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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 시선]
ㆍ지정에게 _ 13
ㆍ북경에 가는 이행을 보내며 _ 17
ㆍ질정관으로 북경에 가는 안선지에게 _ 18
ㆍ시를 보내준 벗 이행에게 _ 23
ㆍ갑인(甲寅)에 닻줄을 풀다 _ 26
ㆍ택지에게 화답을 청하며 _ 28
ㆍ장어사 다리 위에서 추석 달빛을 즐기며 _ 31
ㆍ지정과 용재에게 _ 33
ㆍ어제 만리뢰에서 술을 마시며 고금의 인물과 사적을 맘껏 담론하고 취한 몸을 부축받아 집에 돌아왔다. 한밤에 술이 깨니 어제의 일이 또렷하게 생각나기에 고체시 7수를 읊고 등잔불을 가져오게 하여 종이에 써서 이튿날 용재에게 보내어 전날 시 7편을 보내 준 데 답한다. _ 37
ㆍ아내마저 죽고 나니 _ 40
ㆍ남곤의 집 동산에서 _ 41
ㆍ만리뢰 _ 44
ㆍ택지에게 게으름을 사과하며 _ 46
ㆍ연경에 사신으로 가는 택지를 보내며 _ 49
ㆍ차일암에 놀면서 _ 50
ㆍ벽에 적다 _ 51
ㆍ택지와 함께 만리뢰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_ 52
ㆍ술 한 잔에 회포를 풀며 _ 53
ㆍ오피궤를 용재에게 주며 _ 54
ㆍ배 안에서 신륵사를 바라보며 _ 55
ㆍ행희 스님이 시를 청하기에 _ 56
ㆍ택지가 밤 늦게 찾아들어 _ 57
ㆍ문 닫고 앉아서 _ 58
ㆍ만리뢰에서 _ 59
ㆍ혼자 앉아서 _ 60
ㆍ어제 직경을 방문하고 돌아와 율시 한 수로 회포를 서술하다 _ 61
ㆍ새벽에 바라보며 _ 62
ㆍ새벽에 일어나 앉아 _ 63
ㆍ두 포기 대나무 분재를 용재에게 보내며 _ 64
ㆍ몇 날 소식이 끊겼기에 택지에게 _ 65
ㆍ술 취해 돌아왔다가 택지의 편지를 받아보고 _ 66
ㆍ중양절 택지에게 편지를 보내며 _ 67
ㆍ용재 선생께 _ 68
ㆍ모두들 병을 앓고 있으니 _ 70
ㆍ성지(誠之)가 급제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년 윤달 27일 우중(雨中)에 중열(仲說)이 술에 취해 동래(東萊) 유배지의 숙소에서 쓰다. _ 71
ㆍ남곤에게 _ 72
ㆍ복령사 _ 73
ㆍ배 안에서 달을 바라보며 _ 75
ㆍ순부의 죽음을 슬퍼하며 _ 76
ㆍ먼지 낀 술잔을 씻으며 _ 78
ㆍ밤중에 누워서 시를 외다가 _ 79
ㆍ수영(水營) 뒤의 정자 _ 80
ㆍ이원영의 시와 같은 운으로 읊어서 호남으로?내려가는 죽서주인을 송별하며 _ 82

[이행 시선]
ㆍ늙은 말 _ 85
ㆍ벗에게 답하다 _ 86
ㆍ상강 대숲 그림에다 _ 87
ㆍ아우 채지(采之)의 집 벽에 적다 _ 88
ㆍ늙은 말을 망아지로 바꾸면서 _ 90
ㆍ청학동 뒷고개에 올라 _ 91
ㆍ병풍 그림에 쓰인 박은의 시 뒤에다 _ 93
ㆍ사월 이십육일 동궁의 이어소(移御所) 직사(直舍)의 벽에 적다 _ 94
ㆍ이십구일에 다시 숙직하다 느낌이 있어 앞 시의 운을 써서 짓다 _ 95
ㆍ국화 _ 96
ㆍ침류당에서 _ 97
ㆍ봄날의 시름은 봄풀 같아 _ 99
ㆍ서로 돌아갈 것도 잊은 채 _ 101
ㆍ읍취헌이 유배가면서 맡긴 매화 분재 _ 102
ㆍ우연히 지은 시 _ 104
ㆍ평생의 실수를 뉘우치며 _ 106
ㆍ멀리서 그리워하며 _ 108
ㆍ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_ 109
ㆍ이야기를 듣고서 _ 111
ㆍ차가워졌다가는 또 뜨거워지네 _ 113
ㆍ혼자 술 마시며 _ 114
ㆍ쥐가 밤낮으로 당돌하게 설치기에 덫을 놓아 잡아서 죽이다 _ 115
ㆍ시냇가에서 홀로 시를 읊다 _ 117
ㆍ술에 취해서 _ 118
ㆍ생일날 짓다 _ 119
ㆍ가뭄 _ 121
ㆍ슬프구나 궁한 새야 _ 122
ㆍ합천에서 소쩍새 울음 소리를 들으며 _ 123
ㆍ흰 옷을 입고 돌아오니 _ 124
ㆍ지정을 그리워하며 _ 125
ㆍ팔월 십팔일 밤 _ 126
ㆍ‘반령에서 잠시 쉬며[半嶺小憩]’ 시에 차운하다 _ 127
ㆍ‘서릿달[霜月]’시에 차운하다 _ 128
ㆍ세상을 떠나 숨은 정희량을 그리워하며 _ 129
ㆍ박은의 시를 읽으며 _ 131

[부록]
ㆍ박은의 시와 삶/ 홍순석 _ 137
ㆍ이행의 시와 삶/ 홍순석 _ 142
ㆍ原詩題目 찾아보기 _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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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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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1479~1504)은 조선 연산조의 대표적인 시인이요, 갑자사화에 희생된 지사이다. 연산군의 폐정으로 자신의 큰 뜻을 펴지 못한 채 26세에 요절한 그는 시와 술로 일상의 낙을 삼았다. 짧은 생애 속에서도 적지 않은 작품을 남겼던 것은 그 때문이다.
󰡔읍취헌유고(挹翠軒遺稿)󰡕에 전하는 그의 시는 여러 대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되었다. 특히 김만중 같은 이는 “읍취헌의 시 솜씨는 삼백 년 만에 한 사람 날 정도다”라고 격찬하였다.
박은은 비교적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부친은 한성부 판관 담손(耼孫)이며, 모친은 경주 이씨(慶州李氏)로 제용감(濟用監) 직장(直長) 이이(李苡)의 딸이다. 아내 고령 신씨(高靈申氏)는 대제학 신용개(申用漑)의 딸이다. 신숙주(申叔舟)의 증손녀가 된다. 박은은 어려서부터 조모 청주 한씨(淸州韓氏)의 사랑과 지엄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김종직의 문인인 최부(崔傅) 밑에서 수학하여 17세에 급제하였다. 장인 신용개의 비호와 함께 순탄한 벼슬길을 시작하였다. 따라서 나름대로의 포부 역시 지대하였다. 그러나 그가 직면한 현실은 그의 이념과는 상치될 뿐이었다. 그의 정신적 방황이 여기서 시작된다. 끝내 정치적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그는 갑자사화에 희생당할 때까지 교우와 함께 시와 술로써 일상의 낙을 삼았다.
-<박은의 시와 삶> 중에서

이행(1478~1534)은 우리 한시 문단에서 박은과 함께 연산, 중종조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허균은 이행의 시를 가장 아낀다면, 우리나라 제일의 시인으로 손꼽힐 만하다고 하였다. 60편이 넘는 부(賦)를 남긴 이행은 부가(賦家)로서도 명성이 있다. 또한 그림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어 많은 제화시를 남겼다. 이행은 다방면에 재능을 보인 것처럼 남다른 인생 체험을 하였다.
연산, 중종조의 무오, 갑자, 기묘사화를 직접 겪었다.
그리고 신분상으로도 유배지에서의 노비로부터 좌의정까지 두루 지냈다. 관각을 대표하는 대제학의 자리에도 있었다. 일생 동안 네 차례나 유배되었고, 결국은 57세의 나이로 유배지에서 일생을 마쳤다. 실로 그의 인생 자체가 시였음을 감지할 수 있다.
- <이행의 시와 삶>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