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 정체성 추구와 심미안적 발현의 시 세계 시인은 2023년도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분 당선 소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문학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37년여 전 장애의 몸으로 대학을 고학으로 다니던 삶 속에서 문학을 만났다. 자취방에서 지친 몸을 뒤척이다 일간지에서 마주한 독자 시조, 몇 번의 투고 끝에 활자화되면서 시작했다. 형식도 알지 못한 채 어설픈 형상화로 하루를 옮겨 적으면서 오래도록 이어왔던 시조다.”라고. 시인은 20대인 대학시절, 고학생으로 시조를 접하면서 가난과 외로움과 고단한 삶을 이겨냈다.
오랜 세월 동안 시조와 함께 살아온 시인의 첫 시조집 『아내, 활을 쏘다』를 통해 시인의 시의 세계를 네 갈래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자아 성찰의 자세가 시의 심원한 발원지가 되어 나타난다. 둘째는 그가 2023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감에서 “정형의 틀로 접근해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려 한다.”고 밝혔듯이 사회의 약자인 그늘 진 사람들, 민초들의 삶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깊은 애정의 눈길로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넷째는 우리 인간의 근원이자 뿌리인 부모에 대한 그리움과 애착, 사랑이 그 모토를 이루고 있다. 이제 그의 작품 세계로 들어가 감상해 보자.
거울 앞에 서 있는 허방 짚은 흔적이
볼부터 입과 턱으로 부스스 웃고 있다
미간이 좁혀진 아침 쓰린 하루가 묻어 있다
자화상을 읽으며 면도날에 맡긴 얼굴
익숙한 손놀림에 의식을 시작한다
비뚜로 걷던 어제를 다잡는 아침 시간
거품으로 거뭇한 욕심을 잠재우고
모공을 열어젖혀 각도를 가늠한다
순방향 한 번 역방향에 일상을 마름질 한다
- 「면도를 하다」전문
이 시조는 시인 자신의 내면을 관찰하는 자성의 ‘자화상’이다. 인생을 살아온 자신의 삶의 과정을 “허방 짚은 흔적”으로 비하한다. 자기비하 역시 열등감의 일종이다. “허방 짚고 살아온 흔적”이 종장에서는 “미간이 좁혀진 아침 쓰린 하루가 묻어 있다”고 어떤 비애의 심상을 상승 고조로 은유한다. 겉보기에는 참 명랑하고 유머러스한 이종현 시인이 이렇게 시를 통하여 자기 고백 같은 “허방 짚은 흔적” 또는 “미간이 좁혀진 아침 쓰린 하루”와 같은 후회와 회의적 심상으로 어두운 이미지를 끌어내고 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셋째 수에서 자신을 다스리겠다는 의지가 미학적 심상의 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거뭇한 욕심을 잠재우고” 인생살이의 각도를 가늠하듯 “모공을 열어젖혀 각도를 가늠 한다”가 그것이다. 그리고 “순방향 한 번 역방향에 일상을 마름질한다”라고 삶의 어떤 방향제시를 스스로에게 명명한다. 긍정적 심상이자 반성의 자화상이 이 시조의 구심점이자 미학이다.
소매로 가려진 내 손목의 흔적 하나
손 내밀 때 시선이 멈칫하다 웃는다
마음속 너머 갸웃한 표정이 젖어든다
주저흔, 호흡을 덜어내는 선이 아니다
하루를 살기 위해 매달리다 미끄러진
골절로 핀 고정한 후 제거한 상처였다
새벽녘 발걸음이 공사장을 서성이다
구멍 뚫린 철판을 딛고 선 나들이
문밖의 모난 풍경을 가슴에 새긴 흔적
-「흔적」 전문
시인의 시선은 노동자들의 삶에 눈길을 주며 동병상련의 애련함을 불러일으킨다. 「흔적」이 그런 시 중의 하나다. 몇 년 전 이종현 시인은 ‘장애인 복지 근로 작업장’의 계단 층계에서 넘어져 팔목을 다친 적이 있다. 아마 그때에 받았던 충격과 병원치료 후의 외상으로 인하여 이 시조를 창조해 낸 것으로 인지된다. “소매로 가려진 내 손목의 흔적 하나”가 그것의 방증이다. 그리고 이 시조 속의 화자 역시 노동자는 작자 자신이다. 그 노동자는 “하루를 살기 위해 매달리다 미끄러진” 노동자로 환유된다. 그런데 이 시조에서의 주안점은 노동에 핀트를 맞춘 것보다 노동자가 다친 팔목을 수술하고 난 후의 ‘상처’에 대하여 더 경도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의 대가가 상처로 남았다는 일종의 중의적 표현이다. 상처는 곧 노동이고, 노동은 곧 상처라는 등가 형식이다. 노동의 힘든 값어치를 끌어올리려는 심정적 표현의 형상화로 잘 마름한 한 필의 피륙 같은 시조다.
이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번 시집의 표제가 된 시조 「아내, 활을 쏘다」를 감상해 보자.
연애할 때
내 화살
과녁으로 받아주고
빈 잔의
삼십 년을
웃음 살풋 채워주던.
아내가
시위를 당긴다
자음 모음 날이 서다
「아내, 활을 쏘다」 전문
이 시조의 소재는 일상적이지만 참으로 아름답게 승화된 시다. 이 시조가 더욱 우월성을 띠는 것은 이 세상 모든 부부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 정서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문학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보편성’은 문학적 요소에서 그 우위를 차지한다. 그렇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특히 남성들은 연애 시절에는 자신을 다 희생할 것처럼 사랑을 고백하다가도 결혼을 하고나면 그날로 변하더라는 부부도 있다. 이 시조에서는 남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아내가 변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빈 잔의 삼십 년을 웃음으로 채워주던” 아내라니, 참 오랜 세월 동안 “빈 잔을 채워준” 아내다. 그런 아내가 “시위를 당긴다/자음 모음으로 날이 서다”라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참으로 재치 있는 표현으로 시조의 맛과 멋을 잘 살려내고 있는 역작이다. 이종현 시조의 또 하나의 특성은 뛰어난 상상력이다. 「열쇠는 좌우로 행동한다」라는 시조에서 그는 “두 평 반 공간을 격자로 움켜잡는다”라고 열쇠에 생명을 불어넣어 의인화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의 발로이다. 그리고 “덜커덕, 하늘을 열고 발걸음 배웅한다”는 것은 곧 열쇠가 하늘을 열고 출근길에 나서는 “발걸음을 배웅한다”고 의인화 기법으로 형상화한 미학이다. 기발한 표현은 뛰어난 상상력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존재생성의 힘이 바로 그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의 상상력이다. 현실의 기능인 상상력은 의지력이나 생의 도약보다도 더 정신적 창조의 힘을 가진 그 자체이다.”라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이종현 시인의 상상력도 이런 동력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유추해 보는 것이다. 짧은 형식의 시조 속에 많은 의미의 동력을 지닌 시의 발상을 구현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