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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용어 사용 관련 일러두기

제1부
박진경 출생부터 조선경비대 총사령부까지

제1장 박진경과 남해
금산(錦山) 보리암(菩提庵)과 이성계(李成桂)의 조선 건국
노량해전(露粱海戰)과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순국(殉國)한 관음포
남해 노도(露島)와 김만중(金萬重), 관조의 세계

제2장 국민·중등학교 시절
국민학교 시절
중등학교 시절

제3장 대학·학도병 시절
일본군 장교로 임관

제4장 사설 군사단체 활동과 경비대 창설
사설 군사단체 활동
경비대 창설

제5장 국방경비대 입대와 경비대 총사령부 인사국장 보직
국방경비대에 사병으로 입대, 현지 임관
결혼
총사령관 부관 시절
총사령부 인사국장
박진경의 귀향, 요새화된 제주도

제2부
제주4·3사건과 박진경 대령

제6장 남로당과 제주도에서의 좌·우 갈등
박헌영과 남로당 투쟁
광복 후 제주도에서의 좌·우익 갈등

제7장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투쟁 결정과 4·3사건 발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투쟁 결정과 준비
제주4·3사건 발발과 경비대 동원 실패
4·15 남로당 제주도당 대회

제8장 미 군정의 대응
경찰의 대응
미 군정의 대응과 경비대 1개 대대 증파
김익렬-김달삼 회담과 하산하는 주민 총격 사건
미 군정 대책 회의와 제11연대 이동, 9연대장 교체
남로당의 5·10선거 방해
제9연대 1대대의 집단탈영

제9장 미 군정의 진압작전과 박진경 대령 피살
미 군정의 진압 작전 준비
제11연대의 진압 작전
박진경 대령 암살범 재판과 암살의 배후
후임연대장의 진압 작전
진압부대를 제9연대로 교체
남로당의 지하 선거와 해주대회

제10장 박진경 대령 이후의 진압작전
국군의 진압 작전
경찰 진압작전

제11장 피해 통계와 4·3사건의 성격
인명 피해 통계
4·3사건의 성격

제3부
박진경 대령에 대한 평가와 음해, 예우 고찰

제12장 박진경 대령에 대한 평가
긍정적인 평가
부정적인 평가

제13장 제주4·3사건 학살자라는 좌파들의 음해
정부 4·3보고서 사실 왜곡
언론을 이용한 음해

제14장 전사자로서의 예우
장례 절차
추서(追敍) 문제
추도비 및 동상 건립

제4부
박진경 대령 왜곡의 실상을 밝혀주는 자료

자료#1 제주도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 사본
‘극비’ 제주도인민유격대투쟁보고서
1. 조직면 [조직의 시발(始發)과 발전 과정 및 조직 현세(現勢)]
2. 작전면
3. 투쟁면 (각면별)
4. 국경(國警)과의 관계

자료#2 박진경 대령 부하들의 증언
1. 채명신
2. 김종면
3. 이세호
4. 류근창

자료#3 정부보고서 작성관련 나종삼 증언
1. 제주4·3사건 정부 보고서 집필 및 채택 경위서
2. 정부 4·3보고서 왜곡 경위
3. 『인민유격대 투쟁보고서』가 4·3 자료집 제12권에 수록된 경위

자료#4 박진경 대령 장군 추서 건의서

자료#5 김익렬의 『국제신문』기고문
1948년 8월 6일 同族(동족)의 피로 물들인 濟州參戰記(제주참전기)
1948년 8월 7일 動亂(동란)의 濟州參戰記(제주참전기)
1948년 8월 8일 動亂(동란)의 濟州參戰記(제주참전기)

자료#6 이동해 증언, “이도종 목사 일생, 남로당 유격대에 의한 피살”

자료#7 김동일의 글
1. 박찬식 씨에게 공개토론을 요구한다
2. 김익렬 대령의 미스터리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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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사건과 박진경 대령 : 그들은 왜 진실을 은폐했나?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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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박진경 대령은 4·3사건 이후 불안정한 제주도의 질서 회복과 폭동 진압을 위해 1948년 5월 6일 제주도에 부임하게 된다. 그리고 국방경비대 내의 남로당 프락치들에 의해 6월18일 암살된다. 편향적으로 작성된 4·3사건정부보고서를 기점으로 사실에 기반을 두지 않은 박진경 대령 관련 엄청난 왜곡과 음해가 진행되어 박진경 대령을 악마화하고 있다. 이 책은 박진경 대령이 제주도에서 근무했던 기간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사실대로 정확히 밝힘으로써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기획·제작되었다.

진정한 상생과 화합을 위한 출발은 정확한 사실을 역사에 남기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왜곡의 출발
박진경 대령 왜곡의 결정적인 출발은 1948년 5월 10일에 있었던 박진경 대령 관련 ‘남로당 대책회의’ 사실을 4·3의 공식기록 ‘4·3정부보고서’에서 고의로 빠뜨린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누락은 남로당의 지시로 직속상관 박진경을 암살한 남로당 프락치 암살범 일당들을 마치 정의를 구현한 열사인 것처럼 둔갑시킬 수 있게 했고 제주도 내의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공산폭동 진압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1월 23일 CNN 방송의 ‘문답 아시아’에 출연해 4·3사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원래 시작은 공산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킨 것이지만,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문제는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해서 유가족들을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박진경은 김대중 대통령도 언급한 4·3초기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을 진압하려 제주도에 부임했다. 채명신 장군은 그의 증언4을 통해 박진경의 작전이 제주도민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했다.
왜곡 이유?
박진경의 제주도 재임 시기 1948년 5~6월은 4·3사건 초기 단계로 남로당 무장세력의 공세기였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에 따르면 박진경의 부임 기간 교전 중에 사망한 사망자 수는 25명이었다. 정부보고서는 물론 4·3연구소나 평화재단 등도 제주 민간인 사망자 대다수가 1948년 10월 이후 발생했다는 사실은 공통적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박진경이 재임한 5월~6월에 대규모 학살이 있었던 것처럼 왜곡한 이유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