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지 않은 언론, ‘진실’에 무지한 언론인 ‘프로페셔널’하지 않은 ‘프로페셔널’ 금성의 독자, 화성의 언론인 언론의 빈약한 사전 검증은 숙명 미궁에 빠지는 진실 세계적 언론들조차 엇갈리는 진실
2장 언론이 전하는 ‘진실’의 특징
‘진실’에 관한 수많은 이론 ‘망각의 강’에서 깨어나는 진실 악처를 낳은 톨스토이의 진실 진실은 만들어진다 진실에도 무게가 있다 사람들의 행동 근거가 되는 진실 저널리즘적 진실의 상대성
3장 변함없는 뉴스, 진화하는 뉴스 시장
불변의 욕구, 생존과 흥미 뉴스 시장의 등장과 변화 시장의 힘에 의해 명멸하는 저널리즘 언론과 민주주의: 아는 게 힘, 모르는 게 약
4장 뉴스의 이상과 현실
이율배반적 뉴스 욕망 한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뉴스 경성 뉴스hard news vs 연성 뉴스soft news 선정적 연성 뉴스의 힘도 세다
5장 언론 자유 사상의 ‘숨은 그림’
우월한 인간에게만 부여되는 ‘언론의 자유’ 가짜뉴스가 되어버린 제퍼슨 명언 ‘무한한 자유’가 아닌 ‘충분한 자유’ 언론 자유가 미국 헌법의 제1조? 우연이 만든 신화 미국 수정헌법과 프랑스 인권선언의 차이 ‘시간’이 흘러야 드러나는 ‘진실’
6장 부끄러움을 모르는 언론, 묻히는 진실
자유보다 굴종을 택하는 언론 자유를 기득권 지키기에 활용하는 언론 모든 진실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7장 자유를 만끽하는 언론의 배신
신념이 환멸로, 제퍼슨의 변심 자유로운 언론에 관한 환상 저널리스트의 어두운 본성 대중 언론이 무시하는 소수의 목소리
8장 한국 언론의 현주소
불행한 역사, 부족한 성찰 노골적 당파성, 기울어진 운동장 자유의 역설, 추락하는 신뢰 언론은 오직 도구? 한국 정치의 후진성 신흥 언론인의 위험한 줄타기
〈잠깐! 코너〉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편향적 인식 객관주의 저널리즘과 〈라쇼몽〉의 현실 뉴스의 본질은 ‘왜곡’? ‘진실’을 낳는 ‘시간’, ‘진실’을 닮은 ‘거짓’ 뉴스 생산 공정의 고속도로와 협로狹路 수평적 소통의 확산과 추락하는 언론인의 위상 막을 수 없는 선정적 뉴스의 물길 언론의 경쟁과 연성 뉴스 노예와 인디언은 예외인 자유 누가 무엇으로부터 누리는 자유인가? 역사가 담긴 각국의 헌법 1조 잔학한 폭력을 선동하는 언론 모두가 속은 〈모니퇴르〉의 거짓 일화 기자실과 기자단을 둘러싼 논쟁 당파적 언론의 여전한 추문 보도 탈진실post-truth은 외면당한 다수의 선택 같은 듯 다른, 언론의 모토moto 미국의 언론 지형 사라지는 사실fact, 넘쳐나는 논평 정파성 완화의 ‘선의’와 보도의 ‘품질’
2025년, 언론에 대한 신뢰가 크게 추락한 지금, 언론의 본질을 처음부터 다시 묻는 책이 출간됐다. 일선 기자와 언론사 CEO, 미디어 경제학자를 두루 경험한 지은이가 경험과 학문적 통찰을 바탕으로,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며 언론은 왜 나아지지 않는지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언론 개혁의 방향을 제시한 책, 바로 『언론본색』이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선언한다. “언론인들은 ‘언론이 전하는 진실’에 관해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잘 모른다’는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다.” 『언론본색』은 이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언론에 대한 환상과 현실의 괴리
이 책은 단지 언론 비판서가 아니다. 오히려 독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진실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언론은 정말 진실을 전하는가?” 지은이는 말한다. “뉴스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에 부합하는 뉴스일수록, 더 신뢰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결과를 낳는다. 말로는 언론을 향해 ‘진실’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내 생각과 같은 뉴스’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의식하며 뉴스를 내놓는다.” 그러므로 언론은 ‘진실의 등대’보다는 ‘인간 욕망의 거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은 지킬 박사이자 하이드다
이 책은 언론의 양면성을 깊은 식견과 역사 속에 숨겨진 일화를 통해 전한다. 제퍼슨, 토크빌, 리프먼 등 언론 자유의 옹호자조차 언론의 추악한 이면에 크게 실망했음을 상기시킨다. 제퍼슨은 “이제 신문에서 보는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고, 토크빌은 “언론은 대부분 증오와 시기심에 사로잡혀 있고, 거짓과 진실을 함께 퍼뜨린다”고 했다. 이처럼 언론의 역기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언론이 지닌 부조리하고 잔인한 면모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라, 인간과 언론이 지닌 뿌리 깊은 본성의 발로다.” 사람들의 욕망이 언론을 만든다
『언론본색』의 가장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언론의 문제를 언론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언론의 시작과 끝에는 언론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렇게 주문한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성찰하고, 언론의 본성을 깊이 이해하며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가십과 추문, 자극적 뉴스가 ‘많이 본 뉴스’ 상위권을 장악하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진실’보다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뉴스와 ‘재미’를 원한다. 그러니 언론은 선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상은 등대, 현실은 파도
『언론본색』은 한국의 언론이 뒷걸음만 쳐온 이유는 “‘이상’만을 앞세울 뿐 현실을 직시하지 않은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이상’은 우리가 향해야 할 곳을 알려줄 뿐, 무엇이,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는 알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언론의 이념’이 아니라 ‘언론의 본성과 현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는 이를 ‘변함없는 변화(unchanging change)’라고 말한다. 언론의 본질은 고정돼 있지만, 기술-경제 환경은 끊임없이 변했고, 이로 인해 저널리즘은 형태와 내용이 변해왔다. 전통 언론의 위기, 신흥 언론의 부상, 그리고 적대적 공존
지은이는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신흥 언론의 급부상과 전통 언론의 몰락을 분석하면서, 두 언론이 ‘적대적 공존’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전통 언론은 수익성 악화로 품질이 저하되고, 신흥 언론은 정파성과 해석 중심의 콘텐츠로 급속히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경고한다. “전통 언론인들은 자신의 보도가 얼마나 공정하고 정확한지, 대중에게 얼마나 신뢰를 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되돌아보고,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신흥 언론인들도, 당장은 겸손과 성찰의 필요성을 느낄 수 없겠지만, 질적 도약을 원한다면 스스로를 성찰하며 겸손해져야 한다.” 정파적이라도 품질은 높아야
에필로그에서 제시하는 현실적 대안도 새길 만한 대목이다. “언론의 정파성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그 속에서 태어난 언론의 본성”이나, “언론의 품질은 언론이 지닌 정파성과는 별개”이며, “정파적이라도 고품질 언론이 있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처럼, 분명한 정파성을 지니면서도 품질 높은 저널리즘으로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참고해야 할 길이다. 변화의 열쇠는 언론 소비자가 쥐고 있다
『언론본색』은 언론 소비자에게도 변화를 요구한다. “언론의 품질은 궁극적으로 언론 소비자가 얼마나 현명한지에 달려 있다.”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편향을 감수하더라도 품질을 중시하는 태도, 이견에 귀 기울이는 자세만이 언론 환경을 바꿀 수 있다. 흥미와 교양, 언론 개혁의 당위와 현실, 모든 면에서 역작
이 책은 다양한 ‘신화’들을 들춰내며 읽는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언론 자유의 성전(聖典)으로 꼽히는 『아레오파기티카』를 쓴 밀턴의 한계,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을 두고 ‘식인귀’에서 ‘황제 폐하’까지 눈부신 ‘변신’을 했다는 한 프랑스 신문의 조작된 ‘신화’,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의 본색 등의 이야기가 읽는 맛을 돋운다. 언론에 관심 있는 이라면 놓치기 아까운, 의미와 재미를 겸비한 수작(秀作)이자, 흥미와 교양, 언론 개혁의 당위와 현실, 모든 면에서 역작이다.
책속에서
[P.38] 언론은 대중을 향해 “이게 진실”이라고 단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책의 서두에서 소개한 한국 신문사들의 모토들부터 그렇다. 학자들이, 자신이 발견한 ‘진실’을 언론만큼 단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언론은 자신이 전하는 정보의 신뢰도를 일상적으로 과장하고 있다 하겠다. 사실, 뉴스 보도에 대한 빈약한 사전 검증은 언론인이 지닌 태생적 한계다. 언론인은 신속성과 정확성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산다. 그러나 현실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더 정확한 보도를 위해서는 신속한 보도를 포기해야 하고, 더 신속한 보도를 위해서는 정확한 보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맞닥뜨린 언론인들은 덜 정확하더라도 신속한 보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잦다. 경쟁 언론보다 먼저 뉴스 소비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면, 부정확한 보도라도 신속하게 내보내는 편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1장 「‘너 자신을 알라’, 언론에 관한 환상」)
[P. 55~56] 진실에 관한 이론과 견해가 많다는 데는 두 가지 함의가 있다. 먼저 우리가 철학, 자연과학, 종교, 사회학, 커뮤니케이션학 등 모든 분야에서 다루는 ‘진실’을 하나로 설명하는 게 쉽지 않다는 뜻이다. 아니, 쉽지 않은 게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실제 진실에 관한 수많은 이론과 견해들이 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모든 영역에 걸쳐 받아들여지는 이론과 견해는 없다. 또 다른 함의는, 모든 시대와 분야를 관통하는 진실론은 없더라도 특정 시대나 분야에서 통용되는 진실-혹은 진실의 기준-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한 분야에서 진실이 될 수 없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진실이 될 수 있고, 어떤 시대에는 진실이었지만 다른 시대에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2장 「언론이 전하는 ‘진실’의 특징」)
[P. 103] 사람들이 무조건 더 많은 정보를 접하는 일이 마냥 반길 일은 아니다. 행위의 결과가 아닌 과정 중의 행위는 사회와 민주주의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정부 기관이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공개한 ‘과정 중의 행위나 정보’를 언론이 검증 없이 보도하는 것도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뉴스와 언론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들이 무엇인가에 대해 더 생각하게 하는 방식으로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또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정보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과정에 있는 정치인이나 정부 기관의 행위가 알려지는 것은 되레 민주주의에 유해할 수도 있다. (3장 「변함없는 뉴스, 진화하는 뉴스 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