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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상의 거리를 재다
김윤식 교수님 영전에 바칩니다 ㆍ 33

제1부
출생에서 학병까지(1921-43): 식민지 청년의 이중자아
1. 산과 강과 바다를 함께 품은 작가의 고향, 하동 ㆍ 45
2. 진주농업학교 부적응 자퇴생 ㆍ 83
3. 선망과 좌절의 도시 교토 ㆍ 97
4. 자유의 공간 교토 ㆍ 119
5. 일제의 인재양성제도 ㆍ 159
6. 스페인 내전과 인민전선사상 ㆍ 183

제2부
학병시절(1944-45): 누구를 위한 출정인가
7. 소주 60사단: 용병의 비애 ㆍ 203
8. 1945년 상해: 혼란 속의 희망 ㆍ 233
9. 학병은 친일부역자였나 ㆍ 271

제3부
되찾은 산하(1946-64): 두 개의 조국
10. 교사 시절: 좌익과 반동 사이 ㆍ 291
11. 아비규환: 6·25 전후의 진주 ㆍ 315
12. 마산, 나그네의 고향 ㆍ 339
13. 실록소설 『산하』와 이승만 정권 ㆍ 367
14. 부산, 주필 시대의 예낭 ㆍ 389
15. 감옥과 작가의 탄생 ㆍ417

제4부
위대한 변신(1965-79): 작가의 탄생
16. 이병주 문학의 원형 『소설 알렉산드리아』 ㆍ 445
17. 학병문학의 효시 『관부연락선』 ㆍ 467
18. 김수영의 죽음: 1968년 6월의 비극 ㆍ 479
19. 민족의 성산(聖山) 지리산 ㆍ 495
20. 실록소설 『남로당』 ㆍ 521
21. 박정희 정권, 『그해 5월』 ㆍ 539

제5부
전두환 시대: 민족의 불행으로 탄생한 정권
22. 1980년 개헌: 이병주의 모순투성이 헌법관 ㆍ 581
23. 유폐된 반영웅: 백담사의 전두환 ㆍ 597
24. 『전두환 회고록』: 운명적 선택이라는 모순 ㆍ 615
25. 이병주와 이문열, 황석영: 제도교육의 한계를 극복한 문인들 ㆍ 661

제6부
인간관계: 특별한 친구들
26. 청년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 박희영과 강신옥 ㆍ 675
27. 침묵 속에 떠난 이후락: 박정희의 제갈조조 ㆍ 695
28. 진주 친구들: 김현옥과 이병두 ㆍ 713
29. 이병주의 여인들 ㆍ 725

제7부
작품과 작가론
30. 독서 대가 이병주 ㆍ 761
31. 역사소설 ㆍ 789
32. 이병주의 대중소설 ㆍ 823
33. 이병주, 법과 문학의 선구자 ㆍ 851
34. 불교도의 산 사랑 ㆍ 865
35.『소설 장자』, 동양 고전의 종합 평가서 ㆍ 889
36. 두 도시 이야기: 파리, 뉴욕 ㆍ 909

제8부
아듀, 조국이여, 산하여
37. 떠나보내기 ㆍ 931

그는 역사를 불신했다, 그리고 현실에 분노했다
ㆍ 책 끝에 붙이는 말 ㆍ 967

이병주 연보 ㆍ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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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평전 : 태양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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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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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주를 말하다
대한민국 소설가 이병주(李炳注, 1921-92)의 고향은 산과 강과 바다를 함께 품은 경상남도 하동으로 그를 작가로 키워낸 정서적 자양분은 모두 지리산과 섬진강, 남해바다 하동 포구가 배양한 것이다.
그는 10대 후반에 반항아로 학교문을 뛰쳐나온 이래 일본 유학, 학병, 해방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군사 쿠데타와 투옥에 이르는 격동의 세월을 살았다. 대학교수에서 언론인을 거쳐 전업소설가로 변신한 후 짧지 않은 세월을 세인의 이목을 끌며 사랑과 증오를 함께 누렸다.
이병주는 어린 시절부터 글을 읽고 쓰기를 즐긴 신체가 허약한 아동이었다. 그는 학교에서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읽고 프랑스 문학에 감동받았고, 친삼촌에게서는 민족주의자의 험난한 생애의 비애를 배웠으며, 외삼촌에게서는 독일 과학에 대한 동경의 개안을 얻는다.
평생 이병주를 괴롭혔던 해묵은 의제는 빨갱이, 빨치산 전력 시비다. 그는 자신에게 따라다닌 좌익 혐의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예민하게 반응했고 그의 사상적 편향에 대한 의심 때문에 숱한 오해와 불이익을 당했다.
이병주는 소설과 에세이집을 합쳐 어림잡아 단행본 100권 이상의 작품을 출간했다. 이중에는 여러 권짜리 ‘대하소설’을 포함하여 장편소설만도 80여 편에 이른다. 작품이 다룬 주제도 정치, 사상, 사회, 시정풍물, 기업행태 등 다양하며 지식인의 좌절과 정치적 항변을 소설에 담았다. 이병주 문학은 사회의식의 소설적 반영이었다.
1961년 8월, 이병주는 『새벽』과 『국제신보』에 실린 두 글로 인해 법정에 서게 된다. 대한민국 언론사를 장식한 수많은 필화사건의 한 단면이다. 분단 후, 작가 구속 제1호 사건이다. 필화가 없었다면 언론이 본업이고 창작이 부업이었을 그는 총칼로 당한 억울함을 붓으로 톡톡히 갚고자 본업을 작가로 바꿨다.
사람은 시대의 상황이 만드는 것이고, 인간은 운명의 이름 아래서만 죽을 수 있다는 그의 수사처럼 작가 이병주도 한국의 상황이 만들어내고 죽인 작가다. 문학이야말로 개인적이자 세대적 경험의 산물인 것이다.

비극으로 마감한 동갑내기 김수영
1968년 6월 15일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이병주와 함께 술을 마시다 폭언을 퍼붓고 자리를 박차고 나간 김수영이 버스에 치여 세상을 떠난다. 김수영의 때 이른 죽음에 이병주가 관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후세인들은 이병주를 미워했고 이병주는 그 미움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이병주와 김수영은 생전에는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지만 사후에는 도봉산 중턱에 두 사람의 문학비가 지척에 서 있다. 마치 이병주가 죽어서도 24년 먼저 떠난 김수영에게 상석을 내주어 미안한 마음을 표한다는 듯이.

한국이 낳은 가장 뛰어난 이야기꾼
프랑스 문학 전공자로 자처한 이병주는 나폴레옹이 검으로 이룬 업적을 자신은 펜으로 이루겠다던 발자크처럼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구성을 바탕으로 자신은 ‘한국의 발자크’가 되겠다는 야심을 키웠다. 이병주와 발자크의 생애는 서로 닮은 점이 많다고 한다.
이병주의 문학사상을 형성하는 데 중심이 된 대가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 대표적 3대 거인으로 니체, 도스토옙스키, 사마천을 들 수 있고 그외에 발자크,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사르트르, 루쉰, 그리고 다산 정약용의 영향을 받았다.
이병주의 대중소설 내지는 ‘통속소설’이 동시대작가들의 작품과 결정적인 차이는 그의 대중소설에는 어김없이 시대현실에 비판적인 지식인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들 지식인 주인공 내지는 주역의 입을 통해 사회적 자의식과 세태비평이 빠짐없이 등장하며, 광범위한 범주의 지식인 딜레탕트가 개입한다. 특히 정치의식을 드러내는 소설들은 저널리즘적 대중성을 짙게 드러내면서, 대중의 교양 욕망, 사회와 정치현실에 대한 비평적 시각과 욕망을 유도하고, 텍스트를 통해 대리만족을 구하는 대중독자의 기호를 충족해주었다.

『산하』(1~7)는 이승만 시대를 그린 대하 실록소설이다. 작품의 주인공 이종문은 맹목적인 이승만 숭배자다. 경상도 김해 출신 노름꾼 이종문은 무작정 상경하여 도박 실력을 십분 발휘해 재산을 모으고 회사를 이승만에게 바치고 대통령의 양자가 되고 건설회사의 거부가 되고 국회의원으로 영화를 누리다 몰락한다.

『관부연락선』(1~2)은 학병문학의 효시로 이병주 최초의 장편소설이자 대표작으로 당시까지 한일 관계를 다룬 작품의 백미로 인정받는다. 그가 남긴 수많은 작품 중에 유독 이 작품만이 평단의 지속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 작품이 다룬 시기는 후속 작품 『지리산』과 유사하다. 『지리산』은『관부연락선』의 속편으로 인식된다. 『관부연락선』이 학병 체험에 기반을 둔 ‘허구적 사실’이라면, 『지리산』은 ‘만약 그때 학병에 지원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가정 하에 쓴 ‘사실적 허구’다.

『지리산』(1~7)은 격동기의 현장을 다루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평가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일제하의 창씨개명, 친일 유명인사의 행위에 대한 평가, 독일의 프랑스 침공, 스페인 내전, 일본 공산당의 움직임, 문학, 교육제도, 군국주의 철학, 천황제 등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 농촌문제, 건준과 인공, 그리고 남북분단에 이르는 과정, 과격 폭동, 소시민적 부르주아 의식, 혁명적 인간상, 서대문형무소의 모습 등 시대적 삽화들이 만화경처럼 어우러져 있다. 이들 삽화는 궁극적으로 반공을 위한 기초자료 역할을 한다. 특히 여순 반란사건과 러시아혁명, 제주 반란사건의 분석은 탁월한 역사적 혜안을 느끼게 한다.
이런 역사적 비극의 뿌리를 다루면서 작가는 극한적인 대립 상황에서도 인간은 인간일 수밖에 없으며,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극단적인 비극은 예방될 수 있다는 신념을 작품 전편에 투영한다.

『그해 5월』(1~5)은 한마디로 박정희 정권 18년에 대한 정치적 단죄를 위해 쓴 것이다. 역사 드라마 속에 자신에게 내린 부당한 재판의 판결문을 전제하는 등 시종일관 박정희에 대한 개인적 원한을 감추지 않았다. 몇몇 장면에서는 이병주의 정치적 소신과 함께, 그 소신을 지켜나가는 데 수반된 인간적 고뇌를 감지할 수 있다.

『바람과 구름과 비』(1~10)는 이병주 역사소설의 백미로 세상과 시대에서 소외된 주변부의 비천과 비루함을 제 운명으로 타고난 인물들이 세상을 뒤바꿀 한마음으로 작당하여 결사에 이르는 것이 이 장편소설의 중심서사다. 작품의 중심인물들은 하나같이 박복한 사람들로 혁명가의 기질을 운명적으로 타고났다.

역사를 불신하고 현실에 분노하다
이병주는 산천을 사랑하는 양민이 전쟁의 두려움 없이 일상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영세중립국을 염원하고,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사회 민주주의를 신봉하여 스웨덴과 같은 복지국가를 꿈꿨다. 그는 참된 지식인의 색깔은 흑도 백도 아닌 회색이고. 회색은 포용의 색이라면서 자신만의 회색 정원을 가꾸었다.
후진국 작가로 출발해 중진국 작가로 떠난 이병주는 역사에 대해 격렬하게 분노했다. 나라가 불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진보하기 마련이다. X세대, MZ세대 등 끝없는 분절에도 불구하고 세대를 이어 연면하게 전승되어야 하는 미덕은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과 포용이다. 문학이 세대를 넘어 전승되려면 상상의 고리가 이어져야만 한다. 이병주는 이른바 주류문학의 기준으로 볼 때 그를 기릴 이유만큼이나 미워할 이유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작가로서 한국문학사에 기여한 공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평론가나 동료문인의 작가가 아니라 오로지 독자만을 섬긴 작가였다.
지은이 안경환은 문자와 이성의 시대에 작가는 지상의 스승이었고, 나아가 신의 세계로 이르는 길을 인도하는 사제였기 때문에 작가는 광범한 면책특권을 누려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다. 작가의 특권과 특전을 최대한으로 존중하는 사회, 그런 사회야말로 인간이 참주인이 되는 세상이 온다는 것이다. 안경환은 또한 문학작품은 시대의 거울이자 개인과 공동체 삶의 성찰을 담은 경전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사랑이 없는 사상은 메마르고, 사상이 빠진 사랑은 경박하다”라고 믿었던 그 시대 사랑과 사상의 만화경으로서 이병주의 작품들은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비록 그가 작품으로 받아낸 시대의 사상과 대중의 기호는 더 이상 현세 독자의 몫은 아닐지라도 되돌아볼 시대의 거울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자료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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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내게는 외삼촌 두 분이 계셨다. 그런데 그 가운데 큰 외삼촌은 폐결핵으로 돌아가셨다. 김홍섭이란 이름의 그 외삼촌은 내게 하모니카를 가르쳐주고 난생처음으로 토마토를 내게 먹여주었다. 60년 전의 그 무렵, 지리산 근처 우리 마을에선 하모니카는 하나의 악기이기
이전에 희귀한 물건이었다.“
[P. 97] “교토는 숲속에 꿈꾸고 있는 듯한 도시다. 꿈과 그늘의 도시다. 꿈처럼 아름답고 그늘처럼 고요한 도시다. 외향부터 오사카와는 다르다. 사람들의 표정도 걸음걸이도 다르다. 언어도 그렇다. 같은 간사이(關西) 말이라 굴곡이 심한 것까지는 비슷하지만 교토 말은 굴곡의 마디마디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이어지는데, 오사카 말은 골곡의 마디가 깨어진 유리조각 끝처럼 거칠다. 같은 말을 해도 교토 사람이 하면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고, 오사카 사람이 하면 시비를 걸어오는 것 같다.”
[P. 379] 자신의 생애에 일어난 어떤 경험이건 주제이건 피하지 않던 이병주도 끝까지 대화의 주제로 삼기 싫어했던 사건이 있었다. 가능하면 평생 숨기고 싶었던 사실이다. 남재희는 이병주가 이 과거 전력을 몹시 꺼려해서 어쩌다 이야기가 나오면 서둘러 화제를 바꾸곤 했다고 한다. 지인들도 이 문제만은 알아서 언급을 회피해야 했다. 그것은 이병주가 한때 정치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