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노라 캐링턴의 『귀나팔』(이지원 옮김)이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3권으로 출간되었다. 리어노라 캐링턴은 1917년 영국에서 태어나 멕시코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이자 소설가로, 초현실주의적인 그림을 그리고 신비주의적인 글을 쓴 작가다. 때마침 2022년 4월 23일부터 시작되어 11월 27일까지 열리는 제59회 베네치아비엔날레의 주제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는 캐링턴이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쓴 환상적인 그림책의 제목을 빌렸다. 이번 비엔날레의 큐레이터인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초현실주의 작가는 상상의 프리즘을 통해 삶이 끊임없이 재구상되고 모든 사람이 변화하고 변형되고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있는 마법의 세계를 묘사한다. 이 전시는 우리를 신체의 변형과 인간에 대한 정의들을 통해 상상의 여행으로 안내한다.”고 밝히며, 전시의 제목이 된 캐링턴의 이야기가 “모두를 두렵게 하는 꿈 같은 스타일로 자유롭고 가능성으로 가득 찬 세상을 묘사하는 한편, 개인의 삶을 압박해 추방한 시대를 비유”한다고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연인이었던 막스 에른스트가 군 수용소에 억류되자 정신착란을 겪으며 정신병원을 전전하다가 다른 사람과 혼인신고를 한 뒤에 뉴욕에 이어 멕시코시티로 떠날 수 있었던 캐링턴은 낯선 곳에서 비로소 “고정되고 일관된 정체성의 제약을 벗어나 놀라운 힘과 신비를 지닌 인물”들을 창조하며 삶을 살 수 있었다. 『귀나팔』은 이렇게 20대 중후반이었던 1940년대 초에 다른 곳에 머물게 된 리어노라 캐링턴이 서른세 살이 된 1950년에 완성한 글이다. 주인공은 아흔두 살의 여자 노인 메리언 레더비이다.
꿈과 친구를 간직한 인간
영국인 여성 메리언 레더비는 아흔두 살이고, 채식인이며, 멕시코로 추정되는 한 주거지역에서 아들네 가족의 집에 얹혀산다. 이 나라를 벗어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채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매주 적당히 사소한 즐거움을 만들어 가며 지낸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메리언을 위해 어느 날 이웃 친구 카르멜라가 ‘귀나팔’을 선물한다. 이 귀나팔을 통해 메리언은 자신을 양로원에 보내려는 아들 가족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곧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도시의 남쪽 끝 변두리 지역의 시설에 가게 된다. 이곳에서 메리언은 기이한 노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흥미롭고 놀라운 일들을 겪게 되고, 예기치 않은 삶을 마주하게 된다. 소설을 이끄는 주인공은 90대 여자 노인이지만, 일반적으로 품게 되는 예상과 달리 주인공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기회를 얻는다. 그 기회의 씨앗은 주인공이 스스로 키워 왔다. 메리언은 비록 남미에 매여 있지만 언제나 북쪽 라플란드를 꿈꾸며, 그 꿈을 친구와 나눈다. 친구는 친구의 꿈을 기억하고, 친구의 꿈이 성사되도록 돕는다. 그렇게 친구와 친구는 또 다른 친구들과 새로운 세상을, 다른 삶을 맞이할 준비를 해 둔다. 돌아보면 세상을 향한 통로가 되는 귀나팔을 예비해 준 이 역시 친구였다. “이 굉장한 나팔이 네 삶을 바꿔 놓을 거야.”(본문 17쪽) 여러 상황과 무관히 꿈을 잃지 않는 친구를 어떻게든 세상과 연결시켜 주기 위한 한 친구의 선택이 결국 친구를 둘러싼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음을 이 소설은 증명하는 듯하다.
인간과 비인간
“『귀나팔』은 주술과 기생명체가 등장하는 동화이자 음모와 암살과 반전이 줄을 잇는 스릴러물이고, 기성 관습에 대항하는 소수자 투쟁의 서사, 새롭게 태어나는 입문 의식의 서사, 성배의 신화와 연금술을 응용하는 신비주의 서사가 그에 접목되어 있다. 나아가 연령주의와 엄숙주의를 비판하고, 생태여성주의와 젠더 유동성을 체화하는 동시에 더 급진적으로 몰고 가는 작품이다. 눈길을 뺏는 요소가 이렇게나 많기 때문에 묻혀 버리곤 하지만, 이 소설에는 늙은 여자들의 회상과 꿈을 중심으로 구성되는 서사가 암류처럼 흐른다.”(옮긴이의 글 중에서) 이 노인 친구들은 주변을, 인간과 동물을 돌보는 데 익숙하다. 이들의 돌봄은 두드러지지 않지만, 세상이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미리 기름칠하듯 이루어진다. 그러다 부당한 문제가 발생하면 거리낌 없이 함께 행동한다. 생명을 건 연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의 용기 있는 선택 앞에서, 마치 그 선택을 존중하듯 세상은 변한다. 다시 시작하는 세상을 목도하는 존재들은 여성, 노인, 사회적 약자, 동물, 그리고 변종 생명체이다. 흥미진진하고 신비로운 과정을 거쳐 종말에 다다른 세상에 인간과 비인간이 보란 듯이 함께 서 있다. 우리의 현실을 꿰뚫고서 미래를 미리 해방시켜 둔 편린들이 곳곳에서 빛나는, 우리에게 새로운 열린 시간을 미리 얻을 기회를 마련해 둔 책이다.
책속에서
[P.11] 내게 귀나팔을 선물했을 때, 카르멜라는 결말을 어느 정도 예견했던 것 같다. 카르멜라는 악의적이라 할 수는 없고 다만 유머 감각이 묘할 뿐이다. 이 귀나팔은 귀나팔 중에서도 상당히 훌륭한 표본으로, 아주 현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은과 자개로 상감하고, 물소의 뿔처럼 웅장한 곡선을 그리는 특출하게 예쁜 것이었다. 귀나팔의 장점은 미적인 면모에서 그치지 않고 소리를 증폭하는 성능도 대단해서 내 귀에도 일상 대화가 웬만큼 들릴 정도였다.
[P. 14] 이 모든 것은 여담일 뿐, 내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 정신은 오락가락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 이상으로 그러지는 않는다.
[P. 15~16] 매주 사소한 즐거움이 적당히 찾아온다. 월요일에는 날씨가 온화하면 길을 따라 두 블록을 걸어서 친구 카르멜라를 보러 간다. 카르멜라는 아주 작은 집에서 조카랑 같이 사는데, 조카는 스페인 사람이긴 하지만 스웨덴식 찻집에서 케이크를 굽는 일을 한다. 카르멜라는 아주 쾌적한 삶을 살고 있고 정말이지 매우 지적이다. 손잡이가 달린 안경을 사용해 책을 읽고 나와 달리 혼자 중얼거리지 않는다. 기발한 스웨터를 짜기도 하지만 그녀의 진짜 즐거움은 편지 쓰는 것에 있다. 카르멜라는 전 세계에 있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 다음 본명이 아닌 각종 낭만적인 이름으로 편지 끝에 서명을 한다. 카르멜라가 익명의 편지를 경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효율성을 감안한 것이다. 끝에 이름을 서명하지 않은 편지에 누가 답장을 쓰겠나? 카르멜라의 섬세한 필체로 쓰인 이 놀라운 편지들은 천상의 방식으로, 항공우편으로 날아간다. 누구도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이게 바로 인류의 불가사의한 면모다. 사람들은 뭔가를 할 시간이 항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