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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제1부

그리움의 뿌리 10
역할 11
예쁜 새 한 마리 12
산통 소리 14
은하수 16
탈레스의 생각 18
감쪽같은 20
새 1 21
사르가소Sargasso 24
로더 킬 26
어떤 상상 28
후박나무 30
관습에 대하여 32
탄생 설화 34
상고대 36

제2부

청명 38
결빙기 40
실은, 고향 집 마당에 42
어머니의 문 44
마음속에서만 존재하는 말 46
사슴뿔을 줍다 48
입동 아침 50
커피를 마시며 52
검은 강 54
오래된 기억 56
중양절 58
낙엽 60
국화 향을 맡으며 62
뻐꾸기가 울고 있네 64
아버지 책상 위에 계시네 66

제3부

바람 전傳 68
부활 70
진주성에서 72
흰 구름을 닮았다 74
장미를 보면서 76
저녁 강가에서 78
절정은 울음이다 80
경칩 날 아침 82
카르마 84
봄날 86
풍장의 서사 87
노을이 불타고 있네, 88
가습기 90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 92
하지 94

제4부

새 2 96
새 3 98
뫼르소의 변명 100
몽타주 101
딸기 우유를 생각하면서 102
고추잠자리 104
요양 병동에서 106
십일월 108
동짓날에 110
지동설 112
그때마다 114
섣달그믐 116
콜럼버스의 관(Sepulcro de Colón) 118
돌담길 120
봄바람이 지나가는 122
서른여섯 해 123

▨ 이창하의 시세계 | 김정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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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뿔을 줍다 : 이창하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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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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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언제나 “근원의 슬픔”을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다. ‘겸손’하지 못하고 순정하지 못한 언어란 “업경대(業鏡臺)의 카르마”에 자신의 죄를 항시 비춰보고 반성하는 태도를 통해서. 그 속에 감춰진 “풍문에/ 바람을 받아들인 그는/ 다시 네 발로 걸어다”니려는 낯선 의지를 기다리면서. 이 측면에서 시집의 제목인 ‘사슴뿔을 줍다’란 그렇기에 이름하기 어려운 마음의 한 형상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상적이고 표면적인 나이자 언어의 객관적 의미를 넘어서 있는 ‘뿌리’의 순정한 마음. 그 ‘겸손’한 언어를 향한 시인의 의지가 ‘사슴뿔’과 같을 따름이다. 단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 것은 그것이 올바르고 명확한 언어로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마치 ‘새들의 노래가 다양한 유전자처럼 멋대로 흩어’질 때만 가능할 언어. 시인의 말처럼 이 ‘푸른 잎사귀를 둔 긴 가지에 핀 예쁜 꽃’은 ‘엉뚱’하고도 예측하지 못한 형태로서만 주어져 있으며 그로서만 도달할 수 있을 테니까.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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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뒷걸음질하다가 물웅덩이에 빠진 적이 있다
뒤통수에 눈이 없다는 사실과
어둠은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

돌부리를 차고 아파한 적이나
어둠이 깔린 시골길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뱀에게 물린 적이 있다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달리던 길에서
나와
돌부리와
뱀이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단호했던 순간이었다
사슴뿔을 줍다

늙은 아버지의 지게가 생각나는 오후
지푸라기로 이어진 낡은 인연이 색이 바래지도록 땀을 흘리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진 나그넷길에서 너를 만난 것은
등이 굽고 백색인 아버지의 머리카락 같은 넝쿨 사이에서
멈춘 시간 속을 배회하다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나 흘려야 눈물이 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까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시냇물 위에는 여전히 흰 구름이 흘러가고
나는 오래된 외짝의 설화 같은 너를 주워 든다

너는 아버지의 굽은 지게 형상으로 오래된 기억을 지키고 있었으니
모든 시작과 끝은 이렇듯 우연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아는지
단순하게 맺어진 인연으로
아버지의 눈물 같은 형체가 그리워지는
세상의 근원을 더듬게 하는 오래된 기억을 주워 들게 한다
부활

밭모퉁이에 방치되어 있던 한 그루의 고목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부쩍 사는 것을 힘에 겨워했는데 긴 가지의 무게도 겨우 견뎌내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고목은 스스로 자신의 가지를 하나둘 땅바닥에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연이어 가지들을 내려두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동쪽 하늘에서 훈풍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비가 많이 내리기도 했다 땅바닥에 있던 가지들은 얼마 남지 않은 자신들의 생명을 데리고 스스로 바람을 따라 서쪽 하늘로 날아가기도 했다 흩어져 있던 육신들은 육신대로 스스로 풍장風葬을 치르고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이듬해, 어김없이 다시 봄이 찾아왔다 어느 날 고목의 뿌리는 문득 자신의 머리가 몹시 가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고는 머리끝에서 송아지 뿔처럼 작은 혹이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혹은 점차 사슴뿔을 닮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것을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다시 바람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뿌리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육신이 심하게 흔들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깜짝 놀라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사슴뿔 같은 혹이라 여겼던 자리에 새로운 가지가 길게 자라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참 골똘한 생각에 빠졌던 뿌리는 내일 모래가 되면 푸른 잎사귀를 둔 긴 가지에서 예쁜 꽃도 피게 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