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의 부단한 지각작용을 통해 퇴적층이 형성되듯, 시는 삶의 온갖 파동에 의해 켜켜이 쌓인 인간의 희로애락을 품고 있는 퇴적물과 같다. 시 속에 내장된 이 퇴적물에는 생의 무수한 무늬들이 압축파일처럼 응축되어 있다가 누군가 마음의 촉수로 그것을 건드리게 되면 물결처럼 출렁이며 그 풍설風說들을 쏟아낸다. 그러므로 시는 시인이 느끼는 숱한 정념情念들이 이미지로 농축되어 있다가 어느 한 순간 감동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까닭에 짧은 서정시들이 수록된 시집은 가볍게 손에 쥐어지지만, 그 시집 속에 담긴 생의 울혈과 파노라마는 결코 가볍게 들어 올려지지 않는다. 만남과 이별, 사랑과 상처, 탐욕과 무상함, 애락哀樂과 생멸生滅 등 넝쿨처럼 엉킨 생의 비망록을 은밀히 품고 있는 한 권의 시집이 어찌 가벼울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