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36] 식당 카운터에서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공짜 귤을 오른쪽 주머니에 세 개, 왼쪽 주머니에 세 개 욱여넣어도 실망하느라 잠자코 입을 다무는 대신 으이그 하면서 어깨를 치는 사람이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네가 그냥 그런 사람이어서, 평범한 사람이어서 좋다고, 친밀하다고. 네가 나 같다고. 때론 미워 보일 정도로 욕심내 뭔가를 챙기다가도, 문득 마음이 허물어질 때면 남에게 속없이 다 퍼주기도 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자고. 너 역시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다 어깨를 쳐주면 좋겠다고.
내가 가진 단점, 나약함, 자주 하는 거짓말들, 사과하지 못한 실수들, 떳떳하지 못했던 많은 순간, 나만 아는 비겁함, 자신은 보지 못하고 바깥으로만 손가락질하는 이 마음을 네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거울을 보듯 중얼거리면서.
“그런 게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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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56~57] 그런 게 사람이죠
열아홉 겨울에 서울로 떠나고 집은 늘 잠시 다녀가는 곳 정도로 여길 때, 학교 다니고 회사 다니기 바빠서 나 좋은 거 나 바쁜 거 나 슬픈 거 그런 것에 빠져 고향 집은 먼지 앉은 닫힌 방처럼 여길 때. 그때도 이곳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할머니는 굽은 허리로 걸어가다가 혼자 일하는 엄마가 눈에 밟혀 또 가던 길을 멈추고 밭두렁을 올라와 풀을 뽑아주었을 것이다. 엄마 주름이 늘어가는 시간 동안 할머니 허리는 점점 더 굽어갔겠지. 이제 늙은 엄마와 더 늙은 할머니가 뙤약볕 아래에서 풀을 뽑는 가운데 나만 멀뚱히 서있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얼굴로. 우예 이키 착하나. 그런 말에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을 만큼 착하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
아무런 셈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는다는 자각 없이도 돕는 할머니 곁에서 나는 사람이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 듣는 것처럼 다시 배운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돕고, 힘든 사람이 힘든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이 슬픈 사람을 돕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도울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세상은 이미 틀렸다는 비관이나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다는 말 같은 건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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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셈도 없이 돕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