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세》는 파스칼이 인간과 신에 관한 단상(斷想)들을 노트 형식으로 기록해 남긴 것을, 그가 죽은 후에 그의 주변 사람들이 엮어서 낸 책이다. 팡세는 인간학적인 부분과 신학적인 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애초 그는 기독교의 바탕을 둔 종교적인 관점에서 ‘종교와 기타의 주제에 대한 기독교를 위한 변론’을 쓸 생각이었으나 그것을 체계화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단편적으로 기록했던 단장들을 후세 사람들이 체제를 갖춰 편집 간행했다. 파스칼은 중세적 신앙과 근세적 이성의 대치 속에서 탄생한 사상가이다. 그의 시대를 지배한 사상은 스토아철학과 자유사상이다. 그런 사상가 중 그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에픽테토스와 몽테뉴이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의 위대성은 잘 알고 있었으나 인간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여 쾌락주의를 낳게 하였으며, 몽테뉴는 인간의 비참함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인간의 위대성을 알지 못하여 염세주의에 빠지게 했다. 파스칼은 이 두 사상의 대치 속에서 고뇌하며 살았고 결국 이 두 사상의 입장을 종합하였다. 파스칼은 과학적 정확성을 도입한 새로운 방법으로 철학을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그는 인간을 연구하되 그 본질을 연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상황을 연구했다. 파스칼의 사상은 인간과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공허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을 싫어하고 구체적인 것을 존중한다. 철학적 사고라는 것도 파스칼에게는 현실의 관찰 및 분석으로 나타난다. 파스칼은 자신의 개인적 생활과 경험을 통해서 진리를 자각하고, 실감하고, 직관한 프랑스가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다. 인간은 비참한 동시에 위대한 존재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신의 비참함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죽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 수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인간을 죽일 때,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우주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런 사실들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존엄은 사고(思考) 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은 비참한 동시에 위대한 존재임이 틀림없는데 그것은 하나의 큰 모순이다. 이 위대한 존재는 비참하므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가 행복을 추구한다. 모든 인간의 모든 행동의 동기가 바로 행복이다. 그런데도 이 위대한 존재인 인간이, 자기가 그렇게도 열망하는 행복을 자기 능력으로 손에 넣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다시 말해 신앙 없이 완전한 행복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하여 파스칼은 인간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신앙을 통해서만 그 궁극적 목표에 이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 《팡세》는 기독교 옹호론자가 아닌 새로운 통찰을 제시하는 프랑스 사상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실존주의 철학자 파스칼의 인간과 신에 대한 기독교를 위한 변론이다.
책속에서
[P. 36] 아무 기준도 없이 사물을 판단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마치 시계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과 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와 같다. 한 사람은“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라고 말하고, 또 한 사람은 “아직 45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나는 내 시계를 보고 먼저 사람에게 “당신은 권태에 빠져있군” 하고 말하고, 나중 사람에게 “당신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도 모르는군” 하고 말한다. 왜냐하면 사실은 시간이 한 시간 삼십 분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에게는 시간이 가는 것이 늦는구려. 당신 멋대로 시간을 재고 있군” 하고 말하는 사람들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들은 내가 내 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_〈단장 5〉
[P. 37] 사람을 효과적으로 훈계하여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그가 어떤 관점에서 사물에 접근하고 있는가를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물은 흔히 그의 관점에서 보면 옳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 하지만, 그 대신 애초 그의 관점이 잘못되어 있었음을 알려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그는 만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잘못을 범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 문제를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는 것을 게을리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데 인간은 여러 가지 관점에서 보지 않은 데 대해서는 불쾌하게 여기지 않지만, 잘못을 저질렀다는 말은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은 천성적으로 모든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는 없다는 것과 감성(感性)에 의한 지각은 언제나 진실하므로 인간은 자기가 택한 관점에서는 본래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_〈단장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