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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기생도 사람이다

기생 생활의 이면 김난홍
기생의 인생관 박옥화
예기의 입장과 자각 윤옥향
의기사 사당에서 감동하여 시를 짓다 산홍
문학 기생의 고백 장연화
덕왕의 인상: 문학 기생의 작품 김숙
신생활 경영에 대한 우리의 자각과 결심 오홍월
화류계에 다니는 모든 남성에게 원함 배화월
기생 생활도 신성하다면 신성합니다 화중선
기생도 노동자다 전난홍
여성운동의 수장이 되다 정칠성
지금부터 다시 살자 김계현

2부 나는 어떻게 기생이 되었나

파란중첩한 나의 전반생 백홍황
기생, 모두가 동정뿐
눈물겨운 나의 애화 이월향
한 늙은 기생의 자백
울음이라도 맘껏 울어보자 매헌
사랑하는 동무여 김녹주
초로 같은 인생 전산옥
기생과 희생 계산월
기생으로 본 10년 조선 김화중선
내가 만일 손님이라면 차별 없이 하겠다 홍도
기생들이 꿈꾸는 따뜻한 가정생활
가신 님에게 매헌

3부 소설 속의 기생

기생 산월이 이태준
시드는 꽃
우리의 참사랑 박화영

4부 기생은 누구인가

최초의 단발랑: 강향란
독립운동가 되어 국경을 넘다: 현계옥 백두산인
돈보다 사랑, 목숨보다 사랑: 강명화 청의처사
박열 열사의 재판정에 서다: 이소홍
사랑에 죽을까, 효에 살까: 채금홍
상해로 달아난 천하일색 명기: 장연홍
눈물 속에 진 꽃: 최향화 홍의동자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힌 인기가수: 왕수복 김여산
〈장한가〉 부르는 박행의 가인: 신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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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이 책은 기생에 대한 편견을 통렬히 날려버린다. 흔히 기생은 ‘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이라고 비하될 뿐 아니라,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를 통틀어 황진이나 논개 같은 몇몇의 이름만 세상에 남아 있다. 하지만 기생의 전성시대는 일제강점기 초였다. 그 특별한 시기에 그들은 시대를 앞서 걸은 신여성이자, 예술가, 연예인이었다. 가장 먼저 머리를 깎은 여성도, 진정한 사랑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 목숨을 던진 이들도 기생이었다. 한때 최고의 인기가수도, 배우도, 명창도 모두 기생 출신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기생 가운데는 만주로 가 유일한 여성 출신 의열단원이 된 투사도 있으며, 기생 출신의 주산월, 정금죽 등은 나중에 여성운동의 정점에 서게 된다. 소수만 그런 게 아니다. 그게 시대정신이었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기생들은 예인으로, 지사로서 시대적 소임을 다하였다. 이 책은 기생들이 직접 쓴 글을 통해 20세기 초의 기생사회를 생생히 복원해준다. 기생들이 직접 발행한 잡지 《장한》에 실린 글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실린 주요한 글을 발굴 수록하였다. 기생의 문제를 사회제도의 모순과 계급적 관점에서 바로보는 박옥화의 글과 여성을 노리개 취급하는 남성들을 자신의 성적 포로로 만들겠다며 복수를 다짐하는 화중선의 글 등 도발적인 글은 오늘의 남성들까지 오싹하게 한다.

1931년 5월에 나온 《비판》 창간호에는 〈기생의 인생관〉이라는 글이 실렸다. 필자인 기생 박옥화는 당당하게 자신의 직업을 변호한다. 그러면서 “조선의 10분지 9나 되는 가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행복한 세계’가 와야 기생의 문제도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1923년 《시사평론》에 실린 화중선의 글은 오늘에 읽어도 남성들의 몸이 오싹해질 내용이다. 여성을 노리개 취급하는 남성들에게 성적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은 기생이 되었으며, 남성들이 자신의 신코에 입을 맞추고 발바닥을 핥아가면서 자진하여 자신의 포로가 되게 하겠다는 복수전사를 자처한다.
이 같은 글은 기생에 대한 우리의 통념을 날려버린다. 흔히 기생은 ‘아무나 쉽게 꺾을 수 있는 꽃’이라고 비하될 뿐 아니라,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를 통틀어 황진이나 논개 같은 몇몇의 이름만 세상에 남아 있다.
하지만 기생의 전성시대는 일제강점기 초였다. 근대 사회에 들면서 신분제의 철폐와 관기 제도의 해체로 기생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생계의 길을 찾아야 했던 기생들은 조합을 만들고, 아울러 전통 기예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누구든지 기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낙양의 명기가 되기 위해 기생의 길에 들어서는 소녀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더불어 기생놀음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전국의 한량들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자연스레 조선시대의 교방과 같은 기생학교가 설립되었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기생학교는 일종의 연예기획사 같은 존재였다. 전통적으로 천민 신분이면서 교양인이자 예인이기도 했던 모순적인 존재로서 기생들은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에서 정체성의 혼돈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특별한 시기에 그들은 시대를 앞서 걸은 신여성이자, 예술가, 연예인이었다. 가장 먼저 머리를 깎은 여성도, 진정한 사랑을 위해 누구보다 앞서 목숨을 던진 이들도 기생이었다.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왕수복, 선우일선, 김복희, 최향화, 이화자는 모두 기생 출신이었다. 배우로 이름을 날린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물론 영화 〈아리랑〉의 주인공 신일선도 기방에 몸을 담았다. 명창 이화중선과 박녹주도 기생 출신이다.
뿐만이 아니다. 기생 현계옥은 만주로 가 유일한 여성 출신 의열단원이 되었으며, 이소홍은 박열 열사의 국내 공작을 도왔다. 주산월과 정금죽은 기생 출신으로 나중에 여성운동의 정점에 서게 된다. 소수만 그런 게 아니다. 진주와 수원, 해주 등지의 기생들은 3·1만세운동에 집단으로 참여하였다. 그게 시대정신이었고, 뛰어난 능력을 갖춘 기생들은 예인으로, 지사로서 시대적 소임을 다하였다.
이같이 역동적인 기생의 세계를 우리는 얼마나 풍부히 알고 있는가. 대다수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극히 단편적이다. 이 책은 20세기 초의 기생사회를 생생히 복원해내기 위해 기획되었다. 가감없는 기생의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기생들이 직접 발행한 잡지 《장한》에 실린 글을 비롯해 여러 매체에 실린 주요한 글을 발굴 수록하고 있다. 당시의 여러 매체에서 기생들의 놀라운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기생들이 직접 쓴 글만으로는 기생사회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기생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3편의 소설과 ‘최초의 단발랑’ 강향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정사사건의 주인공 강명화, 최초의 가수왕 왕수복 등 당대를 풍미한 기생들에 관한 9편의 글을 덧붙였다.

책을 펴내며

“제가 매소賣笑함은 아니 매육賣肉함은… 저 유산계급들이 저희의 향략적 충동과 소유적 충동을 만족케 하자고 우리 여성을 자동차나 술이나 안주나 집과 같이 취급하는 그 아니꼬운 수작을 받기 싫은 나로서, 차라리 역습적 행위로… 그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신코에 입을 맞추고 나의 발바닥을 핥아가면서 자진하여 나와 나의 포로물이 되게 하여가지고, 나의 성적 충동을 발현하는 어떤 의의가 있는 살림살이를 하려 함에서 나온 동기였나이다. …저 마음을 팔고 성을 팔아가지고 소유적 충동에서 견마가 되어 헤메이는 그들, 더구나 우리 여성의 적인 남성들 특권계급들을 포로하려는 복수 전사의 일원이 되려 함이외다. 벌써부터 그 동물 몇 마리를 포로하였습니다.”

남성들의 몸이 오싹해질 법한 내용이다. 백여 년 전 기생의 글이라는 게 믿어지는가. 아마조네스 전사를 연상시키는 화중선이라는 이름의 이 기생은 여성을 노리개로 취급하는 남성들을 자신의 포로로 만들겠다는 성적 복수를 다짐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화중선이 누구인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기생 박옥화는 2천만 인구 가운데 90퍼센트는 자신과 같은 계급이라며, 이들 모두가 행복을 누리게 될 때라야 자신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은 물론 기생 사회의 주류 의견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다수의 기생들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기생이 되었고, 한번 발을 들이면 그 속에서 청춘이 시들 수밖에 없었다. 자유를 잃은 채 비탄 속에서 가슴을 태워야 하는 게 대다수 기생의 숙명이었다.
일제강점기 기생의 모습은 기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잡지 《장한》 창간호의 표지 그림이 상징한다. ‘새장 속에 갇힌 기생의 모습’이 곧 그들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기생들은 신세를 한탄하고 기생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이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자각으로 나아간다.
전통적으로 기생은 천민 신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높은 교양과 예술성을 지닌 모순적인 존재였다. 그들은 가무뿐 아니라 시詩, 서書, 화畵에 능한 종합예술인이자 지식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근대 사회에 들면서 신분제의 철폐와 관기 제도의 해체로 기생 사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스스로 생계의 길을 찾아야 했던 기생들은 조합을 만들고, 아울러 전통 기예의 맥을 잇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한편 누구든지 기생이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자 낙양의 명기가 되기 위해 기생의 길에 들어서는 소녀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더불어 기생놀음을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전국의 한량들이 서울로 서울로 모여들었다. 1910년대 후반은 새로운 시대의 기생 문화가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자연스레 조선시대의 교방과 같은 기생학교가 설립되었다. 오늘날에 비유하자면 기생학교는 일종의 연예기획사 같은 존재였다. 아이돌을 꿈꾸며 모여드는 어린 소녀들을 일류 기생으로 양성한 대표적인 곳은 평양箕城기생학교였다.
왕수복 1위, 선우일선 2위, 김복희 5위. 1935년에 열린 인기가수 선발대회 결과다. 이들은 모두 기생 출신이다. 그것도 평양기생학교를 나온 평양 기생들이다. 이들 외에도 이은파, 최향화, 이화자 등 일세를 풍미한 기생 출신 가수는 즐비했다.
여배우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월화, 석금성, 복혜숙은 모두 기생 출신이다. 영화 〈아리랑〉의 여주인공 신일선은 나중에 기생이 되었다. 명창 이화중선과 박녹주도 기생 출신이다. 기생 장연홍, 깅영월, 노은홍 등은 광고 모델로 인기를 누렸다. 1914년 《매일신보》가 뽑은 당대의 예인藝人 100명 가운데 여성 89명은 모두 기생이다.
한편 조선 기생의 몸에는 고결한 기품과 지사적 풍모가 연면히 이어져왔다. 임진전쟁 시기의 논개와 계월향, 그리고 한말의 산홍 같은 존재들이다. 근대 기생의 세계에도 3·1만세운동을 계기로 이같은 풍조가 확산되었다.
진주와 수원, 해주 등지의 기생들이 집단으로 만세시위를 벌였는가 하면, 손병희의 부인이 된 기생 출신 주산월은 손병희의 거사를 돕고 나중에는 여성운동의 지도자로 활약하게 된다. 만주로 가 의열단원이 된 현계옥, 박열 열사의 국내 연락책을 맡았던 이소홍,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 자리에까지 오른 정칠성 등 놀라운 인물이 많다. 이처럼 탁월한 개인이 아니더라도 국채보상운동, 조선물산장려운동, 노동운동 등에 음으로 양으로 참여한 기생들이 적지 않다.
이같이 역동적인 기생의 세계를 우리는 얼마나 풍부히 알고 있는가. 대다수가 알고 있는 지식은 극히 단편적이다. 이 책은 근대 기생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다. 가감없는 기생의 세계를 들여다보기 위해 기생들의 육성을 위주로 수록하였다. 《장한》뿐 아니라 여러 매체에서 기생들의 놀라운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었다.
기생들이 직접 쓴 글만으로는 기획 취지를 살리는 데 부족함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태준을 비롯한 작가들이 쓴 소설과 《삼천리》 등의 매체에 실린 당대를 풍미한 기생들에 관한 글을 덧붙였다. 조선 여자 가운데 처음 머리를 자른 강향란도 윤심덕과 김우진에 앞서 사랑을 위해 목숨을 버린 강명화도 모두 기생이었다.
기생에 대한 편견을 깰 때다.

2019년 5월

기생 생활의 이면
김난홍

화려한 도시의 중심 무대가 그 어디일까요? 호화방종의 풍류신사가 춘풍 도리桃李 난만한 틈에 범나비 넘나들 듯하는 화류항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그 무르녹은 향기가 몽롱히 가득 찬 화류계의 주인공! 어떤 의미로 보아 어떤 부분의 여성들의 선망의 초점이 되는 기생 생활!
그 이면에는 붓으로 써서 다하지 못할 가지가지의 비애와 입으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속속들이의 통한이 섞이어 어우러져 있는 것입니다.
누가 나의 유두분면油頭粉面과 화려한 장식을 부러워하나뇨? 흐트러진 머리털에 향내 나는 기름칠을 하고 얼굴에 분칠하는 것이 나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까? 법단 저고리와 하부다이 치마로 비릿비릿한 형해形骸를 휩싸는 것이 나를 위하여 하는 것입니까?
누가 나의 입으로는 청아한 소리를 부르며 손으로는 유량한 음곡을 자아내는 것을 부러워하나뇨? 청아한 소리 속에는 다정다한한 회포가 숨어 있는 것이요, 유량한 음곡 사이에는 불운의 하소연이 얽혀 있는 것입니다.
상을 대하면 산해진미요, 신을 벗으면 고루거각高樓巨閣인 것을 누가 부러워하나뇨? 육산포림肉山脯林도 나에게는 쓴맛을 줄 뿐이요, 요대瑤臺 누각도 나에게는 신기루와 다름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것이 나를 표준한 생활이 아니요, 나라는 자태를 여지없이 저버리고 남을 위하여 희생하는 바지저고리의 생활 아닙니까? 그러면 왜- 이런 정신없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까?
그러나 과거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고, 현재로는 하지 않을 수 없는 무서운 운명의 마수가 일거수일투족에 절대 부자유를 줍니다. 생의 가치를 잃어버린 생활, 생의 진리를 배반한 생활, 즉 우리들의 일상생활의 속을 끄집어내어 가슴을 시원하게 펴고 보겠습니다.
대체 이 생활을 왜- 하겠습니까? 세태의 변천을 따라 지금은 여성해방운동이 일어나는 동시에 여성의 직업이 하고많은 중 하필 노래와 웃음을 파는 직업을 하게 된 원인에 대하여는 번거롭게 쓸 필요가 없으나, 하여간 이 직업도 호구가 제일 문제이지요.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하여 이 죽기보다도 더 싫은 생애를 사는 것입니다.
어느 직업치고 편하고 배부르고 곱기만 한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온갖 삶 중에 우리 기생 생활이야말로 참으로 작년 팔월에 먹었던 송편이 게워 나오고 오장육부가 오뉴월에 거름더미 썩듯이 썩고 썩어 녹을 지경입니다.
기생 생활의 제일 조건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기쁘게 하는 일이올시다. 찾으시는 손님이 누구시든지, 키가 크든지 작든지, 늙었든지 젊었든지, 이쁘든지 밉든지, 정하든지 추하든지, 비단 옷을 입었든지 무명 못을 입었든지, 묵중하든지 까불든지, 거북스럽든지 슬금스럽든지, 수선하든 얌전하든, 어쨌든지 나로서는 사랑의 추파를 보내며, 방순한 향기를 끼치며, 염태의 애교를 부리어, 그 손님의 환심을 끄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노릇이 용이하겠습니까? 기생도 사람입니다. 사람이 아닌 바는 아니지요. 그런즉 사람에게는 자기 고유의 정신과 단심과 성격과 주의와 특색이 있는 동시에 각각 요구하는 것이 다를 것이며, 더욱 이성을 찾는 데야 더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모두를 즐겁게 하기에 급급하지요. 그래서 어떤 때에는 난처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자주 접촉되는 데서 정이 생기고, 멀어지는 데서 소활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주 찾으시는 손님에게는 다른 손님보다 특별히 알아드리지요.
이것은 어째 그러겠습니까? 다름 아니라 나를 어느 점에서 사랑하신다기보다 동정하여 주신다는 의미로써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나 열 분이면 열 분, 스무 분이면 스무 분 모두 화류계 동정은 엷고도 짧은 것 같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면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년들이 무슨 어림없는 수작이냐고 하시겠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한결같이 동정을 하여주신다면 어찌 그럴 이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항상 새것을 찾는 것이 상정이라 하겠지요. 그래서 당신네들이 새것을 찾으시기에 급급한 것을 눈치 채면, 우리들도 부득이 다른 데로 동정을 구하는 것입니다.
만일 경우가 이렇게 되면 그 손님은 당신이 하신 것은 생각지도 아니하시고, 기생만 살릴 년, 죽일 년 하시고 모주 먹은 도야지 벼르듯 하십니다. 이것은 아마도 오해이시지요. 깊이 동정을 못하시는 것이겠지요. 이것이 삼각관계인데, 이런 처지에 혹시 기생으로 앉아 차마 견디지 못할 경우를 당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런 때의 번민과 면난이야말로 참 기가 막히지요.
이와 같이 기가 막하는 경우를 당하는 것이 누구를 위하여 당하는 것입니까? 먼저 손님을 위하여 당하는 것도 아니요, 다음 손님을 위하여 당하는 것도 아니요, 내가 좋아서 당하는 것도 아니요, 단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이 쓰림을 당하며 몇 번씩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대체 이러한 일이 생기는 근본 원인을 생각하여 보십시오. 우리네 화류계 여성을 농락하는 모든 남성이 기생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더욱이 한 번만 친하게 되면 아주 당신네 물건처럼 여기시는 까닭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기생이라는 것을 한낱 인생으로서 존재를 부인하는 까닭입니다. 그리고 장난감 인형과 같이 동물원의 원숭이나 앵무새같이 미물이나 물건으로 취급하는 까닭에 이런 무리한 요구를 거침없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잘못이시지요. 아무리 웃음과 노래와 고기를 파는 기생이라 하기로서니 어찌 성명조차 없겠으리까? 특별한 경우는 예외로 하고 우리 기생은 어쨌든 나를 찾는 손님은 다 같이 웃는 낯과 다정한 태도로 접대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코 불편부당이겠지요. 이것도 기생 생활이 아니면 맛보지 못할 쓰리고 아픈 로맨스입니다.
그리고 머리에는 순금 비녀와 진주 뒤꽂이를 꽂고, 금시계에 다이아몬드 반지며 전신에 능라금수綾羅錦繡로 휘감을 친 우리들도 경제적 곤란이 적지 않습니다. 그것도 재색과 기능에 따라 다르겠지요만, 돈이 잘 융통되지 않는 전황錢荒이라는 독한 바람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참말로 어림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심양강?陽江 위 늙은 기녀의 하소연같이 문전냉락안마희門前冷落鞍馬稀*지요. 요릿집 인력거꾼의 찾는 소리가 가뭄에 콩 나기입니다. 입과 배를 채우기 위하여 이 노릇을 하는 처지에 이 흥정조차 세월이 없으니, 달아나는 세월은 하룻낮 하룻밤을 쉬임없이 되풀이하는데 하루 두 끼를 어찌 용이하게 얻어먹겠습니까? 산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게 하자니 그 군색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 없겠지요. 본디 넉넉한 생활이 못되고 우리의 살림도 노름꾼 살림 모양으로 풍성한 때는 여유가 있지만, 군색한 때는 여지가 없으니 의복의 여유인들 있겠습니까?

*중국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시 〈비파행琵琶行〉 속의 늙은 기녀의 삶을 빗댄 내용이다. 문전냉락안마희門前冷落鞍馬稀는 ‘말 타고 찾아오는 이 없어 흥성거리던 대문 앞이 쓸쓸하다’는 뜻.

통정할 만한 데는 서로 융통하는 것이 사람이 살자면 흔히 있는 것이지만, 우리 기생은 서로 동정을 아니하기보다 피차 입을 열어 말하기를 꺼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명을 아니하여도 아시겠지만, 군색한 것을 무엇을 생각 없이 말하겠습니까? 무능하고 재주 없음을 여지없이 발표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내 꼴 남 보이기 싫다는 격으로 말을 아니합니다.
이런즉 어떻게 합니까? 혹간 여벌 옷벌이나 있으면 전당국 신세를 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용이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그도 못하는 경우에는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왜 금비녀나 진주 뒤꽂이나 팔뚝시계나 다이아몬드 반지가 없겠습니까마는, 그것은 화중지병畵中之餠이지요. 보고도 못 먹는 떡이랍니다. 속담에 떡 줄 놈은 생각도 안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세음으로 요릿집 손님들은 꿈도 안 꾸는데 혹시나 부를까 하며, 운수가 좋아 불린다면 차리고 가야만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를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요,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니, 이것을 가리켜 산다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기생은 재상이라’는 말을 어떤 철딱서니 없는 사람들이 하였는지? 이 말은 참으로 우리 기생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아주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다. 재상이 왜 모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에 급급합니까? 다른 사람들이 그의 개성의 존재를 부인합니까. 재상이 남을 위하여 자기의 구복口腹도 채우지 못합니까? 아마도 ‘기생은 재상이라’는 말은 우리 기생이 훌륭한 신사들을 모시고 노는 터이니까, 그 처지가 좋은 것을 말하는 듯합니다.
고대광실에서 만반진수를 벌여놓고 여러 진신縉紳 풍류랑과 희희낙락하게 어우러져 노는 것이나, 여기에도 가지가지의 한 되는 일이 많습니다. 기생들은 손님들을 모시고 놀 때에는 어느 때든지 혹시나 불경한 언사가 있을까, 혹시나 무례한 행동이 있을까, 혹시나 손님에게 감정을 살까 하고 항상 전전긍긍하는 바입니다.
그러하오나 손님들은 어찌 그리 매정들 하십니까? 기생에게 털끝만한 잘못이 있어도 기어코 끄집어내시며 서슬이 시퍼렇게 꾸중을 하십니다. 꾸중만 하시면 달게 받지요. 입에 못 담을 여러 가지 욕설로 여지없이 모욕을 하십니다. 기막히는 천대를 하십니다.
이런 천대와 모욕을 받는 때는 참으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쪽박을 차고 문전걸식을 하더라도 이 노릇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납니다. 사람은 어떤 곳에든지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용이하게 그 구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 이런 생각이 하루에 열두 번씩 나지만, 이 구렁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슴을 태우며 안타까운 청춘을 시들여 버리는 것입니다.
기생 중에도 자색이 어여쁜 사람과 추한 사람이 있고, 가무가 능란한 사람과 한숙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생들이 섞여 노는 자리에서 자색 좋은 기생과 가무가 능란한 기생은 손님에게 귀염을 받지만, 그렇지 못한 기생은 참으로 여간한 창피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인형이니 벙어리니 하며 거들떠보지도 아니하시고, 혹시 노래를 하려고 입을 벌리면 ‘그만 둬라’ ‘치워라’ ‘듣기 싫다’ ‘잘한다, 벙어리가 말한다’ ‘아주 남자로구나’ 이와 같은 말씀으로 박대를 하십니다. 그야말로 받아 싸지요만, 일시 먹기분에 노시는 손님들이지만 좀 과한 편이십니다.
이런즉 눈먼 사람이 개천을 나무라요? 제 눈먼 것이 불찰이지요. 이런 경우를 당하는 때는 그만 정신이 아찔하여지며, 그 자리에서 폭삭 땅속으로 주저앉았으면 하는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여러 손님이 다 그러시다는 것은 아니지만, 놀기 좋아하시는 분은 손목을 끌어 잡아당기시며 당신 무릎에 올려 앉힐 뿐 아니라, 취흥이 도도해지면 기생의 얼굴을 끌어 잡아당겨 키스를 하려고 하는 분도 계십니다. 이것은 너무 폐풍이지요. 우리 기생들이 옛날 기생과 같이 고상한 지조가 없고 너무 난잡히 노는 까닭이겠지만, 기생과 창기를 분별하시지 못하는 어른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손님 앞에서 이런 일을 당하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고 면난한 일인가요. 그나 그뿐입니까. 이런 장난을 하는 틈에 오락가락하는 말이 혹시 말썽이 되든지 하면, 그 죄는 모두 기생에게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새로 해 입고 간 옷이 갈가리 찢어지는 수도 있고, 어떤 때는 까닭 없이 호령을 툭툭히 맞고 심지어 하늑하늑하는 뺨까지 눈에 불이 번쩍나게 얻어맞기도 합니다.
이런 것은 모두 나의 눈먼 것만 한탄할 뿐이지요. 결단코 개천을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즉 이런 데에도 점점의 눈물이 있을 것이요, 땅이 꺼지는 한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생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수양부모가 있는 기생은 한 가지 비애가 더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지 기생이라는 것은 몸이 자유가 못되는 것이나, 포주 있는 기생은 더 심한 구속을 받는 것입니다. 기거동작도 제 마음대로 못할 만큼 쇠사슬로 얽혀 있는 몸이니, 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가 있습니까.
기생이 아무리 돈만 안다 하여도 그래도 친분이 두터운 손님에게는 그렇지도 않겠지요. 그 친분으로 말미암아 그 손님을 위하여 상당한 시간비도 아니 받고 놀아드리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생 자기의 친분이 그 포주에게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 만약 그런 손님이 오는 때에 그 포악 그 심술이야 말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생을 찾는 손님에게도 반드시 포주가 있는 말 없는 말을 지어내어 비방하므로 요릿집에 가서 욕을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나무에 올려보내고 흔드는 격이지요.
이런 답답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흥정이 좋아서 돈을 잘 벌어들이는 때는 한마디 칭찬도 없지만, 세월이 없어 못 버는 때는 그 학대가 심한 것입니다. 비싼 쌀에 밥을 먹여놓으면 번들번들 놀기만 하고 돈 한 푼 못 벌어온다고 푸념을 합니다.
기생이 가지를 아니하는 것입니까. 손님이 불러가지를 않는데야 어찌합니까. 이런 때는 몇 번씩 죽고 싶습니다. 그러나 생목숨을 끊을 수가 없어 쓰레기통에 구더기같이 천한 몸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포주 있는 기생과 없는 기생은 기생 중에서도 팔자가 엄청나게 다르지요. 이런 말씀을 한다고 결단코 손님 여러분에게 그것을 구별하여 더 동정을 하여주시고, 그 사정을 더욱 이해하여 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보통으로 기생들은 어디를 가든지 오든지 반드시 권번에 대고 통지를 하는 법입니다. 마치 집행유예 받은 사람이 가든지 오든지 경찰서에 통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물론 손님이 권번으로 대고 찾으면 권번에서 지체 없이 찾기 쉽게 하느라고 하는 것이니까, 기생을 위하여 하는 것이라 하겠지만, 굼틀거리는 사람으로, 더운 피가 맥맥히 도는 사람으로 남에게 말 못할 일이 어찌 없겠습니까. 그래 시치미를 떼고 어디를 갔다가 오면 권번에서 알고서 말썽을 부립니다.
이런 때는 말대꾸하기도 귀찮은 일이지요. 이러한 것은 다 사소한 일이지만, 날마다 남의 정신에 시달리어 얼이 빠지는 저희들은 신병도 자주 나는 것입니다.
몸이 괴로워 놀음에 못 가면 그만큼 손해이니 그것도 아까운 터에, 손님들은 남의 사정은 모르고 안 오는 것만 나무라십니다. 치수가 나가느니 빼느니 하시며 빈정대시는 때에는 참 억울하지요. 저희들이 사람값이나 나갑니까? 치수가 무슨 치수며, 빼는 것이 다 무엇입니까. 그저 안 불러주실까봐 초조할 뿐이지요.
“떴다…”
“무엇이…”
“저것 봐.”
“응, 기생이로군.”
“인력거는 기생의 전용품인 거야. 의례히 인력거!”
“흥! 팔자 좋은 것들이지!”
이런 말씀을 어렴풋이 들은 것 같습니다. 비단옷에, 인력거 바람에, 세상의 단것만 좋아하는 것.
같은 기생들도 남모르는 한숨이 동남풍도 될 만하고, 애끓는 눈물이 한강수도 될 만한 것이올시다. 구중궁궐에도 비애가 있고, 삼간모옥에도 원한이 있는 것이지만, 다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의 대접을 못 받는 저희들의 원한과 비통이야말로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저 모든 형제 남매께서 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하여 항상 뜨거운 눈물로 대하여 주시고, 바삐 바삐 광명한 곳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만 비올 뿐입니다.

기생의 인생관
박옥화

“기생도 사람이 아니냐.”
이 소리는 벌써 시대에 뒤진 소리입니다. 우리도 사상을 가졌고, 이 세상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근본적으로 송두리째 해결하고자 하는 불길 같은 정열과 투지도 가졌습니다.
내 자신의 먹고 살기를 걱정해서보다 내 뒤에 딸린 많은 식솔들의 목전에 닥친 생활문제를 해결하기가 곤란하여 그작저작 이날 이날을 보내고 있지, 그렇지 않다면 벌써 나도 거리에 나서서 먼지와 바람을 무릅쓰고, 온 세상에 가득히 찬 의롭지 못한 것과 바르지 못한 것과 고르지 못한 악죄의 덩어리와 한바탕 싸웠을 것입니다.
이런 소리는 그만두고 내 생활에 대해서 몇 마디 적고자 합니다. 내 생활의 지난 일이 내 몸뿐만 아니라 우리 기생들에게 거의 똑같은 일일 것입니다.
이 사회제도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탓이라고 할까 또는 가정관계라고 할까. 어쨌든 내 몸을 화류계에 내놓아 돈 있는 사람들의 한 개 노리개가 되고, 그리고 이리 팔리고 저리 팔려 다니기 시작한 지가 벌써 열세 해 전부터입니다.
지금 내 나이가 스물일곱 살이니까, 열세 해 전부터입니다. 열세 해 동안을 꼭 기생질만 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동안 부르주아의 첩으로 살림도 들어갔었고, 그러다가 다시 화류계로 나왔습니다.
맨 처음 내가 요릿집에 놀음을 나가니, 그때는 철없는 때라서 아무 이렇다는 감상도 없고, 가슴에 찔리는 느낌이라든지 슬픔이라든지 기쁨이라든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어리떨떨하고 수줍어서 어쩔 줄을 몰랐을 뿐입니다.
나를 오입쟁이들은 귀애하기도 하고 사랑도 하여 주었습니다. 이러하기를 하루를 지내고, 이틀을 지내고, 한 달 두 달 이리하여 한 해 두 해를 넘어가니, 나는 내 직업에 아지 못하는 사이에 취미가 붙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룻밤이라도 놀음을 가지 않으면 어쩐지 쓸쓸하기도 하여, 그날 밤은 기쁘지 못하게 밤을 새운 적도 많았습니다. 이리하다가 내 나이가 열여섯을 넘으니, 돈 있는 사람들은 나를 꺾어서 그들의 욕심을 채우려고들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에게 내 몸을 허락하기가 싫었습니다. 돈만 가졌고 아무것도 모르는 고깃덩어리에게 내 몸을 허락하기가 싫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늘 까마귀 떼처럼 모여드는 무리들을 본때 좋게 거절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값진 선물을 내게다 보낸다, 어떤 사람은 나를 저녁마다 요릿집으로 부른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다 내 고기를 탐하는 들짐승의 무리들이라고 해서, 나는 끝끝내 그들에게 내 몸과 마음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느낀 바는 이 세상을 위하여 싸우는 용사 ? 사상을 높게 가진 맑은 사람이 나를 사랑하여 주는 사람이 없나 하고, 나는 늘 그러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그리하다가 세월은 가고 오고 하더니, 내 나이 열아홉 살 되던 때에, 내가 항상 가슴 가운데 그리고 있던 사랑하는 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이는 프롤레타리아였습니다. 그이는 황금과는 인연이 먼 사람이었습니다. 그이는 세상을 위하여, 민중을 위하여,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불쌍한 무리들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전사였습니다.
나도 그를 정열적으로 사랑하였으려니와, 그이도 나를 골똘하게 깨끗하게 뜨겁게 사랑하여 주었습니다. 나는 얼마나 행복스러웠고 기꺼웠겠습니까.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의 열매가 생겼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더욱 강렬한 사랑을 속살거렸습니다.
이러한 행복스럽고 기쁜 세월은 흐르듯 어느덧 삼사 년을 달아났습니다. 좋은 일에는 반드시 지장이 있는 것인지, 나에게 나의 이성과 그이에 대한 사랑을 덮어버리고 어지럽게 하는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건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친하던 어떤 부르주아의 아들이 외국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는 나에게 도끼질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려. 열 번 찍어서 아니 넘어가는 나무가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필경 그에게 내 몸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나는 번민과 고통을 맛볼 대로 맛보았습니다.
‘어쩔까, 이 일을! 사랑을 버리고, 자식을 떼고, 황금을 따라가나.’
이것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하고, 괴롭게 하는 해결 짓기 어려운 큰 문제였습니다.
한번 어두워진 이성의 눈은 밝아지지를 못하였습니다. 나는 끊임없는 빵의 행락을 얻기 위하여, 결국 부르주아의 첩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몸이 튼튼한지는 병들어 보아야만 아는 것과 같이, 돈 있는 사람에게 간 뒤에야 옛날 애인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높고 깊고 멀고 넓고 튼튼하였는지 통절히 느끼었습니다.
이 사람은 약 두어서너 달 동안은 나를 사랑하였습니다. 다른 여성과 관계도 끊었으며, 그리 잘 다니던 요릿집, 기생집도 아니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항상 돈 있다는 냄새 ? 더러운 냄새를 피웠습니다. 그것이 가끔 가다가 속이 상하고 아니꼬워서 죽을 뻔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 보시오. 두서너 달을 지내더니 기생집 출입, 요릿집 출입을 하기 시작합니다. 반년이 지난 뒤는 나다니는 수효가 늘어납니다 그려. 나는 이곳에서 다시금 참회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옛날의 애인을 버린 것을 참회하였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이 사람과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염소가 도살장을 벗어나는 듯하여 기뻐하였습니다.
나의 걸어갈 곳은 어디입니까? 할 수 없이, 어쩌는 수 없이, 또 화류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지옥을 벗어나서 또다시 지옥으로 온 것 아닙니까.
첫 번째 인력거가 옵디다. 그 인력거에 몸을 얹으니 죽으러 가는 것 같습디다. 가슴 가운데 오고가는 감개한 생각이야 당한 사람이나 알까, 제3자의 추측으로는 근경도 엿보지 못할 것입니다.
옛날과는 세태도 달라지고, 사람들 마음도 약아졌습니다. 나도 변하였습니다.
옛날에는 술도 안 먹었습니다. 지금은 술도 먹고, 놀기도 잘합니다. 그러나 기뻐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 가득히 찬 한과 수심을 잠시나마 잊고자 하여, 억지로 일부로 그러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세상을, 인생을 비웃고 지냅니다. 세상과 싸우는 것과 비웃는 것과의 거리는 멀지 않습니다. 웃음과 노여움이 똑같은 성질의 그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세상을 끝없이 저주하다가도 웃습니다. 웃다가는 저주합니다. 내 이 생활이 언제나 바로잡힐까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내 몸만이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나와 같이 기이한 운명에 부대끼는 사람이 하나둘이겠습니까. 조선을 말할지라도, 2천만 인구 중에서 10분의 9는 나와 같은 계급이 아닙니까. 이 무리의 행복스러운 세계가 오는 그때라야만, 내 자신의 문제도 해결이 될 것을 믿고 있는 까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