기로 약속한다고 하였다.
책속에서
나이 듦에 대하여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참 괜찮은 일이다.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던 그 끈질긴 욕심, 회한, 미움, 불안이 어느새 슬그머니 차 녹아 버렸다.” 벌써 내 나이가 지천명이 되었다. 언제 이만큼이나 먹고 징그러운 나이가 되었나,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누가 “당신, 나이 몇 살이요?”라고 물으면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기가 일쑤다. 생각해보면 이 나이가 되도록 뚜렷한 직장도,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여유도 없는 것 같고 결혼을 늦게 해 아이들은 중 · 고등학생이고 나잇값을 못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나이로 인해 힘들어하고 감출 것인가. 100세 시대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난 파릇한 청춘인데.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건강을 지켜 앞날의 계획을 세우고 좀 더 리드미컬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그래도 나이 들어가면서 참고 용서하며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는가. 이젠 나이 먹는 것은 누구나 먹고 자연스러운 일이니 제대로 나잇값하고 살자. 기시미 이치로의 《늙어갈 용기》에서는 나이 들수록 민감해지는 인생의 온갖 과제는 ‘나(개인)의 용기=주체성’으로 헤쳐나가야 삶의 자유와 가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인정욕구·우월감·권력욕에 휘둘리지 않으며 내면의 힘과 공동체의 목소리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늙어갈 용기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