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독일 통일 28년과 체계전환의 도전 제2장 합리적 행동과 공공정책 결정과정 제3장 독일 민영화의 특징과 신탁관리청 제4장 신탁관리청과 집합행위자 간의 중층적 정책결정 체제 제5장 대기업의 구조 조정과 정치적 조율 문제: 조선산업 민영화와 편익적 제약 하의 행위자 전략 제6장 결론
■2부 학문적 구도의 자취
통일 독일의 체계전환과 민영화 전략의 특징: 신탁관리청과 ‘상세한 협상계약 방식’ 북한 사회주의 경제, 발전인가 위기인가 『전략과 환상』 번역 제안글 동료 논문 초고에 대한 편지글
■3부 실천적 삶의 편린
여명의 79년, 서울대 9.11 데모 - 긴급조치 9호 철폐투쟁 기념문집 수록글 집으로 돌아와 - 독일에서 돌아온 후 소회글 나의 유언장 - 미리 써 놓은 유서 광화문 광장의 국가상징 - 시론 택배로 보낸 책 잘 받았습니다. - 편지글 제 옥상은 태양전지 텃밭입니다. - 월간지 기고글 진술서 - 긴급조치 회상글 박정희 유신체제가 독재가 아니라고? - 시론 영화 “명량”이 “본 것”과 “보지 못한 것” - 영화평 한반도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제언 - 시론 조국 장관을 위한 사회민주주의자의 변명 - 시론 헌정문화 확립없이 국가폭력 진상규명은 불가능 - 토론 발표글 장영근 회장을 그리며 - 추모글 정근식 위원장에게 - 긴급조치 문제해결 제안글 ‘전쟁상황’에 대한 법적, 역사적, 그리고 정치적 책임 - 토론 발표글
■4부 우리 기억 속에 살아 있는 김종채
동생을 먼저 떠나보낸 형의 소회 - 김석환 김종채 선생과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 - 이종구 김종채 군에 대한 경기고 친구들의 회상 - 조윤신·강석진 종채의 거대 담론과 중꺾마 - 농촌경제학회 ’76 모임 김종채 학형의 발자취를 되돌아 봄 - 김준희 공부하고 싶어 했던 친구, 종채를 회고하며 - 정근식 편집실 김종채 선배의 옛 기억들 - 이병훈 종채 형과의 몇 장면 - 강영진 종채 형을 그리워하며, 기억하기 - 한장희
[김종채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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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서 통일까지 : 김종채의 학문적 구도와 실천적 삶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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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00097492
300.2 -24-3
부산관 주제자료실(2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야만과 광기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면서도 낙관적인 마음을 잃지 않고 선한 눈빛을 간직하였던 김종채의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희망이었다. 유고집을 준비하는 시간은 김종채의 삶을 그려보는 시간이자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시간을 되짚어보면서, 우리는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자신의 사회와 역사에,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충실하였던가?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넘어서기 위해 몸부림치면서도 역설적으로 시대에 갇히지는 않았던가? 김종채의 유고집은 우리 모두에게 잠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할 것이다. 땅 위에서의 고역을 끝내고 이제 영원의 안식을 얻은 김종채의 영전에 유고집을 바친다.
책속에서
10월 27일 아침 영등포 구치소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는 조금 달랐다. 교도관들은 보통 회색의 근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날은 국방색의 군복 비슷한 옷을 입고 있었다. (...) 10분간의 면회시간 동안 어머니와 누나는 별것도 아닌 얘기를 했고, 나는 팔굽혀펴기를 안에서 매일 백 번씩 하므로 건강이 좋다는 얘기만 했었다. 그런데 입회 중인 교도관이 그런 얘기를 받아쓰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는 동안, 어머니는 쪽지를 하나 펼쳐서 칸막이 유리창으로 보여주셨다. ‘박대통령 암살’ 그 여섯 글자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나는 눈짓으로 끄덕였고 어머니 손은 곧 만세의 손짓처럼 되었다. 교도관의 눈을 피하느라 동작은 작았지만 어머니의 얼굴에는 환호의 빛이 가득 차 있었다.
- <여명의 79년, 서울대 9.11 데모> 中
1970년대 유신시대의 국가도 바로 그러했고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1592년 조선 왕 선조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이번 대법 민사 3부의 판결은 지금 이 나라가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조금도 다름이 없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시대의 국가와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 자신들은 그때의 재판관에 불과하다는 것을 고백한 것에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아닙니까?
- <박정희 유신체제가 독재가 아니라고?> 中
많은 것을 두 시간에 압축해서 보여주고 전달하려니 “허구를 가미한 구성”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현대 사회과학자의 눈에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해 영화 “명량”에서 감독이 “보지 못한 것”이 좀 보인다. 그래서 몇 자 적어본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그렇게 “나를 따르라” 식의 초급 지휘관에 요구되는 리더십이었을까? 한 사람 영웅의 헌신적인 투쟁이 공포를 용기로 바꾸어 놓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