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음. 제기동 - 보물을 품은 상인들의 메카 ‘성동역’이 만들어낸 600년 동네의 현대적 정체성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일 _사회적 협동조합 혜민서 남궁청완 이사장 건강과 힐링의 공간 _서울약령시 & 서울한방진흥센터
두 번째 이음. 회기동 - 속사포의 후예들과 골목의 역사 속사포의 후예들 ‘경희대’ 이야기 회기동 어디까지 가봤니? 토스트 1,000원의 숨겨진 비밀 _회기역 토스트 할머니 역사적으로 관리가 잘 되는 동네 _주민자치회 신영걸 회장 우리 동네 돈키호테 ‘회기동 사람들’ _김대현 활동가 회기동 인생술집 ‘도읍지’ _도읍지 안완영 사장
세 번째 이음. 이문동 - 우리 읍내의 정서를 품은 동네 서울의 방범초소 ‘이문동’ 서로 연대할 수 있는 사업이 많아져야 한다 _동대문신문사 박승구 대표 주민을 위한 쉼터 ‘우리동네연구소’ _오정빈 소장 외롭지 않은 동네를 꿈꾸며 _문화예술단체 이문모아
네 번째 이음. 휘경동 - 수빈 박 씨의 역사가 깃든 곳 휘경동의 숨은 역사, 작은 기쁨, 깊은 슬픔 ‘명당’ 휘경동은 교육 1번지 _배봉산 숲해설가 박정희 님 인생술집, 회기역 파전골목 _휘경동 토박이 곽경학 님, 김인재 님 그리고 회기동 사람들
다섯 번째 이음. 청량리동 - 청량리의 재발견 청량리, 이름의 기원을 찾아서 청량리의 숨겨진 이야기들 _통장협의회 박춘식 회장 주민들도 모르는 청량리시장 이용법 _청량리시장
여섯 번째 이음. 전농동 - 임금님의 경작지, 적전 임금님이 농사지은 땅 어디선가 누군가의 무슨 일이 생기면 _고순남 반장님, 권영미 통장님, 서금분 할머님 시대생들의 첫 서울, 그리고 ‘지속가능한 자봉’의 비밀 _서울시립대 졸업생 서마루치 님, 정수지 님 책 읽는 거리 _전농동 도서관
일곱 번째 이음. 용신동 - 한 지붕 두 동네 이야기 양극단의 완전히 다른 정체성을 품은 동네 도심공동체 즐거운家 용두동집 _이선규 대표, 조윤진 활동가 청계천 따라 풍물기행 터주대감의 선한 영향력 _동아제약
여덟 번째 이음. 답십리동 - 리(里)에서 동(洞)으로 명품 조연 역할의 역사성 답십리의 옛 기억 _주민자치회 박주호 회장 군만두의 달인 _박종연, 김길자 사장님 아이들의 목소리로 울림을 주는 영화제 _아해영화제 옛것이 살아 숨 쉬는 답십리 고미술 상가 _장미방 윤갑영 님
아홉 번째 이음. 장안동 - 말의 쉼터에서 차와 사람의 쉼터로 숨겨진 ‘살곶이 목마장’의 전략적 요충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안동 이야기 _주민자치회 김천일 회장 공원, 우리의 마음이 쉬어갑니다 _장안동의 공원들 소소한 일상 나눔이 있는 장안생활 _아이부키 김보리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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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동네 골목에는 감춰진 역사가 있고 숨겨진 정체성이 있다 동네가 재미있으면, 사는 게 재미있다
당신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일부러 시간 내어 지금 사는 우리 동네에 대해 관심을 가져 본 적 있는가? 부동산 시세와 정보를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난 동네 이야기와, 동네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 말이다. 신간 《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계십니까》는 동대문구에 사는 시민들이 지난 3년간 자신들의 동네와 골목을 돌아다니며 동네의 역사적 정체성을 공부하고, 소소한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 인터뷰하고, 동네의 오래된 공간과 사라지는 공간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동대문구 시민들의 지역공동체 문화 플랫폼인 〈시민나루〉가 이 책을 쓴 의미는 분명하다. 동네에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동네가 있고, 우리가 몰랐던 동네의 역사가 있고, 우리가 몰랐던 독특한 인생관이 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수많은 얼굴로 우리 가까이 살고 있었다. 저자들은 책 《당신은 어떤 동네에 살고 계십니까》를 통해 어떤 대중매체에서도 전하지 않는 우리 동네, 동네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이 집값이 아니라, 주변의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서로와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저자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동네 사람들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 동네가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즐길 거리와 만날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동네를 알려고 했으면 좋겠다. 동네가 재미있으면 사는 게 재미있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이 직접 찾은 동대문구 아홉 개 동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들
1) 제기동: 조선왕조의 출발과 함께 왕이 친히 농사의 모범을 보인 곳이었고, 그 수고를 백성들과 국밥으로 나누며 하늘에 제례를 올리던 신성한 곳. 왕이 수고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소를 잡아 국밥을 내렸는데, 이를 ‘선농탕’이라 했으며, 오늘날 ‘설렁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2) 회기동: 대규모 개발 역사가 없었기에 골목의 아기자기함이 잘 보존된 곳. 회기동의 절반 가까운 면적을 차지하는 경희대. 그 면적의 비중만큼이나 회기동에서 경희대를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회기동 사람들은 경희대가 회기동의 모든 것은 아니다. 회기동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래된 골목이 매우 많았다. 대규모의 개발 역사가 없었기 때문에, 골목의 아기자기함이 잘 보전되어 있었다.
3) 이문동: 역사적으로 서울의 방범초소였던 곳이자 ‘우리 읍내’의 이미지를 가진 동네. 이문동 사람들은 사라지는 동네에서 고양이를 구조하고, 사라지는 동네를 기억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서로 배우고, 이야기하고, 다양한 문화 활동을 만들어보며 즐기고, 생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제안하고 만들고, 약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살고 있었다.
4) 휘경동: 휘경동이라는 공간의 성격을 나누는 중요한 포스트가 한 곳 있다. 배봉산이다. 배봉산을 중심으로 명문 휘경여중고가 있는 아파트 지역과 삼육병원 쪽(옛, 위생병원) 회기역 인근의 휘경1동 지역이다. 조선조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 씨의 묘소인 ‘휘경원’이 휘경동 이름의 유래다.
5) 청량리: 동부권 물류와 소비의 중심지였다. 과거 청량리는 구리시, 남양주시, 양평군, 가평군 등 경기 동부지역에서 오는 수많은 버스들의 종점이었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출발지였으며, 대규모의 시장들(동서울 청과물시장, 수산시장, 경동시장)의 집결지였다. 서민들은 청량리에서 다양한 형태로 돈 벌 기회를 가졌고, 저렴하게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역동성 가득한 청량리는 인적, 물적 유통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할 수 있다.
6) 전농동: 임금이 친히 백성들에게 농사의 모범을 보이고 가르친 유서 깊은 곳이었다. 조선 건국 직후부터 600년 동안 임금이 친히 농사를 지어 모범을 보이던 적전(藉田, 임금이 몸소 경작하여 그 곡식으로 제사 지내던 제전의 한 가지)이었다. 그래서 전농동은 한자도 ‘밭 전(田)’자를 쓰지 않고, ‘가르칠 전(典)’자를 쓴다. 임금이 모범을 보인 역사적 흔적을 품고 있는 전농동은 동대문구의 교육 중심 동네다. 학교와 도서관, 장기 거주자들이 많은 지역이다.
7) 용신동: 용신동은 이름부터 낯설었다. 행정동만 용신동일 뿐 현재까지 ‘용두동’과 ‘신설동’은 법정동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도 쓰이는 두 동네가 합쳐져 있기 때문이다. 용두동은 유서 깊은 ‘청룡문화제’가 열리는 동네이고, 동대문구청 등 청계천을 따라 공공기관도 많아 동대문구 행정의 중심이라 손색이 없다. 신설동은 4대문 밖 첫 동네로 종로구와 동대문구로 번갈아가며 편입되면서 서울 중심지와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8) 답십리동: 조선시대 이래 도성의 채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던 공급지였다. 한국전쟁으로 가난해진 사람들이 서울 중심부 개발에 밀려 집단적인 판자촌을 형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답십리동은 판잣집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고, 상상도 안 될 만큼 좋은 아파트와 각종 주민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던 시절, 영상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 최고 복지를 제공하던 답십리 영화촬영소가 있던 곳이었다.
9) 장안동: 국가의 전략적 중요 관리 대상이었던 목마장이 있던 곳. 지금 자동차 중고시장이 있는 장안평역 근처는 조선시대 때에는 말이 쉬어가던 동네(살곶이 목장)였다. 현재 동대문구에서 인구도, 공원도, 학원도, 사무실도 가장 많은 동네다. 말이 쉬어가던 곳이 자동차와 사람이 쉬어가는 동네가 된 것이다. 장안동의 많은 공원들 역시 국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던 군사적 요충지(말 관리)라는 역사적 정체성과 관련이 깊다.
- 집필진 - 심소영 : 시민나루 대표이자 〈인터뷰, 마을이음〉 발행인이다. 느릿느릿 살고자 시작한 동네일이 너무 많아 회사원일 때보다 더 바쁘다. 그래서 가족까지 동네일에 끌어들이는 중이다. 주로 인터뷰를 담당하며 취재가 부족한 빈틈을 메웠다.
윤덕환 : 겁나 바쁜 트렌드 전문가이자 심리학 박사. 시민나루 대표가 아내라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동네 취재를 함께한다. 투덜거리면서도 할 거 다 한다. 각 동네의 소소한 역사와 동네 사람들을 취재했다.
임정희 : 청량리동 통장. 동네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통장 라인을 타면 연결 안 되는 일이 없다. 인터뷰 섭외는 내게 맡겨주오. 각 동네의 주민자치회나 통장님들을 취재했다.
오은형 : 원예사회복지사. 꿈틀어린이도서관 관장이었다. 요즘은 식물을 통한 치유를 강의하며 동대문 곳곳에 출몰한다. 각 동네의 도서관이나 주민 공간을 취재했다.
정담희 : 공익 활동에 관심이 많아 함께했다. 육아를 위해 잠시 쉬고 있지만, 곧 만날 수 있기를~. 초기 동네 역사와 사람들을 취재했다.
박혜진 : 원래 배우였다. 배우라 그런지 공감 능력 울트라 파워 캡 짱!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잠시 멈춘 배우 생활을 언젠가 다시 시작할 거라 한다. 곧 극장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네 사람들과 주민 공간을 취재했다.
박혜원 : 마을공동체 활동에 관심이 있어 합류한 시민나루 첫 청년 기자다. 동대문구 (생활)시민이 된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취재하며 동대문구 준전문가가 되었다. 주로 인터뷰를 영상으로 남기고, 주민 공간을 취재했다.
최다솔 : 지역 활동에 관심이 있어 맛만 보려 공익활동가 인턴으로 들어왔다가 발목 잡혔다. 다이어리를 표구하고 싶을 정도로 손글씨가 예술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고민이다. 주민 공간을 취재했다.
책속에서
[P.6] 우리가 이 책을 내어놓은 의미는 분명하다. 여기에는 ‘우리가 몰랐던’ 우리 동네가 있고, 우리가 몰랐던 동네의 역사가 있고, 우리가 몰랐던 독특한 인생관이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많은 얼굴로 우리 가까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어떤 대중매체에서도 전하지 않는 우리 동네, 동네 사람들의 ‘진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 사람들이 집값이 아니라, 주변의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서로와 이어져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우리의 바람은 소박하다. 우리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고, 우리 동네가 생각보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즐길 거리와 만날 사람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 이 책이 이 소소한 바람의 시작이 되고 매개가 되길 희망한다. _ ‧
[P. 20] <서문> 중에서
[P. 58] 성동역은 기획부터 운영까지 상당 부분 ‘상업적으로 대규모 물류, 유통’을 목적으로 기획된 기차역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1960년 6월 4일에 공설시장 형태로 출발한 ‘경동시장’은 성동역 바로 앞에 만들어졌었다. 성동역이 이미 대규모의 상거래를 염두해두고 기획된 역이었다면, 그 인근(현재는 제기동역 인근)의 대형 시장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그 기원에 대한 설명이 된다. 경동시장, 약령시장을 제외하면, 현재 ‘청량리’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는 시장들이 많지만(청량리 도매시장, 청량리 종합시장, 청량리 농수산물시장 등), 행정구역상 이 대형 시장들은 모두 다 예외 없이 ‘제기동’ 소속이고, 60년 이상 된 오래된 시장이기 때문이다. 성동역이 있던 옛날 제기동은 대규모 시장이 모여 있는 상인들의 천국이었다. _ ‧
<제기동 - 보물을 품은 상인들의 메카> 중에서
‘회기동 사람들’은 회기동 주민과 상인, 청년들의 즐거운 네트워크로 재미난 동네를 만들기 위해서라는데, 노원구에서 여기까지 4년째 오고 있다는 김대현 씨 얘길 들으니 재미가 뭘까 더 궁금해진다. 스물 세 살의 4년 차 지역 활동가는 기존 동네 축제라고 하면 어르신들을 위한 잔치 정도로 생각했지만 직접 기획하며 진행하니 달랐다. “되게 재미있었어요. 실제 뭔가 주민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도 그렇고요. 제가 만든 축제를 사람들이 즐겁게 참여하고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가 느낀 즐거움 같아요.” _‧
<회기동 –
속사포의 후예들과 골목의 역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