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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 4

제1장 퇴고(推敲)
의지의 계보(系譜) · 14
어떤 반칙 · 20
퇴고(推敲) · 25
회심(回心)의 반전 · 30
자연의 존재방식 · 35
모녀 · 40
알파고와 사바고(娑婆苦) · 45
불한(不汗)의 예술 · 50
녹색 면허증 · 55

제2장 첫걸음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 · 60
첫걸음 · 66
생명과 생명 아닌 것 · 71
프로이트에게 빚진 사람들 · 76
유목민의 신기(神氣) · 81
지남(指南)의 돌 · 86
로댕과 코가 깨진 남자 · 93
움직이는 화폭(?幅) · 98
자유의 두 얼굴 · 103

제3장 고궁의 담 안쪽
에덴으로의 회귀 · 110
이판사판 · 115
고궁의 담 안쪽 · 120
탈을 써야 탈을 벗지 · 125
선입견의 폭력 · 130
생각 따로 말 따로 · 135
촌스러운 질문 · 140
화계사 가는 길 · 145
그가 한국사람 된 까닭은 · 150

제4장 데자뷰의 반역
데자뷰의 반역 · 156
태양도 슬픔이 될 수 있는 땅 · 160
경박한 여행자 · 165
각광 그리고 상실 · 170
여름 산행 · 175
연금술사의 유전자 · 179
팍상한 폭포로 가는 길 · 184
룩소르에서 종묘까지 · 188
밀레니엄맨 · 193

제5장 식영(息影)의 뜰
건넌방 손님과 아버지 · 200
면죄부를 다시 읽다 · 206
아주 오래된 기억 · 211
욕망의 마지막 조건 · 216
여명(黎明)의 아우라 · 223
짝사랑의 뒷이야기 · 228
생명과 욕망 사이 · 233
식영(息影)의 뜰 · 238
쌍둥이 액자 · 243
죄진 채로 죽지 않으리 ·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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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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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철학성 짙은 작품으로 수필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홍혜랑의 수필선집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

독일 마부르크대학교 독어독문과에서 현대독일어를 전공하고 경희대, 고려대, 서울여대, 한국외대 등에서 20여 년 동안 교양 독일어를 가르쳤으며 한국번역가협회 번역능력인정시험 출제위원으로 8년간 일하느라 지천명의 나이에 수필문단에 데뷔하여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했던 홍혜랑 작가가 수필선집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을 출간했다.
홍혜랑 작가가 수필계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부터 일관되게 추구해온 화두는 ‘존재론적 인간 탐구이며, 치열한 성찰의 과정을 통한 철학성 짙은 수필’을 빚어냈다. 자기검열에 철저한 홍혜랑 작가는 인간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인간이 무엇인지 모르는, 창조될 때의 원초성을 찾아헤매는 고행이 바로 문학의 본령이라고 믿고 있다. 수필가이며 철학자인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는 “수필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으며 품위 있는 문학의 전형을 보여준다“며 홍혜랑 수필의 문학적 가치를 평했다.

제1장 ‘퇴고(推敲)’의 수필들은 홍혜랑 작가가 자신의 글에 대한 염결성을 보여주는 글이 꽤 실렸다. 쇼펜하우어의 어두운 비관주의를 극복한 니체철학을 이야기한 「의지의 계보(系譜)」, 한 편의 글을 마무리할 때 50번 이상의 퇴고를 거쳐야 한다는 「퇴고(推敲)」,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와 대결을 벌인 바둑에서 겨우 1승을 건진 이세돌 기사의 고군분투 이후 인공지능의 이야기를 그린 「알파고와 사바고(娑婆苦)」 등이 실려 있다.
제2장 ‘첫걸음’에는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선배 수필가 전혜린과의 인연과 뒷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을 비롯하여 세계적 문호 톨스토이가 63세 때 절제에 대해 고백한 장편 수필의 소회를 그린 「첫걸음」, 고대 그리스 문학은 오이디푸스라는 비극의 주인공에게서 운명을 보았고, 현대의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보았다는 「프로이트에게 빚진 사람들」 등 유명 철학가와 예술가, 정신분석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제3장 ‘고궁의 담 안쪽’에서는 택시 요금을 반씩 내자는 친구의 말에서 ‘다르기도 하면서 같기도 한 차연(差延)’이라는 개념을 풀이한 「에덴으로의 회귀」,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진동하던 약 타는 냄새, 원하는 목적지를 이정표에서 엉뚱하게 읽어버린 착시 모두 감각이 아닌 이성이 날조한 선입견의 작동이었다는 「선입견의 폭력」, 2007년 4월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세계를 경악케 한 무차별 총기난사사고가 난 후 추모모금을 한 한국인에 대해 감명받은 현각 스님의 이야기인 「그가 한국사람 된 까닭은」 등을 읽을 수 있다.
제4장 ‘데자뷰의 반역’에서는 백자 찻잔 속에 담긴 녹차의 색과 맛에 길들여져 다양한 색의 찻잔에 담긴 녹차의 맛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데자뷰의 반역」, 한국인의 핏속을 타고 도는 ‘정성’과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우주에 가득 찬 만물의 정기가 그들 연금술사를 도와준다’는 코엘료의 믿음을 비교하는 「연금술사의 유전자」, 기제의 피라미드, 고고학박물관의 미라 등 파라오의 죽음에 관한 것들만 보고 온 이집트 여행 이후 들른 종묘에서 조선왕조 27위에 대한 생각을 적은 「룩소르에서 종묘까지」 등에서는 새로운 글맛을 볼 수 있다.
제5장 ‘식영(息影)의 뜰’에서는 홍혜랑 작가의 개인사에 관한 글들도 실려 있다. 오래된 친정 한옥집 건넌방에 온 빚쟁이를 설득해 한옥집을 지켜낸 아버지의 사연인 「건넌방 손님과 아버지」, 대학시문 기자 시절 주간인 조지훈 시인의 이름을 대학신문에 잘못나오게 한 일에 대한 「면죄부를 다시 읽다」, 세상을 떠난 남편이 보낸 편지 속에서 발견한 원고뭉치에 얽힌 이야기인 「죄진 채로 죽지 않으리」 등에서는 철학적이지만 인간미를 담은 글맛을 볼 수 있다.

문학평론가이자 문학박사인 김봉군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는 “우리 근현대 수필에서 감각과 정서에 호소하는 서정수필, 서사적 수필, 동화적 수필과 비평적 에세이는 풍성하다. 정작 풍부한 사유를 형이상학적으로 고양(高揚)시킨 수필이 영성(零星)한 것은 아픈 대목”이지만 “홍혜랑의 수필은 그가 얼마나 ‘독서하는 현인’이기를 갈망하는가를 보여준다. 그의 독서 체험은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 동양 현자들과 소크라테스 칸트 헤겔 니체 토인비로부터 성 어거스틴에 이르는 서양 현인들을 섭렵한다. 그는 생명 일체의 본연성과 자유를 주장한 루소에 감동한다. 스피노자의 감성윤리학에 공감하는 것은 물론이다. 칸트를 니체의 지팡이로 보는 그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긍정에 손을 들어준다. 소크라테스의 견고한 성을 파괴한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 공감한다”면서 “분석적 사고의 취약성을 극복”한 홍혜랑 수필은 ‘수필계의 낭보’라고 말했다.
홍혜랑 수필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장 정확한 독자는 언제나 작가 자신이다. 묻어두었던 작품들을 꺼내 통독하다보니 여기저기에서 돌봄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고마웠다. 글자, 어휘, 문장, 구조, 더러는 메시지에 이르기까지 편하지 않은 자세를 어떻게든 고쳐주고 싶었다. 독백이 아니라면 작가는 외부와의 소통을 위해서 글을 쓴다. 소통을 극대화하려는 언어적 표현에는 한계가 없다. 퇴고는 ‘소통의 지름길’을 찾는 탐색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번 선집을 준비하면서 시종 떠나지 않았다. 좀 더 편안한 소통을 원하는 작품들의 편치 않은 자세를 외면할 수 없었다. 열댓 편의 신작들이 함께 실려 있어서만은 아니다. 선집이라기보다 가장 최근까지 퇴고한 작품집이 된 느낌이다”라고 「책을 펴내며」에서 술회하고 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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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의 영혼을 그토록 휘어잡았던 니체도, 파스칼도 그녀의 삶을 바꿔놓지 못한 것은 인생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녀는 독일 유학에서 돌아와 안정되지 않은 환경에서 겨우 4년여 동안 대학강단에서, 그리고 작품활동에 열정을 쏟았다. 어느 날 자신의 후배와 길을 가다가 사주 보는 사람 앞에 손을 내밀며 “내 손금에 자살할 운이 있는지 봐주세요” 하더란다. 나와 여고 동창생이던 그 후배의 전언이 지금도 안타까움으로 귓전을 맴돈다. 전혜린은 생전에 계획만 했을 뿐 수필집 한 권 묶어서 남기지 못했지만, 그녀가 바라던 삶은 학자보다는 작가였다. 사람마다 평가는 다르겠지만 한국의 수필가 중 그녀만큼 철학적 유전자를 지닌 여성이 또 있을까 싶다.
전혜린이 떠난 후 남은 사람들이 엮어낸 수필집들을 대할 적마다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책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유일한 지식은 책의 출판 연도와 책의 크기뿐이다.” 책속에 들어 있는 저자의 정신세계와 작품세계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부정확하다는 의미로 들린다. 더구나 주인공이 세상을 떠난 후 남의 손으로 만들어진 ‘작품 모음집’이고 보면 아나톨 프랑스의 혜안이 기우만은 아닐 듯하다. 전혜린의 수필집들을 손에 들면 출판의 시점, 작품 선정, 게재 순서, 책의 제목 등등 구석구석에서 저자의 호흡이 날아가버린 무채색의 이삭을 줍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저자는 책 출판을 앞두고 퇴고를 거듭하면서 가장 최선의 그리고 최근의 정신적 자화상을 담게 마련인데, 전혜린이 생전에 그런 수필집 한 권 출간해놓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부질없이 그리움이 솟는다. 학생기자 시절부터 전혜린 작가에게 원고도 청탁하고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녀의 철학과 지성에 대한 동경에서이기도 했지만 나의 성장환경에 있었던 우연한 공통점이 친화력의 밀도를 더했던 것 같다.
― 「운명이 손대지 못하는 시간들」 중에서
문학이 왜 철학가 칸트를 가까이하기 꺼려하는지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들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조금은 밝혀준 셈이다. 샌들 교수는 칸트의 자유개념이 까다롭다고 했다. 어렵다는 말 대신에 까다롭다고 한 것은 칸트철학의 ‘자유개념’이 세상에서 통용되는 경험적인 의미와 다르다는 뜻이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근원, 거기서만 누릴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칸트는 ‘도덕적 자유’라고 불렀다. 그리로 가는, 아니 가야 하는 당위의 발걸음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무조건 따라야 하는 정언명령이며 인간에게 내재된 이성이 그 길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문학이 칸트를 경원하는 이유는 칸트의 자유개념 하나만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규칙적인 산책으로 유명한 칸트가 산책의 규칙을 어긴 적이 있었는데 루소의 『에밀』을 읽는 데에 열중하느라 그랬다고 전해진다. 『에밀』이 어떤 작품인가.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루소의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리는 계몽주의 교육론이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자연의 상태로 보존하기 위해서는 끝임없이 자신을 교육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칸트가 루소의 『에밀』에 빠져 생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산책의 규칙을 깬 것이 실화인지 일화인지 알 수 없지만 상징하는 의미가 가볍지 않다. 칸트의 ‘자유’와 루소의 ‘자연’은 표현은 달라도 온전히 포개지는 존재론적 쌍둥이다. 루소의 자연의 땅에 설 때에만 칸트의 자유를 만날 수 있음이다. 자아(自我)의 비실체성을 자각하는 제법무아(諸法無我)의 경지가 자연의 땅이고 자유의 세계이리라.
― 「쌍둥이 액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