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바람에 섞이지 않는다 : 이운순 수필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B000035179
811.4 -21-916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향기는 바람에 섞이지 않는다]는, 2020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 선정 작품집으로 출간되었다. 제1집 [비타민이 열리는 나무]에서와 마찬가지로 작품해설은 권대근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작품 해설의 일부로 [향기는 바람에 섞이지 않는다]를 소개하면 이렇다. 수필은 우리네 삶의 모습이다. 수필 쓰는 일은 삶을 통한 선택된 체험을 상상력으로 재창조하고 재구성하는 일련의 문학적 경로를 통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작업이다. 그 소재가 어찌 ‘생활’과 ‘자연’뿐이겠는가. 그 표현 방식이 어찌 ‘고백’뿐이겠는가. 이운순 수필의 우수성은 폭넓은 소재를 통하여 그 작품세계를 확장하고 있다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지성인의 문학"이라는 새로운 틀에 맞추어 좀 더 그 지평을 넓혀 나가고 있다. 또한 작품에서는 촉촉한 감동이 실핏줄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전달됨을 느낄 수 있다. 이운순 수필의 첫 번째 특징은 참신한 미의식의 표현에 있다. 연결 짓기 어려운 제재를 가지고 참신하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주제를 표현해 냄으로써 문학적 감동이 증폭된다.
탁월한 창의적 미의식
제재와 주제의 상관성이란 사물을 바라보는 주체적 수필가가 나타내려는 주제의식과 대상 사이에 얼마나 형이상학적 유사성이 있느냐를 말한다. 유사성이 있는 제재를 통해 주제의식을 내포하도록 하게 되면 독자는 상상과 연상을 통해 숨어있는 주제를 찾아가며 미적쾌락을 맛볼 수 있게 된다. 그녀의 글을 따라 읽다 보면, 이런 쾌락이 찾아온다. 뿐만 아니라 활자가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촉촉한 감동이 실핏줄을 타고 온몸 구석구석으로 전달됨을 느낄 수 있다. 이운순 수필의 첫 번째 특징은 참신한 미의식의 표현에 있다. 이처럼 편편이 수작인 수필을 쓸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이 수필집을 읽어가며 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본격수필이라면 문학의 쾌락성 외에 또 다른 목적인 효용성을 별개로 따져보아야 함은 물론이다. 제재와 주제와의 유사성은 적을수록 효과적이다. 제재를 보고 누구나 떠올리는 주제라면 이미 식상하여 글을 읽고 깊은 맛을 느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도저히 연결 짓기 어려운 제재를 가지고 참신하고 창의적인 시각으로 주제를 표현해 내기에 이운순 수필은 문학적 감동이 증폭된다고 할 수 있다.
이후 사장어른께서는 몇 번인가 더 다녀가시고 노환으로 하늘에 이르셨다. 어찌 됐든 오징어 숙회를 유독 좋아하셨던 사돈 대접은 어머니에게도 추억이 되었다. 때로 비슷한 갑오징어를 살 때도 있었는데 다리는 짧고 도톰한 몸통에 등뼈가 붙어있는 놈이다. 약이 귀하던 시절에는 말려두고 상비약처럼 썼다. 특히 지혈 효과가 좋아 우리가 넘어지고 까졌을 때나 어른들이 연장을 다루다 다쳤을 때도 곱게 가루를 내어 상처 위에 뿌리면 쉽게 지혈이 되고 잘 아물었다. 넉넉하지 않았던 시절이 지나고 생산도 유통도 새 시대가 열려 뭐든지 넘치는 세상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어쩌다 내 것을 빼앗기고 한낱 장물아비 신세가 되었을까. 바다는 어종을 달리해 늘 그만큼의 양을 바구니에 채워준다. 그 풍요로운 앞바다를 내어주고 졸지에 비싼 오징어를 사 먹는 현실이 아프다. 언제 다시 내 텃밭을 되찾을 날 있을까. 기다림이 막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도둑과 장물아비> 중에서 -
이 수필은 비유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문학적 의미와 울림으로 가득해서 감동을 준다. 그 힘은 작품세계는 물론 작가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문학의 본성 등을 효율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기여한다. ‘도둑과 장물아비’는 심오한 주제 세계를 암시하고 있다. 상징의 힘, 그리고 구체적인 사건 전개의 힘은 이 작품만의 고유한 미덕들이다. 이 수필 속에서 작가의식의 깊이와 지배적 정황, 그리고 미적 울림 등을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 인용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 어선들이 우리 바다에 몰래 들어와서 잡아간 중국산 수산물을 우리가 사 먹으니, 중국 어부들은 도둑이고, 우리는 영락없이 도둑들이 파는 고기를 사먹으니 장물아비라는 풀이는 낯설게 하기 효과가 강력하다고 하겠다.
이운순은 우리의 영혼이 새로움을 지향하도록 이끄는 작가다. 이 작품이 지닌 최대의 미덕은 중층구조의 복잡성 속에서 ‘도둑과 장물아비’의 정체를 마지막에 가서야 알 수 있게 하는 지연 전략에 있다고 하겠다. 끝까지 상징의 원관념을 노출시키지 않고 암시만 하는 절제된 서술전략도 이 작품의 격을 높여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약소국의 비애를 내뿜게 한 미적 설계도에도 있다. 강대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국이 겪어야 하는 서러움이 한 수필가의 실존적 고뇌를 도둑과 장물아비라는 객관적 상관물로 내세워 수필화한 것이 놀라울 뿐이다. 따라서 이운순은 보통의 수필가가 아니라 이렇게 탁월한 미의식을 지닌 작가인 것이다. 도피의 노래가 아니라 생활의식의 반영을 노래하는 작가로서 이운순은 수필의 문학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작가라 하겠다.
부지런한 남편은 간혹 고향을 다니러 가거나 지방출장이 있을 때 말고는 집 앞 골목청소는 늘 남편 몫이다. 초가을 아침 집 앞 청소를 나갔다가 골목에 나뒹구는 연둣빛 풀벌레, 여름 풀밭에서 ‘찌르르~찌르르~’ 울어대는 여치였다. 한로(寒露)가 코앞이니 분명 수명을 다해 가리라. 그렇더라도 미세한 움직임이 남아있으니 해충이거나 아니거나 불쌍한 생각이 들어 골목 끝 풀밭에 옮겨주었다. 녀석은 옆 세무사 주차장 단풍나무 밑 화단에 살던 녀석일지 모른다. 어쩌다 녀석은 풀잎과 이슬, 꽃향기를 벗어나 자연미 하나 없는 시멘트 바닥을 뒹구는 것일까. 메뚜기목의 독특한 울음을 운다는 여치는 알을 얻기 위해 흙을 찾는다는데 시멘트 바닥을 흙바닥인 줄 오인해서 벌어진 사태였을까, 막연한 심증만 간다. 그 순간 왜 생뚱맞게 남편이 만났다는 그 아이가 떠오른 것일까. -<여치> 중에서 -
이 수필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것은 인간적 향내다. 향기는 수필을 수필답게 한다. 이운순 수필에서의 인간적 향내는 비단 이 수필뿐만 아니다. 거의 모든 작품에 다 깔려있다. 수필은 체험을 문학적으로 또는 논리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해서 그 모습이 완성되고, 인생의 한 단면을 진통과 고뇌로 감싸 안았다고 해서 문학적 가치를 확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필은 본질적 특성에 부합하는 고백이 녹아 있어서 인간의 향내를 내어야 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숨결과 체취가 드러나야만 수필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이 수필의 가치는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다.
하루는 중학생 남자가 다가와 집에 갈 차비를 달라고 하기에 작가의 남편은 인간적으로 몇천 원을 주었는데, 집에 갈 차비가 없었던 게 아니고 이 녀석이 상습적으로 사기를 쳐서 돈을 얻어낸다는 걸 알고 허탈해 하는 남편의 모습을 포착해서 수필화했다. 이 수필에서의 압권은 그 아이를 ‘여치’로 치환한 데 있다. 집으로 가지 않고 상처 입은 몸으로 오락실을 헤매는 그 아이를 보고 작가는 초가을 아침 집 앞 청소를 나갔다가 골목에 나뒹구는 연둣빛 풀벌레, 여름 풀밭에서 ‘찌르르~찌르르~’ 울어대는 여치를 떠올렸다. 여치의 처지와 그 아이의 상황이 절묘하게 어울려 제재 간의 상관화를 이루고 주제의 구현에 이바지하였다. 넌지시 사회비판의 현미경을 갖다 대는 작가의식이 엿보이는 수필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책속에서
봄은 언제나 경이로운 계절이다. 삭풍을 견뎌내고 대지가 깨어나면 농부의 손길도 바빠진다. 잔설을 뚫고 움트는 새순들, 따듯한 훈풍에 죽어가는 것에서도 돋는다. ‘움’은 그래서 진정한 자연의 조화요 신비함의 극치다. 봄을 지나 적당한 비와 바람과 햇살이 가져다주는 결과물 시간을 기다려 만나는 소중한 결실이 아니고 무엇이랴. 나 어릴 적 겨울은 더 춥고 또 길었다. 소한 대한이 지나도록 한파는 누그러지지 않는다. 건축 난방자재도 입성도 지금만 못하던 시절이니 추위는 더 혹독하고도 길게 느껴졌으리라. 그 겨울의 끝 우리 집 안방 윗목에서는 찌그러진 대야나 두툼한 비료 포대 안에서 움파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환하게 불을 켠 듯, 등잔의 심지를 돋은 듯, 비집고 올라온 조선파는 겨울이 끝나간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봄 향기를 머금은 연초록의 움파는 도마 위에서 송송 썰려 들기름에 깨소금을 곁들인 양념간장이 되어 겨우내 잃어버린 아버지 입맛을 찾게 해 주었다. 특히 새해맞이 준비를 하면서 만두소와 소적으로 쓰일 두부를 만들 때면 1차 응고된 초두부를 양념간장과 함께 먹는 건 아주 괜찮은 즐거움이다. 그 보들보들한 순두부에 파 향이 더해진 양념간장을 얹어 먹으면 일품이었다. 두부를 만드는 일은 물론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복잡한 과정이 뒤따른다. 방앗간을 간다거나 집집마다 믹서를 갖추기 전이니 불린 메주콩을 맷돌에 가는 것부터 난관이다. 맷돌에 간 콩물을 큰 주머니에 넣어 콩물을 거르고 고운체에 받친다. 몸무게 사십 킬로 남짓 왜소한 몸으로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 행사를 멈추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 순두부를 좋아하셨던 때문이리라. 힘겹게 거른 콩물은 다시 가마솥에 넣고 끓이다 간수를 들이는데, 몽글몽글 엉길 때 순두부를 떠 양념장을 곁들이고 막걸리나 소주를 더하면 선친께서는 매우 좋아하셨다. 커다란 보에 응고된 두부를 붓고 각을 지어 무거운 것으로 눌러놓아 두부가 되면 모를 지어 정월 보름 즈음까지 먹는다. 소박하고 소소해도 행복이라 여기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