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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5

1장 / 트램펄린 위의 사람들·················27
트램펄린에서 살아간다면 29
흔들림 속에서 떠오르는 질문들 35
흔들림의 근원에서 심오함을 찾다 43
과학과 문법을 초월한 본질을 향하여 55
2장 / 철학이라는 작은 새················· 65
실재와 인식 67
진리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107
참된 세계의 존재 가능성 141
존재가 낳은 무, 무에서 태어난 존재 171
형이상학적 욕구에 관하여 191
3장 / 철학의 사다리 사이로··············· 201
나 스스로의 가치를 찾아 203
자아가 자아를 초월할 수 있을까? 225
심오함에 관하여 251

마치는 말 273

참고문헌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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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두드림 = Knocking on being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2937380 111 -22-6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2937381 111 -22-6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061684 111 -22-6 부산관 서고(열람신청 후 2층 주제자료실)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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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없는 세계를 꿈꾸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흔들림의 이유와 의미에 관하여 묻게 된다.”

철학은 늘 우리 삶 가까이에 있다. 살다가 문득 자기의 삶과 존재의 의미를 물으며 철학이 시작된다. 이 책은 적절한 비유와 화두를 통해 그런 질문들의 근원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이 직관적으로 인간의 내면적, 심리적 본질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존재의 두드림』의 특징은 참신한 비유들로 우리의 사고와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트램펄린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첫 번째 비유는, 언어적, 사회적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자아를 잘 그려내고 있으며, 두 번째 새장에 갇힌 작은 새의 비유는, 칸트와 비트겐슈타인 철학의 핵심적인 면을 추적해 나가는 길잡이가 되어 준다. 마지막으로 철학의 사다리에 관한 잠언들은, 인간적 삶과 명상의 관계에 대한 통찰력과 균형을 제공하는데, 명상은 삶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삶은 명상과 철학을 통해서 더 가치를 얻는다는 사실을 밝혀주는 창작 화두이다.

이 책은 동서양의 사상을 융합하여 명상과 철학의 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흔치 않으면서도 실천적인 철학책이라 할 수 있다. 진리와 존재에 대한 기존 철학사상들의 검토를 넘어 그 사상들이 우리 삶과 어떻게 연결되고 적용될 수 있는지 탐색한다. 신비주의적 명상을 삶의 현장으로 끌고 내려온다는 점도 매우 흥미로우며, 비트겐슈타인, 하이데거의 철학이 어떻게 명상과 철학의 만남을 암시하는지, 그리고 보통 사람의 삶의 의미에 관한 궁금증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에 관심을 가진다. 철학과 명상이 향하는 지점을 심층적으로 파고들지만, 그 목적과 본질은 우리 존재와 삶의 의미에 있다는 것이다.

『존재의 두드림』은 철학과 명상의 조화가 인간 내면의 본질적 요구임을 밝히고, 둘의 만남을 통해 현대인에게 삶의 깊은 의미를 회복시키고 자아의 근원적인 분열을 치유하고자 하는 책이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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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6]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은 『논리-철학 논고』에서 철학을 하는 이유를 철학이 필요 없음을 알고 철학의 사다리를 던져 버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중략) 철학의 사다리를 오른 후 사다리를 던져 버리라는 비유는 위대한 철학자의 말이라기보다는 신비주의 명상가의 가르침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길을 가라’는 불교의 유명한 비유와도 비슷하게 들린다. 철학에 식상한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이런 비유가 꽤 신선하게 느껴질 것이다.
- 시작하는 말
[P. 67] 철학은 새장 바깥으로 나갈 수 없는 작은 새다. 철학은 새장 안을 빙빙 돌며 새장 바깥에 나왔다고 착각하는 작은 새에 불과하다.
- 실재와 인식
[P. 131] 초월적인 실재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주장은, 언어가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실재는 그 한계 너머에 있다는 주장이다. 우리는 늘 언어의 한계를 느끼므로, 진리가 언어적이라면 우리는 그 한계 때문에라도 존재 이유를 다 알 수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말로 언어에 한계라는 게 있을까? 만일 있다면 그 한계는 누가, 어떻게 설정한 것일까?
- 진리를 언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