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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나 처음으로 걷기 시작한 날, 학교에 처음으로 입학한 날,
당신의 결혼식과 첫 아이

우리의 삶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그림으로 만난다


여기 한 생명이 태어났다. 아기는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안락하고 포근한 침구 위에서 오랜 시간 웅크려있다. 아기가 힘을 키워 걷게 되기까지 한 해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베르트 모리조의 <요람>과 빈센트 반 고흐의 <첫 걸음, 밀레 이후> 사이, 아기가 아이가 되기까지의 시간에 대해 우리는 그리 많이 기억하지 못한다.

저자는 태어나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의 타임라인 동안 인간이 겪는 무수한 삶의 조각들을 촘촘하게 수집하고 풀어놓는다. 탄생과 유년, 교육, 사랑, 삶의 기쁨, 죽음과 장례로 구분된 다섯 개의 파트에는 저자가 엄선한 28편의 작품들이 저마다의 조각들로 삶을 설명하고 있다.

<탄생과 유년>에서는 인간이 태어나 겪는 유년 시절의 슬픔과 기쁨을 풀어놓는다. 금발의 선홍색 뺨을 가진 아이들이 등장하는 르누아르의 그림들, 수많은 아이로 가득 찬 마을 학교의 풍경을 묘사한 얀 스테인의 그림, 골목 안에서 이뤄지는 아이들의 사회생활을 보여주는 마리 바시키르체프의 그림들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어린 날의 조각들은 섬광처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유년을 거쳐 <교육>의 시기에 도착한 아이들은 보다 큰 꿈을 꾸며 희망에 가득 찬다. 학문의 성지 <아테네 학당>을 비롯해 장 바티스트 그뢰즈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기타 연주자>, 게릿 반 혼토르스트의 <콘서트>는 젊은 날의 치기와 열정을 화려하게 보여준다. 미래파 선언으로 알려진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역동적인 그림과 페르메이르의 오래된 그림은 시대를 거쳐 인간이 가진 소망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사랑>. 인간의 삶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사람 사이의 사랑뿐 아니라 다양한 감정의 근간은 애정과 호감에서 비롯될지도 모른다. 호감을 지속해 깊은 관계가 되고, 가족이 되고, 가정을 만드는 일은 인간이 가진 가장 다정한 창조일 것이다. 아우구스트 마케의 <숲길 위의 커플>, 앙리 루소의 <결혼식> 뿐 아니라 로렌스 알마타데마 경의 <더 이상 묻지 말아요>, 엠마누엘 로이체의 <호박 목걸이> 등 유명하며 또한 생소한 작품들을 통해 삶과 사랑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도 한다.

이렇게 알게 된 <삶의 기쁨>은 더 이상 총천연색이 아니다.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열차>에는 어둡고 늙은 얼굴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한 줄기 빛과 희망을 본다. 에드바르 뭉크의 <삶의 춤>과 앙리 마티스의 <삶의 기쁨>은 삶의 고단함에도 춤을 추고 노래하는 인간의 긍정을 확인하는 자리이다. 파올로 베로네제의 <사랑의 알레고리>를 다룬 네 작품 또한 신묘하다. 신과 인간, 우주와 지구를 넘나드는 상상력은 무한하고 우리는 다 헤아릴 수 없는 생의 의미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살아갈 뿐이다.

헨드릭 테르브루그헨의 <촛불 아래 글 쓰는 노인>에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시간의 힘'이라 부르고 싶다. 죽음은 소리소문없이 다가와 생의 에너지를 한 순간 잡아끌고 결국 죽음으로 가득 담긴 한 잔의 술을 건넨다. 희대의 명사였던 <쇼팽의 죽음>처럼 삶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랑과 기쁨이 우리 삶을 충만하게 할지언정 필멸과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장례식 교향곡>을 틀고 <우리는 어디서 왔나?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질문할 수 있다. 프리즈로 가득한 생의 다채로운 아름다움을 잊을 수는 없기에. 당신의 삶 또한 잘 축조된 한 채의 미술관 속 작품들처럼 가치를 매길 수도 없는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