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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제1장 ‘중앙아시아’를 바라보는 서양의 관점들(고일홍·조민재)
제2장 유라시아 교류로 본 팬데믹과 한국 고대의 의약 문명(신동원)
제3장 스키타이 동물문양을 통해 본 고대 유목 세계의 광역 네트워크(이우섭)
제4장 唐 帝國과 그 주변의 세계: 국제질서이론의 검토를 중심으로(김지희)
제5장 유라시아와 고대 한국(권오영)
제6장 13-14세기 이동 정치와 몽골 네트워크 “황금고삐”(설배환)
제7장 기후위기 시대 아시아의 기후변화와 이주 문제: 역사 연구의 검토(고태우)
제8장 학살의 뒤에 자리잡고 있는 이데올로기: 통합을 저해하는 요소들(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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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메가아시아 = The continent and mega-Asia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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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를 떠난 호모 사피엔스 무리들이 지구 곳곳에 자리잡고 생존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멈추지 않는 이동성, 그리고 다른 개체와의 교류였다. 다양한 형태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무리의 규모는 끝없이 확대되었다. 고립된 개체 혼자가 아니라 배우자, 그리고 자녀가 더하여지면서 ‘우리’라는 단위가 생겨났다. 여기에 생존해 있는 부모, 형제, 자매가 추가되면서 ‘우리’의 규모는 계속 커졌다. 혈연관계에 있는 자들, 가까운 거리에 사는 이웃들이 추가되면서 ‘우리’의 규모는 계속 팽창하였다. 후대의 학자들은 ‘우리’를 무리, 밴드, 트라이브, 혹은 씨족, 부족 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우리’ 주변에서는 구할 수 없는 진귀한 물건을 얻기 위해, 혹은 사냥감을 찾아 헤매다가 우연히 만난 ‘남들’은 때로는 ‘우리’를 따뜻하게 대해주었고, 때로는 포로로 잡아갔다. ‘우리’ 힘만으로 힘들게 사냥하고 농사짓기보다 저 산 넘어 ‘남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아 오면 한동안 편안한 생활이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분지에 자리잡거나 강의 유역에 퍼져 있어서 동일한 생태환경에 처해 있는 집단들 사이의 관계는 급속히 변화하였다. 물물교환, 정보교류, 혼인 등 평화로운 관계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약탈과 살육, 인간사냥 등 폭력적인 관계도 나타났다. 그러면서 새로운 혼종문화가 나타나기도 하였다.
‘우리’라고 하는 단위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오면서 종전과는 비교할 수 없게 확대되었고, ‘우리’에 들어오지 않은 ‘남들’은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 내부의 모두가 평등한 것은 아니었고, 맡은 임무도 다양하였지만 ‘남들’을 상대할 때에는 ‘우리’는 우리였다. ‘남들’이 ‘우리’의 일부가 되고, 때로는 ‘우리’ 일부가 ‘남들’로 변화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체제, 즉 국가를 만들게 되었다. ‘우리’ 국가는 ‘남들’ 국가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협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