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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김재규 변호인으로서 한국 현대사, 치열한 격동의 시기 역사의 속살과 진실을 파헤친 생생한 증언!
정의의 편에 설 것인가? 권력의 편에 설 것인가? 김재규의 변호인 강신옥이 이 시대에 던지는 질문
<영원히 정의의 편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인권변호사 강신옥의 생생한 육성과 기록을 정리한 회고록이다. 강신옥의 일생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왔다.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인권 신장의 역사이자 정의 실현의 역사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인권과 정의의 두 날개가 모두 온전해야만 힘차게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에서는 생소했던 인권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 단지 이론에만 머물지 않고 민청학련 사건 변호사로서 실제 법정에서 용감하고 치열하게 인권을 옹호하다가 옥살이까지 겪었던 한국 인권운동의 증인 강신옥을 조명하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불의하고 폭력적인 정치권력이 저지른 최악의 인권침해 사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강신옥은 억울하게 인권을 유린당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변호하다 그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시련과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책은 강신옥이 김재규의 변호사로서 한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오랫동안 봉인되어온 우리 역사의 어둡고 부끄러운 민낯과 속살이 이 책에서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되었다.
10·26 사건은 20세기 한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을 이룬 핵심사건이었다. 강신옥은 박정희 정권의 장기독재에 마침표를 찍은 김재규를 재판의 시작부터 끝까지 변호하며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완전한 명예 회복과 민주주의의 확고한 정착을 위해 시종일관 노력했다.
이외에도 이 책에서는 정치인 강신옥의 여정, YS와 DJ와의 인연, 정주영과 정몽준, 박근혜와의 일화, 신영복과의 만남 등 한국 현대사를 수놓은 다양한 이야기들이 소개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주는 묵직한 의미는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현실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의 다음 단계를 어떻게 미래지향적으로 열어갈 것인지 우리들에게 진지하게 질문하고 있다는 데 있다.
강신옥은 이 책에서 작게는 후배 법조인들에게, 넓게는 대한민국의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에게 묻고 있다. 자신의 출세와 성공을 좇아 불의한 권력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인권을 지키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는 정의의 편에 설 것인가를. 정의롭고 양심적인 참다운 법조인의 모습에 목말라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권유하는 까닭이다.
“그 어떤 시기라 해도 정의와 양심을 위해 직까지 걸 수 있는 의롭고 용감한 판검사 다섯 명만 있으면 된다”
법과 역사의 교차로에서 정의와 시대를 변호하다
“그 어떤 시기라 해도 직까지 걸 수 있는 용감한 판검사 다섯 명만 있으면 된다” “죄지은 사람에게 벌을 주고 죄 없는 사람 살리는 게 정의” “김재규의 내란목적 살인에서 ‘내란’은 빼야... 재심 통해 역사적 사실관계 바로잡아야”
이 책은 1세대 대한민국 인권변호사이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호인이었던 강신옥 개인의 파란만장한 삶과 혜안, 넘치는 사상과 철학을 강 변호사 육성과 기록을 바탕으로 요약정리한 회고록이다.
이 책은 고인의 사위이자 오랫동안 일간지 기자로 일해왔던 홍윤오 씨가 생전에 강신옥 변호사로부터 들었던 여러 이야기들과, 2015년~2016년에 걸쳐 진행한 강 변호사와의 인터뷰 및 관련 자료들을 토대로 서술하였다.
이 책에서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한 격동의 시기에 있었던 민청학련, 통혁당 사건 등과 10.26 김재규 사건을 포함하여 자신이 경험한 사건들의 내용을 중심으로 역사의 속살과 진실을 파헤치는 생생한 증언들이 계속된다.
강신옥 변호사는 평소 유신체제에 관해 언급할 때면 “권위주의 정권 시기라 해도 정의와 양심을 위해 기꺼이 직이라도 걸 수 있는 판사와 검사 5명만 있었다면 수백~수천 명의 억울한 시민들과 무고한 학생들 피해와 희생을 막을 수 있었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는 “정의란 죄 없는 사람에게는 벌을 주지 않고, 죄지은 사람에게는 성역 없이 벌을 주는 것”이라면서 “정의와 불의를 가리는 일에는 진보와 보수의 구분도, 좌파와 우파의 차이도 없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유신 시대의 대표적 인권탄압 사건인 민청학련 사건과 관련해서 “법이 정치의 시녀, 권력의 시녀가 되면 법을 빙자한 사법살인 같은 일이 벌어진다.”라면서 “악법과 불의에 저항하는 것은 인간 생명체의 자연스런 본능이자 전인격적인 판단과 양심의 발로”라는 말로 자연법으로서의 저항권을 강조했다.
대의를 위해 개인적 소의를 희생한 김재규 재평가 필요해
강신옥 변호사는 10·26 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동기 중 특히 기억에 남는 대목은 ‘각하는 갈수록 애국심보다 집권욕이 강해졌다’는 진단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김재규와는 일면식도 없었다가 10·26 사건 재판을 계기로 알게 됐다”고 술회하면서, “그와 5개월여 일대일 접견을 해본 결과 그가 진정 인권과 자유민주주의라는 대의를 위해 개인적 소의를 희생한 의인이라고 생각했다”고 김재규를 재평가했다.
그는 접견 때 김재규가 대만의 오봉이라는 식인종 스승이 변장한 채 스스로 제자들에게 먹혀 죽음으로써 식인 습성을 없앤 사례를 들며 “내 행위도 그와 비슷해 내 생명을 바쳐서 자유를 회복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전두환이 잔재주를 부리면 국민이 희생된다”고 했다고 전했다.
10·26이 있었기에 YS와 DJ가 차례로 집권해
강 변호사는 “역사적 진실과 정의를 위해서라도 김재규의 목숨만은 일단 살려놨어야 한다”라고 아쉬워하면서 “사실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이 대권 고지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건 다 김재규 덕인만큼 나는 그 두 사람이 사나이답게 김재규에게 고맙다고 하고 구명운동에 나섰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민간인 김재규가 일반 법원이 아닌 계엄 군법회의에서 재판받은 점, 정당한 방어권 기회를 박탈당한 점, 신군부에 의한 쪽지 재판 등 그동안 재심 사유가 많이 보강이 됐다”면서 “하루빨리 재심을 통해 ‘내란목적 살인’ 죄목 중 ‘내란목적’만큼은 빼는 것이 역사적·사법적 책무이자 김재규의 명예를 최소한이나마 회복시켜주는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이 밖에 10.26 수사 과정에서 전두환 전 합동수사본부장이 김재규에게 “민주주의를 위한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각하를 시해했다면 왜 그 자리에서 자결하지 않았나”라고 다그친 데 대해 김재규는 “혁명을 결행한 마당에 쓰레기들이 더 남아 있어서 그걸 다 치우고 총을 주면 자결하겠다”고 반박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민청학련 사건 변호 중 현직 변호사로 체포·구속돼
강 변호사는 1974년 7월 민청학련 사건 당시 유인태 전 민주당 의원 등 관련자들의 결심 공판에서 “애국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등으로 걸어 빨갱이로 몰아 사형을 구형하고 있으니 이는 사법살인 행위다. 악법에는 저항할 수 있다”는 최후 변론을 하다가 법정모욕죄 등 혐의로 체포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대통령 특별조치로 석방되기까지 영어의 몸이 되었던 그는 한참 뒤인 1987년에야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85세 때인 2021년 7월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강신옥 변호사의 삶
강신옥은 1936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 대학원을 거쳐 조지워싱턴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재학 중 입대한 상태에서 고등고시 행정과(10회)와 사법과(11회) 양 과 합격했다. 병장 만기 전역 후 판사로 1년 반 정도 근무하다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 시절 판사직을 사임했다. 민청학련 사건과 10.26 사건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변호 등 여러 시국사건, 인권사건을 변호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1세대 인권변호사이자 정치인이었다.
서슬 퍼런 유신 시절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 때는 “유신헌법은 악법이고 악법에는 저항해야 한다. 악법으로 무고한 학생들을 사형시키려는 것은 사법살인이다. 차라리 내가 저 피고인석에 앉고 싶다”는 등의 발언으로 구속기소돼 군사 법정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 형을 받고 이듬해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되기도 했다. 14년 후인 1988년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선고됐다.
이후 제13대(서울 마포을)와 제14대(전국구)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국회법사위에서 ‘백범김구 암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정계 은퇴 후 틈만 나면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고 좋아하는 등산, 테니스 등으로 소일하다 2021년 7월 31일 숙환으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