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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우리 마을
박정희 대통령 친필
마을영웅 1983년도
1화  새마을운동으로 기적을 낳은 매바위마을
경기 화성군 남양면 장덕1리
부녀지도자 여채봉(35세)
2화  하늘밑 첫동네가 부자마을이 되기까지
강원 평창군 도암면 차항2리
지도자 박병승(35세)
3화  인내와 끈기로 이룩한 복지 어촌마을
강원 고성군 죽왕면 오호2리
지도자 신응균 (50세)
4화  다각적인 복합영농으로 부자마을 이룩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곡마을
지도자 송관헌 (44세)
5화  주민의 협동으로 이룩한 복지어촌
충남 서산군 안면읍 황도리
지도자 편무호(34세)
6화  끝없는 새마을운동을 향하여
전북 남원군 운봉면 연동마을
지도자 박용선(38세)
7화   새마을운동에 남은 생애를 바치기로
전북 완주군 이서면 후농마을
부녀지도자 배종환(48세)
8화  하나의 힘보다 열개의 힘으로
전남 여천군 화양면 소장마을
지도자 최용권(41세)
9화  5년간의 대역사 끝에 마을의 길을 내고
전남 순천시 삼산동 조비마을
지도자 이봉춘(48세)
10화  조상의 얼을 받들어 복지마을로
전남 광산군 임곡면 광곡마을
지도자 기영호(34세)
11화  강변 백사장에 이룩한 복지마을
경북 선산군 선산읍 원3동
지도자 김성배 (35세)
12화  바다를 개발하여 부자마을 만들고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 삼정 2리
지도자 권혁주(42세)
13화  부녀회의 활동으로 복지마을 건설
경북 안동군 임하면 신덕 1리
부녀지도자 이헌정 (34세)
14화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섬마을
경남 통영군 한산면 여차마을
지도자 이충남 (38세)
15화  복합영농으로 부자가 된 후곡마을
경남 의령군 화정면 후곡마을
지도자 김영수(38세)
16화  피땀으로 이룩한 축산마을
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리
지도자 양남일(38세)
17화  황무지에 싹튼 밀알
서울 도봉구 중계동
지도자 김동익(42세)
18화  반상회가 점화시킨 새마을의 불길
부산 동구 수정 1동
지도자 류지형(52세)
19화  고물 아줌마
부산 남구 남천동
부녀지도자 지영자(39세)
20화  주민화합으로 이룩한 선진마을
대구 남구 봉덕 1동
지도자 김삼태(45세)
21화  주민 단결로 이룩한 복지마을
대구 동구 신천3동
지도자 권기범(44세)
22화  협동으로 이룩한 도시새마을운동
인천 동구 송림 5동
부녀지도자 김옥희(47세)
23화  오늘의 송탄시 부녀회가 있기까지
경기 송탄시 신장 1동 12통
부녀지도자 최정애(41세)
24화  빈민촌에서 12억 자산을 조성
강원 원주시 개운동
새마을금고 이사장 이강부(50세)
25화  도시 새마을운동은 부녀회에서
충북 청주시 탑대성동 8통
부녀지도자 최영자(36세)
26화  시장새마을운동의 결실
전북 정주시 연지동 미창마을
지도자 박원규(53세)
27화  꽃과 노래와 웃음으로 가득찬 즐거운 학교
충남 대전시 충남여자중학교
교사 윤성웅(42세)
28화  일심운동으로 주인의식을 정착
전남 목포시 남양어 망공업주식회사
대표이사 홍순기(55세)
29화  주인의식으로 뭉친 내 직장
경기 성남시 경기교통(주)
대표이사 김충호(53세)
30화  클로바의 힘으로 복지마을 건설
충남 당진군 석문면 통상리
덕송새마을청소년회 회장 임임규(22세)
31화  농산물 유통개선으로 자립 농촌건설
경남 밀양군 삼랑진
단위농협 조합장 정대근(40세)
32화  자립의지로 역경을 극복한 어촌계
강원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 어촌계
어촌계장 이상근(47세)

마을영웅 1987년도
1화  올림픽을 위한 지도자의 자세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ㆍ6가동
새마을지도자 박연택(49세)
2화  86 아시아경기대회와 부녀회원들의 봉사활동
경기도 성남시 성남동
부녀지도자 김선규(42세)
3화  집념으로 이룬 소망
전라남도 승주군 주암면 백록리
새마을지도자 조준현(37세)
4화  주민의 피땀과 화합으로 이어진 달천교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봉황 3동
5화  인삼재배로 키운 복지마을의 꿈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덕천리 신덕마을
6화  바지락이 숨쉬는 복지터전
전라남도 보성군 득량면 해평리 구룡마을
7화  불모지에서 피땀흘려 이룬 보람
대구직할시 북구 산격2동 산격 시영아파트
8화  올림픽을 향한 화합
인천직할시 남구 옥련동
9화  새마을운동으로 이룬 세계속의 라니
인천직할시 북구 작전동 라니산업(주)
10화  새마을금고 육성으로 이룬 복지마을
부산직할시 부산진구 개금동 새마을금고
11화  무지의 마을을 밝힌 독서의 횃불
충청북도 중원군 노은면 우성 3리 우성새마을금고

부록
마을영웅 1973 목차
마을영웅 1974 목차
마을영웅 1975 목차
마을영웅 1976 목차
마을영웅 1977 목차
마을영웅 1978 목차
마을영웅 1979 목차
마을영웅 1981 목차
마을영웅 1983 목차
마을영웅 1984 목차
마을영웅 1987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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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영웅 8387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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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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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마을 영웅 8387은 내무부가 1973년부터 1987년까지 엮어낸 새마을백서인 새마을운동 시작에서 오늘까지 중에 1983년판 및 1987년 판에 실린 마을 성공사례를 따로 편집 합본하여 묶은 것입니다. 백서에는 5천년의 한 맺힌 가난을 극복해낸 뭇 민중들의 피눈물 나는 역정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역정들을 새마을운동이 주도하였습니다. 그 새마을운동에는 남녀노소의 마을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장서서 솔선수범하였던 마을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실패와 좌절로 포기하였다가도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나서 결국은 해냈습니다. 가난을 벗어던지고 잘 사는 마을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저 못사는 자기 마을 자기 고향을 떠나서 공부로 장사로 운동으로 연예 활동 등으로 출세하고 성공하여 영웅으로 칭송을 받습니다. 개인의 영달 내지는 가문의 영달을 달성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마을영웅 들은 자기 마을 자기 고향을 떠나지 않고 피눈물나는 형극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더불어 잘사는 마을, 이웃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마을로 만들어 낸 진정한 영웅들인 것입니다. 어느 역사 학자는 전쟁을 일으킨 이유 중 하나가 어린 자식들이 배고프다고 칭얼대도 먹일 것이 없기에 전쟁을 일으켰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새마을운동은 전쟁이었습니다. 배고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난과 싸운 전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새마을운동 50주년을 맞으며 별책 ‘새마을 지금까지’을 쓰면서 먼지 쌓인 서궤(書櫃)에서 감동적인 성공사례들을 재발굴했습니다. 이 어메이징한 영웅담을 재발견한 바 이를 그대로 묵혀놓기 보다는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우리 선대들이 어떻게 우리 마을 우리 나라를 잘 살게 만들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역사교과서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새마을 지금까지 책과는 별도로 내무부가 출판했던 새마을백서 1973년판부터 1987년판까지에 실린 성공사례들만 따로 묶어 제명(題名)을 ‘마을영웅 1973~1987’으로 하여 출판을 하였습니다. 백서란 정부의 치적을 기록보존하는데 주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백서의 배포 또한 정부기관 등 조직단위에 배포하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러다보니 일반 대중이 백서를 손쉽게 열람 및 빌려서 읽어보기가 지난합니다. 더욱이 자라나는 후손들에게 우리의 위대한 조상들의 행적을 읽히게 하기는 더욱 어려웠던 것입니다. 이 시리즈들이 특히 후세대들에게 많이많이 자주자주 읽히도록 어른들이 후세대들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하여 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특히 새마을백서는 정부 전 부처가 총망라되다시피하여 작성된 정부의 종합백서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새마을백서는 1973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하여 1987년도를 마지막으로 출판이 종료됩니다. 이 책은 백서 1983년판에 실린 32화 및 1987년판에 실린 11화를 제명 “마을영웅 8387”로 합본하여 엮은 것입니다. 성공사례들은 1987년판까지에만 수록이 되고 이 이후 성공사례 기록 관리는 각 부처별 및 지방정부별로 이루워져서 가뜩이나 일반 대중들이 이들을 읽고자 하여도 접근하기가 더 불편하게 됩니다. 이번 마을 영웅 책들이 이런 불편들을 덜고 널리널리 많이많이 자주자주 읽혀져서 나를 성찰하고 나라를 성찰하는 모멘트가 되었으면 합니다. 가난을 이겨낸 그 역사의 여정길을 초심처럼 변치 않고 우리들의 마음 속에 길이길이 간직되기를 두손 모아 축원합니다.

나라가 백척간두에 처하게 되면 민중들이 앞장서서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한 목숨 받쳐왔던 것입니다. 나라를 말아 먹은 자들, 나라를 빼앗긴 자들은 권력을 휘두른 위정자들이었습니다. 왜구나 오랑캐들이 쳐들어 왔을 때 임금이나 고관대작들은 산으로 기어들어가서 숨거나 강건너 똥구멍 빠지게 줄행랑치기 바빴습니다. 부끄러운 줄 모르는 작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중들이 나라를 지켜왔습니다. 전국 곳곳에는 내 마을 내 지역을 지키다 장렬하게 숨진 지역 영웅 마을 영웅들의 역사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컨데 백두대간길 화령재를 지나는 25번 국도변에는 나라를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한 지역 영웅 마을 영웅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이들 민초들이 이 나라를 지켜온 것입니다. 새마을지도자들은 가난이라는 적과 싸워 이긴 바로 마을 영웅 지역 영웅들인 것입니다.
한 사람의 훌륭한 부락지도자가 한 마을을 완전이 일어나도록 만든 예를 많이 보고 있다. 이들이 이룩한 업적을 기록에 남기고 후세역사에 남겨야 한다. 이들이 바로 우리 농촌의 영웅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에 나오는 명언입니다. 이 백서의 기록들은 바로 마을 영웅들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주재하는 경제동향 보고회의 말미에 새마을지도자가 자기 마을의 성공사례를 직접 발표하였습니다. 매번 대통령께서는 이 성공사례를 들으며 흐느꼈습니다. 장관, 재벌 회장 등 동석자들도 또한 흐느껴 회의장은 이내 눈물 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이들 성공사례는 형극(荊棘)의 역정을 헤쳐온 마을 영웅들의 이야기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 바로 마을 주민들의 향토사(鄕土史)인 것입니다. 필자는 이 일화를 들여다볼 때면 헨델(Georg Friedrich H?ndel)의 오라토리오 메시야(Oratorio Messiah)가 런던에서 초연(初演)될 때 할레루야(Halleluja) 합창시 영국 국왕 조지 2세(George II)가 감동을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가 연상되곤 합니다.
새마을백서 연도별 수록 화(話) 수를 일괄해보면 1973년판 30화, 1974년판 18화, 1975년판 21화, 1976년판 29화, 1977년판 25화, 1978년판 32화, 1979년판 31화, 1981년판 30화, 8387년판(1983년판 32화와 1987년판 11화 합본), 1984년판 17화, 새마을운동 전성기인 1970년대에 있어서 자연 부락 숫자인 3만3천여 마을 숫자 만큼의 성공사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백서에 실린 내용은 그 대표적인 일부 사례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마을 영웅들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것을 추천합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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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과 바꾼 남편의 뜻을 받들고
오늘날 깨끗하고 질서있는 송림 5동을 가꾸어오는 데 밑거름 역할을 해온 김 부녀지도자는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왔기에 마을의 변화에 대하여는 누구보다도 더 잘알고 있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 추진 대열의 선도자로서의 운명도 이미 오래전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1953년 1월 김 부녀지도자가 여고 3학년때 군인인 오빠와 같이 집을 찾아온 국군 아저씨께서는 압록강까지 북진하다 북괴군에 포위되어 포로생활 8개월 만에 탈출하여 다시 군복무를 한다하며, 탈출할 때 걸린 동상으로 열 발가락이 전부 까맣게 썩어있는 것을 보여주셨다. 그날의 인연으로 김 부녀지도자는 국군아저씨와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남편은 결혼식을 올린지 5개월 만에 휴전을 앞두고 치열하였던 수도고지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온양 109 육군병원으로 후송되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병원을 찾아간 김 부녀지도자는 남편의 얼굴을 분간도 할 수 없었다. 구사일생으로 생명은 건졌지만 7년간을 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때 김 부녀지도자는 남편의 병간호를 위하여 재직하던 국민학교 교사직도 그만 두게 되었다. 남편은 퇴원과 동시 제대를 하여 집에 돌아오게 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유증으로 다시 병석에 눕게 되었다. 남편의 병이 점점 악화되어 회복이 어려워지자, 어느날 김 부녀지도자의 손을 꼭 잡고 이것이 내 생명과 바꾼 충무무공훈장인데 내가 당신에게 남길 것이라고는 이 훈장 하나뿐이니 내가 죽은 후 보고 싶으면 이 훈장을 바라보고 굳세게 살아가고 당신도 내 뒤를 따라 국가를 위해 몸 바칠 수 있는 여성이 되어 달라고 일러주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러한 남편의 유지를 마음 속에 간직한 김 부녀지도자는 남편의 뜻이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국가에 조그만 미력이라도 바치기로하고 열심히 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