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표제: Edward Thomas : the annotated collected poems 영한대역본임
연계정보
외부기관 원문
목차보기
I 봄은 여기 왔는데 겨울은 가지 않았다 키 큰 쐐기풀들 3월 비 온 뒤 막간 새의 둥지 장원의 농가 하지만 이들도 파종 땅파기 장작 쉰 단 10월 해빙 밝은 구름 초록길
Ⅱ 그래, 애들스트롭이 기억난다 애들스트롭 협곡 휑한 숲 눈 잃고 나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다 헛간 말벌 덫 이야기 고향(“전에도 종종 나는 이 길로 가곤 했었다”) 숲 아래에서 건초 만들기 개울 물방앗물 나는 전에는 그 땅을 결코 본 적 없고 교수대
Ⅲ 오직 어둡고 이름 없고 끝없는 가로수길뿐 아름다움 노인풀 미지의 새 표지판 언덕을 넘어 고향(“끝은 아니지만”) 새집 바람과 안개 우울 광휘 사시나무들 애기똥풀 비가 내리고 어떤 눈들은 비난한다 어느 이른 아침에 처음 내가 여기 왔을 때는 분신(分身)
Ⅳ 그는 이 대문, 이 꽃들, 이 수렁만큼이나 영국적이에요 집시 5월 23일 여자를 그는 좋아했다 롭 바람에 실려
Ⅴ 나는 잠의 국경에 이르렀다 올빼미 추도시(1915년 부활절) 수탉 울음소리 이건 사소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눈물 비 길 2월 오후 고향(“아침은 맑았고”) 벚나무들 해가 빛나곤 했다 겨리 말의 놋쇠 머리테가 가고, 또다시 가고 소등(消燈) 저 어둠 속 눈밭 위로
옮긴이의 말
이용현황보기
나는 잠의 국경에 다다랐다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154178
821 -24-4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3154179
821 -24-44
서울관 서고(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117811
821 -24-44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 시인 토머스가 길지 않은 생애 내내, 애정으로 지켜보았던, 가장 자주 자신의 시 속에 등장시켰던 영국 시골의 자연, 풍경, 계절, 날씨, 크고 작은 동식물, 사람, 전통 들은 아주 빠르게 변해가고 거개가 사라져갔다. 어쩌면 지금, 이곳에서 다시 읽는, 시집 속 여러 시들은 사라진 것에 대한 애도의 기록이라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여러 시 속에서 주연으로, 조연으로, 또는 단역으로 출현하는 온갖 풀과 꽃과 나무 등 식물들―페리윙클, 쐐기풀, 스노드롭, 너도밤나무, 가시나무, 개암나무, 물푸레나무, 분홍바늘꽃, 노간주나무, 자작나무, 가시금작화, 까치밥나무, 산사나무, 산쪽풀, 호랑가시나무, 딱총나무, 노인풀, 야생자두나무, 사시나무, 애기똥풀, 선옹초, 황새냉이, 곽향초석잠, 크로커스, 그리고 벌레와 새 등 갖은 동물들―올빼미, 휘파람새, 정원솔새, 칼새, 딱새, 댕기물떼새, 다마사슴, 황조롱이, 겨우살이지빠귀, 오색방울새, 굴뚝새, 검은지빠귀, 쇠물닭, 붉은가슴울새, 찌르레기들은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고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시 속에서 낯설고 매혹적인 그 이름들을 찾아보고, 어떻게 놓여 있는지, 어떤 소리를 발하는지를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 1912년에 영국으로 건너온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와의 만남은 토머스에게 시인으로서의 삶을 열어준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13년 10월에 런던의 문인 모임에서의 첫 만남 이후, 당시 이미 비평가로서 명성을 얻고 있었던 토머스는 이듬해 발간된 프로스트의 두 번째 시집 『보스턴의 북쪽』에 관한 세 편의 서평을 발표했다. 1914년 8월 토머스는 가족과 함께 글로스터셔주에 있는 프로스트의 집 근처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긴 시간 동안 함께 숲과 들을 산책하고 시와 삶과 자연과 임박한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깊은 우정을 쌓았다. 이 시선집에 수록된 토머스의 「해가 빛나곤 했다」와 프로스트의 널리 알려진 「가지 않은 길」은 이 시기 동안의 두 사람의 산책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토머스의 산문에서 시적 특질과 가능성을 읽어낸 프로스트는 그에게 산문의 리듬을 살려 시를 써보라고 권했고, 토머스는 12월에 첫 시 「바람에 실려」를 쓴 후 전사하기까지 2년 반이 채 안 되는 기간에 144편의 시를 썼다.
* 이 시선집은 토머스의 시 예순여섯 편을 그 제재와 형식을 고려해 다섯 갈래로 나누었다. 1부의 시편들에는 영국인의 성격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친 날씨와 계절의 변화에 대한 토머스의 예민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 있다. 2부의 시편들은 영국 특유의 삶과 정경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1, 2부의 시편들은 산업화로 인해 급속히 본래의 모습을 잃어가는 영국 전원의 자연과 전통에 대한 토머스의 애정 어린 관심의 폭과 깊이를 보여준다. 그에게 풍경과 자연은 단지 응시의 대상이 아니라 그의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와 기분과 감수성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는 존재였다. 3부의 시들은 자신의 “과거의 행복과 슬픔의 원천”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한 고독하고 우울한 자아의 모습을 그린다. 이 시들에서 토머스 자신의 어두운 과거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그래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재를 성찰하는 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4부에는 토머스가 흥미를 느꼈던 몇몇 인물에 관한 시가 실려 있다. 이 시들에 그려진 이들은 하나같이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 있지만 전원의 풍경 및 전통과 밀착된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통해 매력적인 활력과 항구성을 보여준다. 전쟁은 이런 인물들이 대표하는 문화와 삶의 방식들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자 타격이 아닐 수 없다. 5부에 실린 시들은 자신의 조국인 영국과 영국인들의 삶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 전쟁에 대한 토머스의 상념과 감정을 다채롭게 표현한다. 토머스는 윌프리드 오언(Wilfred Owen)이나 시그프리드 서순(Siegfried Sasoon)과는 달리 전쟁의 경험이나 그로 인한 정신적 외상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다. 사실 상당 기간 국내에서 독도법 교관으로 복무했던 그는 참호전을 치르는 보병이 아니라 포병으로 짧은 기간 동안 전선에 배치되었고, 더욱이 중년기에 입대했기 때문에 이른 나이에 입대한 다른 전쟁 시인들과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토머스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이들과 전쟁의 국지적 여파에 관한 자신의 느낌을 무척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한다.
* 시집에 수록된 시들 중 특히 「키 큰 쐐기풀들」, 「장원의 농가」, 「애들스트롭」, 「노인풀」, 「사시나무들」, 「집시」, 「여자는 그를 좋아했다」, 「롭」, 「올빼미」, 「벚나무들」, 「해가 빛나곤 했다」, 「겨릿말의 놋쇠 머리테가」 들을 눈여겨보았으면 좋겠다. 그중 「롭(Lob)」은, 힘들이지 않고 느릿느릿 걸어가는 듯한 2행 연구(聯句) 형식으로 쓰였는데, 대지와 밀접하게 연관된 풍경과 민담 속에서 긴 시간을 통해 진화해온 한 신화적 인물을 흥미롭게 그리는 가운데 영국적 전통의 활력을 긍정하고 있는 토머스의 야심작이다(참고로 「롭」 전문은 미리보기에 수록되어 있다).
책속에서
「키 큰 쐐기풀들」
키 큰 쐐기풀들이, 이 숱한 샘들을 덮어버렸듯, 녹슨 써레를, 사용한 지 오래된 닳고 닳은 쟁기를, 돌로 만든 롤러를 덮어버린다. 이제 느릅나무 밑동만이 쐐기풀들보다 높이 솟아 있다.
농가 안뜰의 이 구석이 난 제일 좋다. 꽃나무에 달린 여느 꽃송이뿐 아니라 소나기의 상쾌함을 입증하려 할 때만 빼고는 결코 사라진 적 없는, 쐐기풀들 위의 먼지가 좋다.
「장원의 농가」
바위 같은 진흙이 조금 녹았고, 실개천들은 생울타리에서 꼬리같이 흔들리는 꽃송이들 밑에서 반짝이며 길 양옆으로 흘러내려갔다. 하지만 대지는 햇살에 개의치 않고 내처 잠을 자려 했고, 나도 오래된 장원의 농가와, 연륜이나 규모로 보아 그와 동급인 맞은편의 교회당과 주목이 있는 곳으로 내려올 때까지는, 금박을 입히는 그 가는 햇살을 2월의 귀여운 물상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교회당과 주목과 농가는 일요일의 정적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산들바람은 지푸라기 하나 들어 올리지 못했다. 가파른 농가 지붕은, 거무스름하게 빛나는 기와들로, 한낮의 해를 즐겁게 했다. 또 지붕 여기저기에는 흰 비둘기들이 자리 잡았다. 딱 하나의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짐마차 말 세 마리가 앞갈기 사이로 졸린 듯 문 너머를 바라보다가, 파리 한 마리, 유일한 파리를 쫓아버리려고 꼬리를 휙 휘둘렀다 .
겨울의 뺨은 마치 봄과 여름과 가을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조용히 미소 짓는 것처럼 발개졌다. 하지만 그건 겨울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오래된 이 잉글랜드가 ‘쾌활하다’라고 불린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기와와 초가지붕 밑에 안전하게 누워 있던, 농가와 교회당에서 잠 깨어 일어난 변함없는 지복(至福)의 계절이었다.
「애들스트롭」
그래, 애들스트롭이 기억난다—
그 역 이름이, 찌는 듯한 어느 오후 급행열차가 뜻밖에도 거기 멈춰 서는 바람에. 6월 말이었다 . 증기가 쉭쉭 소리를 냈다. 누군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텅 빈 플랫폼엔 떠나는 이도 들어오는 이도 없었다. 내가 본 건 ‘애들스트롭’—
역 이름과 버드나무들, 분홍바늘꽃, 풀밭, 피리풀, 하늘 높이 떠 있는 조각구름들에 못지않게 조용하고 또 호젓하고 아름다운 마른 건초 더미들뿐이었다. 그 순간 검은지빠귀 한 마리가 근처에서 울었다. 그러자 녀석 주변에서, 더 어렴풋이, 점점 더 멀리서, 옥스퍼드셔주와 글로스터셔주의 새들이 일제히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