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일하는 사람은 전통적으로 노동법의 적용대상인 ‘근로자’와 노동법의 적용대상 밖에 있는 ‘자영업자’로 구분되어왔다. 그런데, ‘균열일터’라는 말이 상징하듯 현대의 일터는 지난 세기의 균질성을 상실하였고, 표준적 고용 관계에서 벗어난 다양한 일하는 방식이 확산하였다. 이로 인하여 종전의 기준으로는 ‘근로자’의 범주로 포섭하기 어려운 일하는 사람의 수가 증가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일부 국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산업화가 어느 정도 성숙에 이른 많은 국가에서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국가에서 ‘비근로자’인 일하는 사람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각국의 노동법 체계는 각각 고유한 역사적 맥락이 있다. 따라서, 비근로자인 노동자를 어떠한 방식으로 보호할 것인지는 해당 국가의 노동법제가 근로자의 범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근로자 이외의 노동자에 대하여 어떠한 보호를 하고 있는지 등의 규범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컨대, 우리나라는 비근로자인 노동자 일부를 ‘노무제공자’라는 범주로 묶어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고용보험법을 통해 근로자와 유사한 보호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일본은 비근로자인 근로자를 노동법의 대상으로 포괄하는데 다소 신중한 태도를 보여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본에서는 2024년 11월 1일 프리랜서를 보호하기 위한 「
특정수탁사업자와 관련된 거래의 적정화 등에 관한 법률」
(이하 “프리랜서 신법”이라고 한다)이 시행되었다. 동 법률은 1인 자영업자 중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자를 ‘특정수탁사업자’로 범주화하고, 이들의 거래 조건의 적정화에 관하여는 경제법적 보호를, 취업 환경에 관하여는 노동법적 보호를 동시에 규정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노동법제는 일본과 유사한 점이 많다. 따라서, 일본에서 프리랜서의 보호를 위해 “프리랜서 신법”을 제정한 맥락과 그 내용, 그리고 향후의 전망은 우리나라의 관련 정책에서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일본 내에서의 “프리랜서 신법”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쳤지만, 이 얇은 책은 단순히 일본의 “프리랜서 신법”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노동법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노동법의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과 유럽 각국의 최신의 경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저자 나름의 입장을 제시한 ‘무거운’ 책이었다. 하시코토 요코(橋本陽子) 교수는 2021년의 「
노동자의 기본 개념-노동자성의 판단 요소와 판단 방법(労
働
者の基本概
念-労
働
者性の判断
要素と判断
方法)」
등 다수의 연구서를 출판하는 등 ‘노동자성’ 문제에 있어 일본에서도 정평있는 연구자이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의 연구성과를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신서판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역자는 이 책은 일본뿐 아니라 노동법제에 관하여 일본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반드시 ‘읽혀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하시코토 교수도 이 책의 한국어판 출판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지면을 빌어 한국어판 출판을 허락해 주신 하시모토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역자들은 하시모토 교수의 생각을 정확하게 한국어로 옮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으나, 여전히 부족한 점이 있을 것이다. 한편, 문고판으로 출판된 관계로 원서에는 각주가 붙어있지 않아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각국의 판례와 법령 등을 독자들께서 찾아볼 수 있도록 역자들이 하나하나 찾아 각주로 표시하였다. 또한, 일본의 프리랜서 신법과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플랫폼노동 입법지침(EU Platform Work Directive)의 전문을 번역하여 부록으로 추가하였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출판환경에서도 이 책의 번역을 위해 선선히 나서 주신 김중용 대표님을 비롯한 ‘정독’의 모든 임직원께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 책이 독자들께서 ‘프리랜서’로 불리지만 실상은 ‘언프리(unfree)’한 일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볼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역자들의 바람이다.
2024. 11. 27.
역자들을 대표하여 권오성 씀
한국어판 서문
이 책은 일본에서 노동법이 적용되는 “노동자”란 누구이며, 어떻게 판단되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전문적인 것이지만, 일반 독자를 위해 집필한 책입니다.
노동자와 구별되는 자는 ‘자영업자(사업자)’입니다. 노동법과 사회보험법은 노동자에게만 적용됩니다. 즉, 자영업자에게는 노동법의 보호가 미치지 못하고 사회보험에도 원칙적으로 가입하지 못하므로, 질병이나 노후 등 일할 수 없게 될 경우의 소득 및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호는 자영업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합니다.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구별은 공업화가 시작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걸쳐, 여러 외국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노동자와 동일하지만, 자영업자로 취급되고 있는 “위장 자영업”의 문제는 늘 존재해 왔지만, 최근에 플랫폼노동이라는 새로운 일하는 방식이 등장하면서 다시금 현재화(顕
在化)되었습니다.
플랫폼노동에 관한 논의는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된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있습니다. 한국의 대법원 2024. 7. 25. 선고 2024두32973 판결은 ‘타다’ 운전기사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을 긍정하고, 해고로부터의 보호를 인정하였습니다. 매우 획기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보다 논의가 앞서 있는 한국에서 졸저를 번역하여 출판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기에, 매우 영광입니다.
권오성 교수님과 박수경 박사님이 본서를 순식간에 번역해주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힘든 작업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해주신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10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일이 있습니다. 한국은 그때보다 더욱 많은 변모를 이루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시 한국의 낮은 최저임금에 놀랐었는데, 오늘날에는 최저임금액도 한국이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일본이 한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일본과 한국의 학술 교류가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기를 마음으로부터 기원합니다.
2024년 11월 6일
도쿄에서
하시모토 요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