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49] 인생은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그러면 꼭 ‘나는 밝은 생각만 해야지.’, ‘부정적인 생각은 하면 안 돼.’라며 이를 악무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21세기는 ‘영혼의 시대’로, 사물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결판이 나니까 절대로 심각해지지 않아도 된다.
아주 옛날에는 전체주의여서 무엇을 해도 나라의 방침을 따라야 했다.
모두 가난해서 개인의 행복이 뒷전이 되어도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졌다.
풍족해지면서 개인이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런 시대에서 심각하게 생각하는 행동은 파동을 그저 무겁게 만들 뿐이다.
불행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밝고 즐거운 파동을 내뿜으려면 아주 가볍게 생각해야 한다
[P. 134~136] 예를 들어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마치 딴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장남이 유산을 갖고 싶어 한다.’라는 경우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다른 형제들이 보기에는 장남이 마치 악귀라도 쓰인 것처럼 욕심 사납게 구는 것이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장남이 ‘돈에만 미친 속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게 아니다. 장남의 말을 잘 들어보아야 한다.
사실 그 장남은 어릴 때부터 계속 참으며 살아왔다든가 그럴지도 모른다. 대개 이런 데는 이유가 있다.
장남이라며 어릴 때부터 다른 형제들보다 몇 배나 인내를 강요받았던 것이다. 그렇게 꾹꾹 눌러 참은 게 있으면 나중에 부모님의 사망을 계기로 갑자기 폭발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억압을 다 털어내는 게 낫다.
장남이 꾹 참으며 살았다는 걸 다른 형제는 모른다. 대체로 참기를 강요하는 쪽의 사람은 그런 걸 눈치채지 못하는 법이니까. 그걸 보고 ‘형이 딴사람이 되었다.’라고 하지만, 그건 엄청난 착각이다. 좀 더 배경을 살펴보아야 진실을 알 수 있다.
만약 그 장남의 심정을 이해하고 발산하게끔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형제가 먼저 유산 상속을 포기하면 된다. 형제 싸움을 피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계속 참고만 산 형에게 ‘이제 참지 않아도 돼.’, ‘형이 원하는 만큼 유산을 가져가.’라고 말해주는 것밖에 싸움을 피할 길은 없는 것이다.
이건 꼭 유산 문제만이 아니라, 예를 들어 간병 문제에서도 ‘내가 가능한 보살필 테니까 정 힘들 때만 형한테 부탁할게.’라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끝장을 볼 때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 참고 살아온 형제의 심정을 이해하지도 않고, 나한테만 유리하게 결론을 내릴 방법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싸움이 필요한 가족인데도 싸우지 않고 넘어갈 방도는 없는 것이다. 다툼이 벌어져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까.
지진 에너지와 마찬가지로 엄청나게 큰 뭔가가 쌓여 있으니까 그걸 지금 완전히 토해내지 않으면 앞으로도 더 큰 폭발이 일어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