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서 울 대한민국의 모든 기억이 담긴 중심 02 수 원 정조의 꿈이 담긴 물의 도시 03 공 주 찬란한 백제 문화를 품다 04 천 안 어디로든 통하는 길 05 전 주 풍패지향의 문화관광 도시 06 광 주 끝나지 않은 그날 07 남 원 돌아올 봄날을 희망하는 예술의 고장 08 여 수 세 빛깔의 바다 09 제 주 잠들지 않는 섬 10 부 산 솥처럼 다시 끓을 날을 기다리며 11 대마도 천년의 경계 12 김 해 황금 바다의 전투사들 13 울 산 한국 최고의 산업 도시 14 경 주 황룡이 놀던 황금의 고장 15 대 구 분지에서 저항 운동을 외치다 16 안 동 두 가지 높은 뜻을 받들다 17 강 릉 신선들의 왕국 18 인 천 바닷길과 하늘길의 시작점 19 파 주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 수도 20 연 천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흔적 21 개 성 고려의 문화를 꽃피운 상도 22 해 주 임금에게도 굴하지 않던 도시 23 평 양 붉은 워싱턴 24 원 산 폭격의 아픔에도 나아가는 도시 25 함 흥 조선왕조의 성지 26 신의주 중국과 한국을 잇는 관문 27 단 둥 압록강 저 너머, 각국 첩보원의 암약처 28 지 안 잊힌 왕도 29 룽 징 별을 헤아리는 도시 30 닝 안 발해의 꿈을 간직한 도시
도판 출처
이용현황보기
이용현황 테이블로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029968
951 -23-48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3029969
951 -23-48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080117
951 -23-48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오늘날 내가 밟고 선 광화문 광장, 500년 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남한부터 북한까지 한반도 30개 도시를 통해 한국사의 흐름을 펼쳐내다!
서울, 제주, 부산, 개성, 평양, 신의주… 수천 년간 한반도의 문명을 꽃피운 30개 도시로 떠나는 한국사 산책
하룻밤에 왕조가 바뀌어도, 무자비한 외세의 침략에도 도시만은 그 자리에 남아 고유한 역사를 축적해 왔다. 그렇기에 ‘도시’를 보면 수천 년 세월이 고스란히 녹아든 한반도 전체의 역사를 꿰뚫어 볼 수 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금의 한반도를 있게 한 30개 도시에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중대한 사건부터 그곳에서 삶을 이어온 민중들의 모습까지 곳곳에 녹아 있다. 하루 한 도시, 가볍게 여행을 떠나듯 책을 펼치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섬세하게 통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도 몰랐던 도시 속에 숨겨진 새로운 역사 이야기 “도시의 역사를 알면, 반드시 그곳과 사랑에 빠질 것이다!”
‘한국사’라 하면 흔히 삼국 시대, 고려 시대, 조선 시대처럼 시대순으로 역사적 사건이 설명되기 마련이다. 이런 역사서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만 나열되어 재미를 찾아볼 수 없고, 달달 외우지 않는 이상 시대와 시대를 잇는 전체적인 역사적 흐름을 알 수 없다.
『30개 도시로 읽는 한국사』는 틀에 박힌 역사적 서술에서 벗어나 숱한 세월 속에서도 그 자리에 남아 축적된 도시 속 숨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사람이 모여 만들어낸 문화의 결정체인 ‘도시’는 세월이 흘러 모습이 바뀌어도 자기 역사를 간직한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친숙한 도시를 중심으로 한반도의 역사를 풀어내면 ‘역사는 어렵다’는 통념이 무너지고, 익숙하지만 몰랐던 우리 도시의 이야기까지 한 번에 알 수 있다.
오늘날 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지하철이 놓인 우리가 사는 이 도시가 바로 교과서에서만 보던 역사 속 배경이었다. 독특한 도시 기행 스토리텔링을 따라 전국 8도의 대표 도시 및 개성, 평양 등 북한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한국인도 몰랐던 생생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굵직한 역사적 사건부터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전설과 설화를 느끼며 30개 도시를 산책해 보자. 자연스레 한국사를 관통하는 우리 도시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평양과 가장 비슷한 도시는 워싱턴이다?! 다른 어느 책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북한의 도시 이야기!
오늘날 평양과 가장 비슷한 도시가 어디인지 아는가? 놀랍게도 세계의 심장, 미국의 수도 ‘워싱턴’이다! 어떻게 대표적인 자본주의 국가와 사회주의 국가의 수도가 같을 수 있냐고 생각하겠지만, 지구상에서 평양과 가장 비슷한 도시는 누가 뭐래도 워싱턴이다.
워싱턴은 이집트 파라오의 오벨리스크를 본뜬 워싱턴 기념탑을 중심으로 넓고 긴 도로가 마름모꼴을 그린다. 그리고 마름모의 귀퉁이마다 국회의사당, 백악관, 링컨 기념관, 제퍼슨 기념관이 위치해 있다. 백악관과 국회의사당은 미국 정치권력의 두 정점이며, 링컨과 제퍼슨 기념관은 건국의 아버지와 현대 미국의 아버지이자 노예 해방자를 모신 신전이다. 고고한 백색으로 빛나는 건물을 넓고 푸른 잔디밭과 포토맥강이 둘러싸고 있다. 전후 평양시를 재건할 때 워싱턴을 참고했는지는 모르지만, 대동강이 도는 도시 공간을 일정하게 구획하고 거대 기념물들을 배치한 점에서 워싱턴만큼 비슷한 도시는 없다.
또 북한의 도시 중 외국의 손길이 닿은 곳이 있다. 바로 ‘함흥’이다. 현대의 함흥은 독일풍의 도시다. 잿더미가 된 도시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 동독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함흥은 근대 서구의 도시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도시로 재탄생했고,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새로 닦은 가로의 이름을 ‘빌헬름피크대로’라고 짓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슬그머니 그 이름을 바꾸고 전후의 재건도 천리마운동 등 자체 노력의 산물이라 선전하고 있다.
호시탐탐 우리 땅과 우리 역사를 노리는 외세에 맞서기 위해 반만년 역사를 한 권으로 독파하는 필수 여행 역사서!
중국은 ‘동북공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기도 전부터 발해가 ‘당나라의 속국 중 하나, 속말말갈 중심의 지방 민족 정권’이라고 주장해 왔다. 형식적인 조공이 있더라도 해동성국은 독립된 국가였으며, 고구려의 후계국가로 존립했기 때문에 중국의 이러한 주장은 한국사의 일부인 발해사의 정체성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최근에는 엉뚱하게도 러시아가 중국과 한국 사이에 끼어든다. 두 나라의 과도한 민족주의적 시각을 중재한다며 발해사를 중앙아시아 역사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생활·문화·환경이 모두 다르건만,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의 맹주라는 의식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상경 유적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발해사가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것은 환영이나, 등재 시도의 주체가 중국이기에 중국의 ‘속국’이라는 역사적 인식이 세계적인 인식으로 굳어지진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현실을 살아간다. 중국은 발해사를 탐내고, 일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우긴다. 세계 속에서 한국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했던 우리 도시의 우리 역사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에 무관심한 현재를 반성하며 조상들이 지켜온 우리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자. 도시 속에 남아 있는 역사가 우리를 지키는 방법과 깨달음,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줄 것이다.
책속에서
[P. 66~67] 1970년,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로 일하던 전태일이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나섰다. 그는 처음에는 동대문구청에, 나중에는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대통령에게까지 탄원서를 보냈으나 소용이 없자 결국 11월 13일, 근로기준법 책을 불사른 다음 스스로의 몸에 석유를 붓고 평화시장 앞길에서 분신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결코 과격하지도 급진적이지도 않은 이 요구가 무시되던 현실은 그의 젊은 생명을 태움으로써 비로소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가 분신했던 청계천로 274번지에 그의 동상이 서 있으며, 기념관도 세워져 있다. 그리고 동대문시장은 밀리오레, 두산타워 등등 패션·의류·주얼리에 중점을 둔 복합 쇼핑몰들이 들어서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도 생겨 패션 디자인의 메카로 거듭나 있다. _서울, 동대문 권역
[P. 153] 이 「대풍가」는 한고조 유방이 기원전 196년에 군벌들의 반란을 진압한 다음 고향인 풍패에 들러 잔치를 베풀고 불렀다는 노래다. 한마디로 천하를 평정한 제왕의 노래로, 이성계에게 이미 고려는 자신의 나라였다. 이 노래를 듣고 기가 막혔던 이성계의 친구이자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는 홀로 남고산성에 올라 통곡하며 우국시를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몽주의 애간장이 끊어지든 말든, 전주 사람들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동안 당한 설움이 씻은 듯 가시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승리의 잔치가 벌어진 현장이 오늘날에도 남아 있는 오목대라고 한다. 대한제국 고종은 1900년 이곳을 방문해 조고황제주필유지비를 친필로 써서 세워 이날의 잔치를 기념했다. _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