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잃고 섰을 때·75 커피를 마시다·76 플라타너스·77 그대의 그릇·78 편지·79 거리 두기·80 밥은 먹었니·81 수채화·82 코스모스·83 향기를 깎았지·84 새치·86 곱슬 머리카락·87 물웅덩이·88 다이어트·89 이별을 말하다·90 이팝나무·91 이별·92
해설|안현심·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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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는 말 : 박은정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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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1.15 -25-45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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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156328
811.15 -25-45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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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길항(拮抗)하고 화해하는 삶의 시편
박은정 시인의 첫 시집 『말라는 말』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박은정 시인의 시집 『말라는 말』은 녹록지 않은 삶을 온몸으로 헤쳐 나가는 여정을 곡진하게 보여준다. 그리하여 끝내는 삶을 내 편으로 만들어 어머니처럼 품어 안고 있다.
어머니는 햇살을 등에 지고 눈물로 꽃씨를 뿌렸다
담장 너머 세상은 하늘을 향해 열렸고 마당귀 감나무는 높아만 갔다
별이 빛나는 밤이면 닿을 수 없는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던 날들 ― 「나팔꽃」 부분
시 「나팔꽃」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햇살을 등에 지고/눈물로 꽃씨를” 뿌리고 있다. 햇살은 앞섶을 비춰야 앞날이 환할 터인데 등에 졌다는 것은 ‘음지’ 혹은 ‘그늘’을 상상하게 만들면서 슬픈 이미지를 안겨준다. 또, 꽃씨를 눈물로 뿌린다는 형상화는 생의 무게에 짓눌린 상황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를 그려내고 싶다.
술에 취한 밤,/미안하다는 말을 유행가 가사처럼 읊던 아버지//어떤 말이든 해보라고 화를 내는데/ 입술이 얼어붙어 열리지 않았다//움푹 들어간 눈동자가/불길 속으로 걸어가는 책을 바라볼 때,/손가 락엔 까만 재가 달라붙고/빈 책가방은 혼자 남았다//가을이 오면 들린다//중고 서점을 누볐을/아버 지의 발자국 소리 ― 「가을 이야기」 전문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작품에서는 구체적으로 기술하지 않지만, 대부분은 가난한 부모와 아이 사이에서 흔하게 일어나던 사건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고, 그것이 큰 잘못이었다는 걸 깨달은 아버지는 술의 힘을 빌려 용서를 빈다. 이러한 일은 자식이 미워서가 아니라 가난한 생을 건너가는 중에 발생하는 애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끝내 아버지를 미워할 수 없는 생의 고리, 그러한 애환으로 이 시는 아버지와 화해하기 위한 ‘살풀이’ 성격을 지닌다.
열 번 화를 내고 토라져도/아홉 번 함지박만 한 얼굴로 웃다가//한 번 화내고 돌아서는 등 뒤로/칼바람이 부네//이야기보따리 꺼내 들고/동동거리는 봄의 언덕//모란꽃이 피고 질 때까지/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네 ― 「모란꽃」 전문
그는 내가 “열 번 화를 내고 토라져도/아홉 번 함지박만한 얼굴로 웃”는 사람인데, 한번 화를 내고 돌아서면 “등 뒤로/칼바람이” 분다. 이렇게 되면 애가 타는 건 화자, “이야기보따리”를 “꺼내 들고” 봄의 언덕을 동동거리며 화가 풀리기를 기다린다는 형상화이다.
겨울을 건너왔다/살아내야 한다는 끈을 잡고/물 한 모금 삼키고//바람에 흔들리던 뿌리가/제자리를 찾는 동안/질긴 목숨은 침묵을 지켰다//믿음으로 단단해지는 시간//서로의 눈을 바라볼 때/장미는 핀다 ― 「장미」 전문
“살아내야 한다는 끈을 잡고/물 한 모금 삼키”며 겨울을 건너왔다고 화자는 고백한다. “바람에 흔들리던 뿌리가/제자리를 찾는 동안/질긴 목숨은 침묵을” 지키면서 말이다. 고독하게 인내했을 생의 고단함이 밀려와 가슴이 뻐근해지는 부분이다. 박은정 시인은 삶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 시를 통해 현실을 대면하고 성찰하고 있다. 가족, 주변 인물, 꽃과 나무, 현실의 온갖 무늬를 응시하며 자신을 토닥이며 세상의 들판으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책속에서
고약한 은행 냄새가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는다
아늑했던 소파가 가시방석이 되고 창문은 창살이 되었다
아는 길에서 길을 잃었고 낯선 길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느라 고개에 힘이 들어갔다
숨겨야 할 일이 많을수록 한번 밴 냄새는 꼬리를 물고 찾아와 시작과 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