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예측 불허의 감동 처음의 여름 사랑의 모형 일방적인 고백 깨끗한 우울 책상 앞 신당 이별 후의 매뉴얼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 마지막 이별은 없다, 아직은
2부 사랑이 잘 보이도록 완벽한 눈송이 이런 일요일 여름비 환절기 영원은 상실 속에서 지속된다 다만 병마개를 열어둘 뿐 헤맬 수 있는 자유 창가에서
추천의 글∥정여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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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마지막 마침표에 깃든 숭고함을 살피는 신예 평론가 전승민의 담대하고 매혹적인 글쓰기
2020년 대산대학문학상과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연달아 당선하며 문단에 이름을 알린 신예 문학평론가 전승민의 첫 책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가 출간되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성찰하는 에세이와 산뜻한 목소리로 쓰인 평론글이 한데 묶여 문학을 아끼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반가운 책이다. 에세이스트이자 문학평론가인 정여울은 전승민의 첫 책을 통해 “세상 그 자체를 향해 열려 있는 깊고 너른 환대의 에너지”를 느끼며 그가 “읽기와 쓰기에 대한 사랑으로 단단히 무장하여 한 문장 한 문장에서 열정이 느껴지는 글을 쓴다”(추천사)고 평했다. 전승민은 “한 편의 글이 내 앞에 도착하기까지 그 글이 거쳤을 어둡고 밝은 시간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주한다. 그리고 “글에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손에서 놓아 보내는 것에는 모종의 숭고함이 깃들어 있”음을 헤아린다. 그리하여 그는 “내가 읽는 모든 글 앞에서 내가 가진 최선을 정직함으로 임한다.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 애쓴다.”(68~69면) 내 앞에 놓인 글을 ‘허투루 읽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문학을 향한 깊은 사랑 고백이기도 하다. 전승민이 감각하는 사랑은 삶의 곳곳에 펼쳐져 있다. 그는 남들보다 한발 먼저 느끼는 절기를, 말이 통하지 않는 개와 보내는 시간을,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담배 연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비밀을, 깨끗하게 닦아주어야 하는 우울을 사랑한다.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언가를 사랑하기를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면 어쩌나 하는 것”(25면)일 만큼 그는 힘겨운 사랑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서 상처를 극복하고 새로운 사랑을 배운다. 그의 사랑은 확장되어 타자와의 관계 위에서 굳건해진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싸우고 슬퍼하고 아파한 후에”는 “삶을 함께 가꾸어줄 다정한 두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새로운 길과 꽃과 새들을 만나”기 위해서 “이별한 자는 소파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95면)고 말한다.
새로운 삶, 사랑, 세계를 향한 용기 있는 발걸음
전승민은 이십 대 시절 다리 수술로 생의 끝을 경험했던 내밀한 일화를 담담한 목소리로 전하며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그저 나는 나의 속도를 만들어가야 한다고”(17면) 느꼈던 순간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침잠하던 시기를 문학으로 극복하고 다시 씩씩하게 글을 쓰며 새로이 세상을 걷는 걸음마를 배운다는 전승민의 태도는 문학을 치열하게 바라보고 의미를 찾으려는 그의 글쓰기 자세를 더욱 신뢰하게 한다. “텍스트를 읽고, 노트를 끄적이고, 작품이 말한 것과 말하지 않은 것 사이의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머릿속의 생각을 한 편의 글로 만들어내는 일”(67면)을 진심으로 대하며 삼십 대로 넘어온 그는 이제 장애/비장애, 지방/서울, 퀴어/비퀴어의 삶을 모두 겪은 소수자로서의 경험이 자신을 고유하고 소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경계의 감각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하게 한다고 그는 말한다. 전승민은 문학으로 삶의 여러 고비를 넘긴 후 본격적인 평론가로 활동하며 “살아가는 행위 자체가 비평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안에 담긴 것과 그가 부러 담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 이해하는 일, 그것이 나의 세계와 어떻게 공명하는지 찾는 일”(85면)에 몰두하는 그는 언제나 시의 한 구절을 가슴에 새기며 문학작품이 품고 있는 ‘사랑’이 더 잘 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김행숙, 오은, 이영주의 시를 통해 계절의 한 장면과 마음의 한구석을 살피고 고명재의 시집을 넘겨보며 긴 편지를 쓰면서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고찰한다.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에 실린 글들은 그가 포착한 여러 사랑의 얼굴을 담은 것이기도 하지만, 변모하는 사랑에 따라 성장하는 그의 모습을 관찰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제 그는 사랑도 글쓰기도 더 자유롭기를 꿈꾼다. 연약하고 불확실한 사랑일지라도 “사랑이 나의 손길과 시선을 초과하는 먼 곳으로 달아나는 것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가 나를 까맣게 잊고 자신의 세계를 쏘다닐 때” “사랑이 비로소 살아 있음에 안도”(234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전승민 평론가의 외연은 독자들과 공명하며 문학 안에서 미래로, 세계로 더 확장될 것이다. 그의 사랑은 현실에 발붙이고 있으면서도 이미 “당신의 낯선 얼굴”을 향해 있다. 힘든 시기를 의연하게 이겨내고 “당신이 내 곁에서 멀리 있다고 해도, 그리고 가까워질 수 없다고 해도 괜찮다”(237면)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단단하고 믿음직스럽다. 자, 이제 전승민의 책을 들고 “소파에서 일어날 시간이다.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가자.”(99면)
그녀의 글을 읽고 있으면, 끝없이 새로운 길 위에 설 수 있는 용기가 샘솟는다. 그녀가 글을 쓰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다시 두 발로 씩씩하게 걸을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녀의 글을 읽는 우리 또한 새롭게 이 세상에 발 딛는 법을 다시 배우고 싶어진다. 그녀는 매일의 글쓰기 속에서 삶에 대한 사랑을, 운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한다. 이제 우리가 ‘다정한 독자’가 되어 그녀의 사랑에 응답할 차례가 아닐까. (…) 나는 또다시 상처 받을까봐 두려워서 사랑하기를 포기한 모든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정여울, 추천의 글)
● 처음핀드 ● 다시없을 처음의 순간, 오래 기억될 작가의 첫 책 ‘처음핀드’는 핀드가 발견하고 주목한 작가의 ‘첫 책’ 시리즈입니다. 새로이 만나는 작가, 장르를 불문한 오롯한 이야기를 찾아 선보입니다.
[P.17] 그 여름 광안리 바다에 발을 담그고 서 있던 뙤약볕 아래의 시간은 그래서 ‘지금’ 내 모습으로 살게 된 시작점처럼 생각된다. 그날의 바다에서 이글거리는 햇볕을 온몸에 담으며 이제는 여태의 시간을 모두 뒤로할 때라고, 드디어 나의 ‘처음’을 선언해야 할 때라고 작심했다.
[P. 22] 잃을 게 없는 사람은 두려운 게 없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새출발을 했던 것 같다. 어떤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커리어를 쌓고 그것을 잃을까 노심초사하던 시간 없이 오로지 내 두 발로 땅 위에 서는 것만을 삶의 최대 목표로 삼고 거의 삼십 대까지 와버렸다. 덕분에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생물학적인 나이나 사회문화적 지위 같은 것들이 별로 중요하게 와닿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무엇을 욕망하는 사람인지, 그것을 위해 어떤 선택과 노력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그 사람만이 통과해온 시간과 과정이다.
[P. 46] 말할 수 없거나 들을 수 없음, 언어를 매개하지 않은 존재들 사이의 이해는 머리나 마음만이 아닌 온몸을 적시게 되는 물질적인 과정으로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건 언어를 매개해서만 도달하는 이해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 아주 느린 시간을 경유해서 서서히 물들어가는 서로의 실감은 매일 닥쳐오는 예측 불허의 감동 속에서 조금씩 더 확실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