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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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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0년쯤 인류가 2020년을 되돌아보면 이 해를 어떻게 기억할까. 아마도 그 이전의 견고했던 질서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삶의 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던 해로 기억하지 않을까. 물론 그 핵심 키워드는 코로나 바이러스 19이다. 우선 튼튼해 보였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의 사회 체제가 위기에 직면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각국의 시민들은 생계의 위협을 느끼면서 방역에 실패한 정부의 방침에 저항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1989년과 1991년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영원할 줄 알았던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체제가 결국 새로운 냉전 체제의 서막으로 이어진 해로 기억될 공산이 크다.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헤게모니 경쟁의 초기 국면에서 그 성패는 ‘누가 바이러스 백신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2020년은 갑자기 멈춰버린 일상을 작동시키기 위한 새로운 사회적 시스템이 실질적으로 등장했던 해로 기억될 것이다. 그동안 축적되었던 다양한 첨단 기술과 커뮤니케이션 기술, 즉 인공지능과 드론, 자율주행자동차와 무인 기계 제어 시스템, 화상 회의와 동영상 기술 등이 서로 결합해서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가급적 움직이지 않으면서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목표 아래에서, 이 다양한 기술들은 그 이전의 인류라면 상상하지도 못했던 삶의 모습을 그려나가는 데에 길잡이가 되고 있다. 아무도 가 보지 않았던 길을 걷는 인류는 첨단 과학 기술의 불빛 아래에서 조금이나마 안심과 위로를 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거대한 역사적 변화와 과학적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위기는 훨씬 깊고도 폭넓은, 그리고 복잡한 움직임과 맞닿아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19는 인간의 생태계 파괴의 산물이라는 점, 그 파괴는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체제의 오랜 발전의 결과라는 점이 그것이다. 슬프게도 그 생태계 파괴는 시리아 등 주변부 지역의 황폐화와 분쟁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피폐한 자기 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유럽 등의 중심부 지역으로 몰려가게 했다. 그리고 그 중심부에 사는 사람들은 삶의 뿌리가 뽑힌 사람들을 마치 바이러스처럼 여기면서 사회적 장벽을 쌓으려고 한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사건들의 연쇄 위에서 우리는 불안과 공포의 스토리를 발견한다. 한쪽에서는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한 사람들이 절망과 공포에 노출되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출근하고 쇼핑하는 일상이 영원히 파괴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뿌리 뽑힌 자들이 사회적 질서를 파괴할 것이라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만약 이 불안과 공포가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그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수많은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사례를 통해서 잘 알고 있다. 바로 타자들을 향한 증오와 폭력 사태가 그것이다. 그 뿌리 깊은 공포와 폭력의 이야기를 새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생각해보면, 인문학은 미래의 청사진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놀라운 성취와 어리석은 실패 속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 성찰할 뿐이다. 타자에 대한 공포와 폭력도 그와 같은 인간 본성의 일부이다. 공포와 폭력의 인간 본성은 신화와 전설, 소설과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풍성한 탐구 대상이다. 왜, 어떤 경로를 거쳐서 인간은 타자를 공격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그 스토리 속에 녹아들어 있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성찰을 함께 시작하자는 제언이다. 그것은 굳이 복잡한 논리와 첨단의 기술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사람이라면 대체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들이다. 과거와 현재, 사람들이 반복해서 직면했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살핌으로써 인간이란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이런 취지와 의미로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