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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들어가는 글
ㆍ부록도큐툰, 무어라 규정하기 어려운 형식을 만나는 재미_한상정

ㆍ유럽이 그린 구한말 조선
ㆍ고문헌기산부록
ㆍ녹음방초 회초리
ㆍ적막강산 메들리
ㆍ슬로퍼 씨의 노크 코리아
ㆍ노크동맹 얼라리
ㆍ노크 손기척
ㆍ자산업보
ㆍ노크신보

별책부록
ㆍ부록도큐툰

평론
ㆍ‘슬로퍼’를 되치기하다, 이부록이 뒤바꾼 ‘구한말 조선’의 풍속화_김종길

해설
ㆍ문명 전환기 시선과 세력 관계의 변화 그리고 운명_신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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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이 사라졌다 = I lost my hand : 일뤼스트라시옹 작품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169443 741.6 -25-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0003169444 741.6 -25-9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B000123530 741.6 -25-9 부산관 주제자료실(2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알라딘제공
*조선과 조선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먹잇감 다루듯 함부로 대했던19세기 서구 열강. 유럽은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을 ‘알리 슬로퍼’라는 만평 캐릭터를 통해 우스꽝스럽게 그려냈다.
그들이 잘못 이해하고 그려냈던 만평 속 조선을 다시금 평가하고 그들의 무례함과 어리석음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 21세기의 작가 이부록이 회초리를 들었다.

규정된 형식을 뛰어넘어버린 ‘부록도큐툰’

설치, 카툰, 드로잉 등 다양한 시각 예술을 통해 사회에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을 꾸준히 탐구하는 작가 이부록은 유럽의 시선으로 본 구한말 조선을 그린 삽화와 기산 김준근이 구한말 조선을 표현한 작품에서 카툰화된 인물을 뽑아내 새로운 삽화를 만들어냈다. 이는 글자마저도 이미지가 되는, ‘빛을 비춰 집중하게 만든 것’으로서 이미지가 지닌 마술적인 힘을 강력하게 발휘한 일뤼스트라시옹이라고도 하겠다.
한편 19세기의 시선과 관점, 사고를 21세기에 가져와 새롭게 만든 것이므로, 없던 이야기를 꾸며낸 것도 아니고 실제 있었던 그 당시의 상황을 그려낸 것이므로 다큐멘터리와 같은 성격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한상정 교수는 그의 작품은 단순히 카툰이라고도, 단순히 삽화라고도 규정할 수 없는, ‘무어라 규정하기 어려운 형식’이므로, ‘부록도큐툰’이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다. 이부록의 작품은 형식을 뛰어넘고 경계를 흐트러트리는 즐거움을 주며, 우리의 굳어버린 ‘머리를 노크’해준다고 말이다.

유럽이 바라본 조선, 알리 슬로퍼의 무례한 노크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내 손’의 주인공은 1894년에 영국에서 발간된 〈알리 슬로퍼의 토요일Ally Sloper’s Half Holiday〉이라는 주간지에 등장하는 알리 슬로퍼Ally Sloper다. 원래는 풍자 잡지를 위해 만들어낸 캐릭터였는데, 그 후에 작가가 바뀌면서 새로운 시리즈로 만들어졌다. 보수적인 영국인들의 입맛에 맞게끔 반체제적인 성격을 덜어내고, 중산층과 노동계급이 혼합된 주정뱅이 실업자 중년 남성으로 설정되었다. 슬로퍼는 허세를 부리며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을 하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하면서 독자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1894년 8월 25일 토요일에 발간된 〈알리 슬로퍼의 토요일〉에는 알리 슬로퍼가 조선의 왕을 인터뷰하는 내용이 나온다.

슬로퍼는 코리아의 도시 대문 근처를 서성거렸다. 그리고 왕이 산책을 가기 위해 마차 안에 있을 거라고 짐작한 후, 마차의 옆면을 두드렸다. “거기 있나요?” …… 그 순간, 왕이 반대 문으로 조용히 나오는 것을 봤을 수도 있겠다. “접니다, 슬로퍼!” 우리의 위인이 계속하여 말했다. “중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에 전하께서 관심이 있을 것 같습니다만?” 어쩌면 왕이 귀가 조금 어두운지도 모른다. 참을성이 부족해진 관계로 조금 더 크게 얘기했다: “저기요, 저는 영국의 시민입니다.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당신을 로즈베리 공작에게 일러바칠 겁니다. 제길, 여왕의 이름으로 제발 문 좀 여시오!” 그제야 그 고지식한 작자는 문을 열어볼 생각을 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마차는 텅 비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곳을 빠져나왔다.
허세 빼고는 술만이 무기라고 할 만큼 우스꽝스러운 술꾼이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할 리는 없다. 영국 여왕을 들먹인들 아무것도 아닌 외국인이 한 나라의 왕을 함부로 대면할 수는 없다. 짐작에 지나지 않더라도 왕의 마차에 다가가 감히 노크하고 위협을 가하는 것만 봐도, 유럽이 바라본 조선의 위상이 어느 정도 읽힌다.
그 당시, 프랑스와 미국, 일본과 러시아, 영국과 중국 등 열강 사이에 낀 조선은 야욕의 대상일 뿐이었다. 빼먹을 게 없어 보이면 방관했고, 이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던 일본과 러시아는 서로 조선을 차지하려 으르렁댔다. 서구 열강은 조선을 제대로 평가하거나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기에, 무례한 어리석음으로 조선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알리 슬로퍼의 무례한 ‘노크’는 19세기 유럽이 조선에 대해 보인 관심의 표현이라기보다는 단순한 호기심인지도 모른다.

19세기 유럽이 바라본 구한말 조선을 다시 그려내다

19세기 유럽은 만평 캐릭터인 알리 슬로퍼를 통해 조선을 우스꽝스럽게 풍자했다. 그들은 관심이 없었기에 어리석었고 그래서 무례했다. 이부록은 무기력하고 무지했던 과거와 과거를 잊어버린 현재의 ‘Korea’에도 주의를 준다. 작가는 우리 모두에게 일침을 가하기 위해 19세기의 작품을 들고 와 21세기에 회초리를 들었다.
그러나 예전의 작품을 단순히 패러디하기만 했다면 우리에게 울림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부록의 작품이 즐겁고도 매서운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되짚어 보여주면서도,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갈 공동체를 그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도래할 공동체는 함께 노래하고 굳어버린 머리를 노크해서 깨운다. 그때의 손기척은 예의 바른 배려다.
그렇기에 작가는 예의를 갖춰 노크할 것을 선언한다. 19세기에는 열강들이 조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갖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였지만, 몰이해에 기반한 행태였다고 일침을 가한다. 그렇게 제멋대로 굴지 말고 예의 바르게 노크하라고, 흙발로 쳐들어오지 말고 손기척을 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갈 공동체를 꿈꾸고 이야기하고 노래할 것이다.

이 책은 2024년에 열린 이부록의 개인전 〈내 손이 사라졌다〉에서 선보인 작품들과 한상정 인천대학교 교수의 만화 평론, 김종길 미술평론가의 평론, 신주백 국학연구원의 역사 해설이 담긴 작품집이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P.6] 응당, 유럽이 그린 구한말 조선 다시 그리기
만평을 만평하기
구하지 못한 말에 노크하기
소실점에서 사라진 문에 노크하기
속수무책 묶인 손을 풀어 어루만지기
고문헌 원전악기 그들 손에 쥐어주기
덧씌운 모자 벗겨 사기꾼 민머리에 물주기
우거졌던 녹음방초 부러진 나뭇가지로 회초리 만들기
불한당들의 세계사에 노크하기

내 손이 사라졌습니다.
[P. 22~23] 이 잡지는 1880년대에 34만 부를 발간했고, 당시 가장 널리 읽혔던 잡지 중 하나였다. 보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니 계급 차이가 크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노력하면서도 주어진 사회적 지위를 뛰어넘으려는 사람을 조롱했다. 슬로퍼는 허세를 부리며 유행에 뒤떨어진 옷차림으로 우스꽝스럽게 묘사되어 독자들의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귀족들은 상대적으로 부드럽게 조롱당하고, 여왕과 왕자도 동정 어린 관점에서 묘사되었다. 반면 외국인, 실업자, 사회주의자, 하인이나 파업가는 비판적 시선을 받았다. 슬로퍼도 실업자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캐릭터는 그 자체가 조롱의 대상이기도 하다. 피터 베일리는 이 캐릭터에 대해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인 개인주의에 대한 복잡하고 엄격하게 통제된 은유로, 모든 희망과 모순을 담고 있다”라고 분석한다. 즉, 개인의 의지가 삶을 결정한다는 개인주의를 내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의지만으로는 결코 계급을 뛰어넘을 수 없다. 아니, 넘으면 안 된다고 통제한다는 것이다.
[P. 29~30] 이 책에서 <유럽이 그린 구한말 조선>은 옛날의 삽화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하되 윗부분엔 유럽의 잡지 이름을, 아랫단에는 잡지에서 추출한 인물이나 동물의 이미지를 장식으로 사용한다. 19세기의 맥락에서 탈출한 이 인물은 21세기에 귀여운 꼬마 인형으로 재탄생했다. 그 어떤 폭력적인 행위도 이곳에선 오려서 갖고 싶은 귀여운 종이 인형이 되어버린다. 〈고문헌기산부록〉은 고문헌에 등장하는 김준근의 인물을 이부록의 스타일로 다시 재배치한 것인데, 세로로 새긴 글씨는 마치 언령言令처럼 정신을 잃고 그림을 구경하게 만든다. 〈녹음방초 회초리〉는 또 어떤가. 김준근의 그림은 매를 치고, 유럽의 삽화에서 등장한 인물은 매를 맞는다. 원경에서는 달 아래 사다리를 놓고 여러 인물이 아무 관련 없는 별개의 세계인 양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적막강산 메들리〉는 전혀 적막강산이 아니다. 적막강산이고 싶지만 적막하기는커녕 거대한 혼돈과 폭압과 소란의 덩어리들이다.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답답해지는. 서구의 삽화에서 등장한 인물들과 사물들의 짬뽕, 난동 콜라주다.
〈슬로퍼 씨의 노크 코리아〉에는 한국어를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 하나씩 추가되어 있다. ‘유럽이 구한말’에는 말이 그려져 있고, ‘유럽이 구한범’에는 호랑이가 그려져 있다. 이부록의 일뤼스트라시옹 중 가장 텍스트를 많이 읽어야 하는(그래봤자 한 줄이지만) 시리즈다. 슬로퍼는 여기서 김준근의 그림에 다시금 등장한다. 김준근이 당시의 생활 문화를 그려냈다면, 이제 슬로퍼는 술 마시며 난동이나 피우는 게 아니라 김준근의 그림 한구석에 머무르며 하나의 공간에 소화된다. 이부록이 슬로퍼를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야 슬로퍼는 19세기 영국의 부르주아 흉내를 내던 허세나 부리는 게으름뱅이에서 벗어나 19세기 조선의 성실한 일상에 끼어들었다. 이 정도면 개과천선이다. 그래서 〈노크동맹〉을 통해 이부록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