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37~38] 우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허덕이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포털의 1위를 차지하는 굵직한 뉴스들조차 몇 시간을 버티지 못하고 숨 가쁘게 교체되는 세상이다. 땅을 밟고 살아가는 인간이 지구의 자전과 공전을 느끼지 못하듯이, 변화무쌍한 시류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세상을 움직이는 큰 흐름을 감지하고 또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가지만큼은 이 책을 읽는 모두가 암암리에 느끼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바로 나라 밖 사건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우리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예전에도 저 멀리 중동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는 당장 우리 집의 냉난방비와 자가용 주유비를 올렸다. 태평양 건너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에서 달러가 빠져나가고, 원-달러 환율이 상승해 우리 금융시장도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벌어지는 여러 사건의 향방은 과거의 평면적인 영향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범세계적으로 관찰되고 있는 일련의 변화는 독립적인 사건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질서 그 자체가 바뀌는 과정에서 초래되는 거대한 흐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국제질서가 도래할 때까지 이러한 과도기적 변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 변화의 끝에 새로운 국제질서가 도래한 뒤에는, 우리 모두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것이 일종의 과도기적 변화라는 점을 깨닫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을 깨달아야만 우리의 눈앞에 어떠한 미래들이 펼쳐져 있는 지, 또 그중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미래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찾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그러한 노력을 시작해야만 우리가 이제부터 어떠한 방향성을 갖고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지를 늦지 않게 판단할 수 있다.
[P. 43~45]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눈앞에 놓인 길들이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인도하게 될지를 예상하려면 먼저 우리가 어떤 경로를 통해 여기까지 왔는지를 반추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가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의 국제질서를 있게 한 패권의 역사와 국제사회의 진화 과정을 알아야만 한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맥컬로프의 말대로 “역사는 위험한 시기를 항해하기 위한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동서냉전이 종식된 이래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 아래 놓여 있었다. 냉전의 승리자인 미국을 세계패권국(global hegemon)이라고도 부른다. 오늘날의 국제질서는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세계패권국인 미국에 의해 주도되는 질서라고 해서 일극적(一極的, unipolar) 국제질서라 불리기도 한다. 최근의 혼란은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은 현상 변경 세력은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체제(unipolarity)를 다극체제(multipolarity)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일극’ 또는 ‘다극’이란 몇 개의 나라가 국제사회를 주도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냉전기에 세계를 양분했던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던 세계를 양극체제(bipolarity)라 칭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요컨대 국제사회의 일극체제를 다극체제로 전환하겠다는 선언은 미국이란 유일 패권국이 주도하는 시대를 끝내고 복수 또는 다수의 강대국이 선도하는 국제질서를 구현하겠다는 의미다. 현실적인 국제질서는 이처럼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힘’의 숫자에 의해 좌우된다. 그런데 현행 국제질서에는 국제사회를 주도하는 힘의 숫자와 무관한 명칭도 붙어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liberal international order)’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이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아직도 국제사회의 대세적 질서로 남아 있다. 그러나 미국의 일극적 패권이 쇠퇴함에 따라 자유주의 국제질서도 함께 훼손되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인공적인 질서다. 문명의 태동기 이전부터 인류는 ‘자연 상태’라는 현실의 굴레 속에서 살아왔다. 자연 상태란 곧 약육강식. 약육강식의 세상에서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 잔혹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인류는 부족을 이루었고, 부족이 모여 국가를 건설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건설한 사회에는 자연히 위계적 지배체계가 수립됐다. 요컨대 모든 인간 사회는 한가지 근본적 기능을 위해 만들어진 셈이다.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 말이다. 근대 서구사회에서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정립되기 훨씬 이전부터, 모든 사회적 지배체제는 구성원들을 보호할 의무를 부담했다. 지배의 당위성을 정당화하는 논리는 저마다 달랐을지언정, 구성원들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지배체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오늘날에는 말할 것도 없다. 현대 문명국가는 공권력을 제공하는 ‘정부’라는 지배체제를 통해 사회의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구성원들이 약육강식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장한다. 구성원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국가를 ‘실패한 국가(failed state)’라고 정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의 기본적 역할이다. 그러나 주권 국가(sovereign states)들이 모여 구성한 국제사회에는 국가들을 다스리는 상위의 지배체제, 즉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원시적 무정부상태(anarchy)에 놓인 국제사회에서 모든 국가는 지배체제가 없는 자연 상태에 놓인 개인이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 이 무정부상태의 숙명을 극복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고안된 질서가 바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이다. 현행 자유주의 국제질서는 인류가 오랜 전란의 시대와 제국주의 식민 지배 시대를 거쳐 제1차 세계대전 및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전 인류가 핵전쟁의 위협에 노출됐던 동서냉전을 겪은 끝에 마침내 구현한 결과물이다.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제대로 구현되어 범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세계 패권이 확립된 이후였기 때문에, 미국의 일극적 패권에 의해 유지된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미국의 패권 질서와 동일시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