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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별 : 이선주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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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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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주 시인의 첫 시집 『니체의 별』은 시인이 세계와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발견하는 탈근대적 시선이 깃들어 있다. 커리우먼으로 유리천장을 뚫으며 치열하게 사는 동안 휴머니즘이라든가 인문주의적인 삶에 대한 자의식과는 무관하다가, 은퇴 이후 비로소 자신은 물론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마주하는 시인의 상상력은 자연의 경이로움, 생명과 일상의 아름다움, 중심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연민, 신적 존재에 대한 경배와 신앙고백, 그리스 신화와 서구사상을 바탕으로 한 지성의 탐구, 그리고 주체적인 존재로 나아가고자 하는 탈근대적 사유와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동안 냉혹한 자본문명의 규율로 작동하는 시스템에서 한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인간의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품격있게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게 시(詩)는 그동안 억눌리고, 억제된 감정을 드러내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데서 매우 적절한 수단이 되고 있어 고맙다.
이러한 그의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을 비롯한 사물 등 세계와 시적 자아의 개별성을 강조하면서도 통합적으로 바로 보는 점이다. 자연이 소외되기 십상인데 그의 시선은 자연과 인간의 등가를 동등하게 매기고자하는 균형감각이 돋보여 작품의 진정성을 드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강경호(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 작품론

평설

니체의 별의 시학

강대선
(시인)

1. 영성으로 꽃피는 시간
이선주 시인은 신앙인이다. 그것도 독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신앙은 믿는 일을 근간으로 한다. 그러면 이선주 시인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바로 신의 은총이다. 신의 은총이 인간에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사실을 시인은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시편을 들여다보면 인간이기에 겪어야 하는 죄와 고통과 고난이 여실히 드러난다. 하지만 시인은 인간이라는 사실에 절망하지 않는다. 신의 은총이 시인에게도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시인은 스스로 죄인의 자리에 내려놓음으로써 위선과 교만의 자리에 저항한다. 이러한 저항이 시를 꽃피운다. 믿음을 기반으로 한 저항이야말로 이선주 시인이 지닌 가장 아름다운 긍정 에너지이자 시를 밀고 나가는 힘이다.
시인은 「깨진 꽃」에서 “조각난 파편이 바닥에 널브러져 울고 있”다고 말한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날아든 돌멩이와 함께 흩어진 유리 조각들이 불면의 밤”을 선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디에서 무엇 때문에 내가 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에 다다르면 시인은 타인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을 돌아본다.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방종의 대가”였을까를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행해온 일들을 돌아본다. 이러한 자기반성은 “쇼윈도우 모델인 양 나르시즘에 빠졌던 날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을 깨뜨리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어쩌면 나를 사랑하는 나르시즘이 아니었는지 묻는다. 유리창이 깨지는 일은 마음이 깨지는 일이다. 이 깨진 유리창은 자아가 깨지는 다른 표현이다. 이 깨진 마음에 연고를 바르듯 ‘반창고’를 붙인다. 시인은 이러한 반성과 성찰의 행위를 통해 “귀를 자른 자화상”을 본다. 치열한 자기 응시. 이것이 시인이 추구하고 있는 시의 정신이다.

창밖에는
봄의 선율이 예수의 손길처럼 흐르는데

긴박한 고요 속
놀란 동공 점멸등처럼 껌벅거린다

툭 멈춰버린 심장박동,
핏기없는 얼굴
가시 같은 말들이 회오리 같이 파고든다

율법이 된 문장들이
상처로 파고드는 시간

창밖의 봄비는 예수의 손처럼
먼지를 씻어낸다

파릇파릇 살아나는 꽃처럼
바리새인의 문장을 순한 손으로 닦고 싶다

여명이 어둠을 밝히듯
한 줄기 빛으로 기도한다

사랑으로 살아내지 못한 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라며

가진 것 적어도
빵을 나누어 주시던 예수의 손

봄비가
율법에 갇힌
마른 가지마다 봄물을 적신다
- 「바리새인을 씻기는 봄비」 전문

시인은 비유와 묘사의 달인이다. “창밖에는/ 봄의 선율이 예수의 손길처럼 흐르는데”라는 표현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봄비를 봄의 선율로 치환하고 이 선율을 예수의 손길로 변환하는 일은 시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문장의 백미다. 시인의 마음에는 봄비가 예수의 손길처럼 따뜻한 은총으로 흐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인은 “툭, 멈춰버린 심장박동”을 느낀다. 시인이 자신을 ‘바리새인’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신의 은총이 멈춰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보다 율법을 좋아했던 바리새인을 향한 경고이기도 하다. “율법이 된 문장들이/ 상처로 파고”들기 때문이다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나 그런 바리새인에게도 예수의 은총이 흐른다는 사실에 시인은 전율한다. “율법이 된 문장들이/ 상처로 파고드는” 그 순간에도 봄비가 내리듯 예수의 은총이 흘러내린다. 그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여명이 어둠을 밝히듯/ 한 줄기 빛으로 기도한다” 시인의 그 기도가 바로 사랑이다. “사랑으로 살아내지 못한 것은/ 살아도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없으면 살아도 심장이 없는 것과 같다. 시인은 “율법에 갇힌/ 마른 가지마다 봄물을 적신다”는 표현을 통해 시인은 율법에 갇힌 심장 없는 사랑에게 깨우침을 준다. 대지를 적시는 봄비는 율법이 아니라 사랑이다. 사랑이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다.

2. 시인의 내면에 자리한 죽음과 불안 의식
시인의 죽음 의식은 단절이 아닌 삶으로 이어진다는 의미에서 재생과 부활을 의미한다. 죽음을 통한 내면의 붕괴, 불안 속에서 자아가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존재의 각성을 통해 저항하는 에너지가 된다. 죽음을 통한 존재의 갱신으로서의 죽음과 불안 의식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자아가 깨어나는 과정으로 읽힌다.

1
황금 들녘이
어둠으로 들어가면
바람도 길가에 나와 숨을 턴다
느닷없이 발을 헛디딘 것처럼
구례군 황전을 지나가다
황천으로 오독한 네비가 죽음 쪽으로 차를 몬다

2
검은 그림자
빽빽한 저승 사자가
팔 내밀어 외길을 움켜잡고 밀고 당긴다
빗줄기의 정령들이
혼란한 내 영혼을 흔드는 사이
가슴은 절벽에 가 닿는다

3
문득,
생生으로 가는 가로등이 나타난다
죽음의 늪에서 풀려나는 길목처럼
황천이 황전으로 돌아오는, 리셋
영혼은 다시
황금 들녘에서 초서로 물결치고
이 한 생,
가냘픈 코스모스처럼



다.
- 「한밤의 황전」 전문

시인의 의식을 지배하는 죽음 의식을 살펴보자. 시인은 구례군 황전을 지나가면서 “느닷없이 발을 헛디딘 것처럼/ 구례구 황전을 지나가다/ 황천으로 오독한 네비가 죽음 쪽으로 차를 모”는 경험을 한다. 우리도 가끔 뭔가에 씌인 듯이 빨려들어 가는 때가 있다. 이 상황에서 시인은 “빽빽한 저승사자”를 만난다. 이러한 빽빽한 불안 의식은 시인의 내면에 자리한 불안을 내포한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이 저승사자로 보이고 비까지 내린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시인은 혼란에 빠지고 가슴은 두려움으로 절벽에 가 닿는다. 위태위태한 상황이다. 낯선 길, 아무도 없고 적막한데 비까지 내린다.
이 암담한 상황에서 시인은 가로등을 만난다. 이 가로등은 “죽음의 늪에서 풀려나는 길목처럼/ 황천이 황전으로 돌아오는, 리셋”이다. 황전이 황천으로 황천이 황전으로 돌아오는 여정인 셈이다. 삶이 죽음으로 죽음이 다시 삶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은 시인은 다시 황전으로 리셋된다고 말한다. 결국 암담함이 지속되지 않는다. 절망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삶의 자리에서 시인의 영혼은 다시 희망으로 가득한 “황금 들녘에서 초서로 물결”친다. 시인은 안도하는 것에 만족하는 대신 자신을 돌아본다. 시인은 생이라는 것이 작은 오독으로도 이렇게 두려움에 떨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작은 바람에도 “가냘픈 코스모스처럼 흔/들/렸/다.”고 말하는 존재다. 시인은 안다. 인간의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이를 통해 존재의 불안을 묻는다.

3.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
시인에게 크로노스의 시간은 도구적이고 폭력적인 시간이자 억눌리고 매몰된 역사적 시간이다. 흐르는 시간, 양적 시간, 일정한 순서의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의 시간은 시간의 속박에 갇혀 있는 시인의 시간이다. 반면 시인이 꿈꾸는 카이로스의 시간은 질적 시간이자 그 순간은 영원이 응축되는 시간이다. 영감이 찾아오는 시간이자 각성과 변혁이 일어나는 시간인 질적인 시간이다. 이선주 시인은 이러한 시간을 통해 죽음과 불안에서 삶의 회복과 구원으로 자신을 변화시킨다.

카풀 시간 훌쩍 넘기고, 늦어서 미안하다고 연락을 한다

한 시간이나 남았다는 전언

이런, 한 시간이 접혔다

접힌 한 시간 동안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한다

접힌 시간은 여유로움과 사색의 시간

조급함을 밀어내고 훈기를 불어넣는 시간

도마 위에 올려진 물고기인 양 시간에 허덕이며 몸부림치던 순간을 생각한다

칼날에 잘려 토막나던 시간

접힌 시간은 상처를 싸매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

조각난 시간을 이어 스테인글라스가 되듯

이제, 희망의 노래가 되리

독수리 날개 치듯 비상하리

접힌 시간, 환하게 펼치며 빛나리
- 「접힌 시간에 관한 사유」 전문

시인에게 시간은 신이 부여한 은총이다. 시인은 신이 부여한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낀다. 카풀 시간에 늦었다고 연락을 한 시인에게 카풀하는 사람은 한 시간이나 남았다고 말한다. 한 시간의 여유를 시인은 “이런, 한 시간이 접혔다”로 표현한다. 무형이 시간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은 “동짓날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신 날 밤 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고 했던 황진이의 시적 감각과 닮았다. 접힌 시간이 주는 여유로움은 시인에게 훈기를 불어넣는 시간이다. 왜 훈기를 불어넣는가. 시인은 “도마 위에 올려진 물고기인 양 시간에 허덕이며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칼날에 잘려 토막나던 시간”이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이 시간에 몸부림치며 허덕여 왔다고 말한다. 이런 시간은 시인이 치열하게 자신을 던진 시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을 잃어버린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접힌 시간’은 “상처를 싸매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가 된다. 이 접힌 시간을 통해 시인은 “조각난 시간을 이어 스테인글라스가 되듯/ 이제, 희망의 노래가 되리”라고 말한다. “독수리 날개 치듯 비상하리/ 접힌 시간, 환하게 펼치며 찬란하게 빛나리”라고 말한다. 시인은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통해 독수리처럼 날개치며 날아오를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최고의 은총이자 최대의 적이다.

잠수한다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에메랄드의 시간 속으로
호흡이 가빠오고 동공이 확장되는
미증유의 시간

골든 트레빌리 두동가리돔 파랑비늘돔이 곁을 스쳐 지나간다

산호들이 이룩한 성城에 도착하면
가슴과 머리, 손과 발에서도 노랗고 파란 꽃들이 피어난다

저 무성한 시간의 군무
일사불란한 카드섹션처럼 반짝인다

외면했거나 닫아버린 촉각들이
절대의 시간처럼 일어선다

매 순간이 모여 노랗고 파랗고 붉은 산호성을 짓는다

순간을 무시하고 영원만을 위해 발버둥쳤던 나의 시간 위로
금빛 햇살이 아름다운 순간으로 부서진다

산호에 스며든 금빛 보화들이
줄지어 등불을 밝히면

나는 잃어버린 카이로스를 찾아
영원한 잠수를 꿈꾼다
- 「카이로스 속으로」 전문
시간은 시인이 천착하는 대상이다. 시인은 “한 번도 나와 마주한 적 없는 에메랄드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 그 시간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미증유의 시간”이다. 어떤 시간을 맞이하기에 시인은 ‘에메릴드’라는 표현을 썼을까. 시인은 시간을 산호에 빗댄다. 형형색색 아름다움을 뽐내는 산호들처럼 시간은 아름답게 물결친다. 시간이 주는 축복이다. 시인의 가슴과 머리, 손과 발에서 노랗고 파란 꽃들이 피어난다. 시인은 “저 무성한 시간의 군무”를 통해 인간이란 존재가 시간 속에서 아름답게 피었다가 졌다는 사실을 각인한다. 인간은 시간을 외면할 수 없다, 시간이 곧 인간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매 순간이 모여 노랗고 파랗고 붉은 산호성을 짓는다’를 통해 시간의 속성을 이야기한다. 시인이 보기에 시간은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아름다운 ‘에메랄드’의 시간도 ‘순간’이 낳은 것이다. 그러니 ‘순간은 시간을 낳은 어머니’라는 역설이 가능하다. “산호에 스며든 금빛 보화들이/ 줄지어 등불을 밝히”는 일도 순간이 모여서 이루어진 일이다. 시인은 잃어버린 순간의 시간을 찾아 ‘카이로스’의 시간을 꿈꾼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양적, 연속적인 시간인 크로노스의 시간과 다르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깨달음의 시간이자 변혁의 시간이다. 시인이 꿈꾸는 순간은 바로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한다. 시를 쓰는 일도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4. 시 속에 나타난 어머니
시인이 삶과 죽음, 그리움의 구도로 빚어낸 대상이 어머니다. 어머니의 생애와 영혼을 시간의 초월, 즉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되살리는 존재의 회고이기 때문이다. 침묵하는 어머니는 죽음 이후의 언어이자 끝없는 그리움의 거리다. 시인은 거울에 반사되는 어머니를 통해 삶과 죽음이 서로를 바라보는 있는 상황을 그리고 이를 통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의 접합과 동시에 존재가 되살아나는 과정을 생의 일부로 흡수하고 있다.

바람에 펄럭이는 저고리 은빛 물결 같은 산 능선을 지나면 산사는 고요하다 진분홍 저고리에 연지곤지 찍고 수줍어하던 지순한 신부였을, 꽃 같던 젊음의 흔적 남김 없이 지우고 가슴속 상처는 은은한 억새꽃으로 숙성시킨 미소를 품고 있다

미명에 들판에 나가 땀과 눈물 쏟아 내던 날들, 자식들 뒷바라지에 한 몸 비워내고 따뜻한 구들장 가슴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 뒤뜰 감나무 그늘에 등 돌리고 앉아 입에 문 담배 연기 허공으로 피워 올린 그 속앓이 이제야 더듬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소풍 가셨는지 돌아오는 길은 구만리장천

양귀비꽃 수레국화 라일락으로 오셨나요 분홍 노랑 보라 만장 같은 섶에 가려진 얼굴 그 얼굴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고 싶은데, 철 따라 피고 지는 당신의 전 생애가 비밀 수장고에서 나와 훨훨 날아갑니다
- 「산사에서 어머니를 더듬다」 전문

시인에게 어머니는 어떤 존재였을까. 시편 곳곳마다 어머니가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어머니는 신의 은총을 대변한다. ‘산사’에 대한 묘사를 살펴보자. “바람에 펄럭이는 저고리 은빛 물결 같은 산 능선을 지나 만나는 고즈넉한 산사는 고요하다”는 표현은 심상과 풍경이 만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산사는 “진분홍 저고리에 연지곤지 찍고 수줍어하던 지순한 신부였을” 것 같기도 하고 “꽃 같던 젊음의 흔적 남김 없이 지우고 가슴속 상처는 은은한 억새꽃으로 숙성시킨 미소를 품고 있”을 것도 같은 모습이다. 묘사만으로 산사가 간직한 고즈넉함과 깊음, 그리고 시인의 설렘을 표현하고 있다. 이 산사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본다. “자식들 뒷바라지에 한 몸 비워내고 따뜻한 구들장 가슴으로 기도하시던 어머니.”를 떠올리는 것이지만, 산사가 곧 어머니로 치환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뒤뜰 감나무 그늘에 등 돌리고 앉아 입에 문 담배 연기 허공으로 피워 올린 그 속앓이 이제야 더듬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디로 소풍 가셨는지 돌아오는 길은 구만리 장천”이라고 말함으로써 ‘입에 문 담배 연기 허공으로 피워 올린 그 속앓이’를 통해 어머니의 한평생을 되짚어보는 것이다. 시인은 어머니를 찾는다. 양귀비꽃, 수레국화, 라일락도 지상으로 오신 어머니로 보인다. 시인의 눈에는 모두가 어머니다. 그 얼굴 다시 보고 싶어 거울 앞에 서면 어머니를 닮았다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고 그 얼굴에서 흐르는 어머니의 눈물이 보인다. 시인의 ‘비밀 수장고’에 간직한 어머니가 훨훨 날아다니는 산사, 애틋하면서도 간절한 시인의 그리움이 빼어난 감각으로 표현되고 있다.

고향 집 뜨락은 자궁처럼 따뜻하고 외로운 발걸음으로 거닐면 나를 다독이는 아카시 나무 하굣길, 마을 어귀에까지 향기로 마중 나와 반겼지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마법에 걸린 듯 아득한 시간이 홍조를 머금은 저녁, 하루를 노동을 마친 등 굽은 호미 같은 그녀가 보인다 헤진 발걸음 재촉하며 마당을 들어서던 어머니. 하얀 꽃차례는 해 거르지 않고 계절을 기억하는데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향기에 젖어 뜨락을 서성인다.

하얀 나비 떼들이 파닥이는 아카시 나무 곁을 어머니가 꿈결처럼 지나가신다
- 「아카시 해후」 전문

이선주 시인은 “고향 집 뜨락은 자궁처럼 따뜻하고 외로운 발걸음으로 거닐면 나를 다독이는 아카시 나무”라고 어머니를 아카시 나무로 치환하면서 어머니의 그리움을 한층 격을 높여 표현한다. 하굣길, 마을 어귀까지 향기로 마중 나오는 ‘아카시 나무’나 자식을 염려하는 어머니 마음이나 다 같은 마음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마법에 걸린 듯 아득한 시간이 홍조를 머금은 저녁, 하루의 노동을 마친 등 굽은 호미 같은 그녀가 보인다.”를 통해 어머니를 그려낸다. ‘등 굽은 호미’를 통해 노동에 지쳐 있는 어머니를 묘사한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등 굽은 허리”가 시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고향의 향기는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등 굽은 호미처럼 일하시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겹쳐서 드러난다. 어머니는 인간을 위해 일하는 신의 손처럼 한 번도 쉬지 않고 노동하는 사랑의 존재이다. 시인에게는 이런 아린 기억이 종교적인 은총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
시인은 「먼 길」라는 시편에서도 어머니를 “저승길 넘어가는 서산마루에 만장이 휘날린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슬픔을 드러내는데 이 슬픔의 감정을 “매듭짓지 못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천국으로 떠나시는 어머니를 “원삼 족두리 곱게 입혀 위무했건만” 어머니는 막내딸인 시인 때문에 가지 못하고 이 지상에 머뭇거린다는 것이다. 딸이 염려되어 천국으로 가는 길조차 가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통해 사랑과 그리움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5. 성찰을 통해 다다른 시적 깊이
자기 성철과 존재의 자각으로 통해 죽음와 불안, 부재와 존재를 그려낸다. 성찰은 죽음을 바라보면서 동시에 죽음과 삶이 거울처럼 비치는 상태다. 성찰은 문이다. 외부세계의 문이 아니라 내 안의 문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각성이 일어나는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진정한 자기 성찰을 시인은 울음으로 표현한다. 문이 있어 내 안의 울음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울고 있는 문
언젠가 보았지 퉁퉁 부운 눈시울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
알몸으로 달빛을 받고 있는 문
나도 모르게 들어가고 싶은 그 문
이제야 알겠네
왜 문들이 하나 같이 울고 있는지
기다리는 문은 얼마쯤 슬픔이 화인처럼 찍혀 있어
눈물이 그렁거리지
고요와 적막을 기다림으로 바꾸고 있는 문
나는 저만치 서서
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날들을 생각하네
슬픔에 출렁이는 문 앞에서
한없이 젖고 마는 나는
문 앞에서 돌아서는 문
그 사람 어깨에 달빛만 걸쳐놓고 돌아서는 문
- 「문門」 전문

시인은 어떤 문을 열고 나가려는 것일까. 시인의 문은 울고 있다. “언젠가 보았지 퉁퉁 부은 눈시울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을 통해 문은 인격화된다. 아니 오히려 인격체보다 더 놓은 곳에 있다. 그 문을 알몸으로 달빛을 받는 문이고 시인이 나도 모르게 들어가고 싶은 문이다. 그런데 그 문들이 하나 같이 울고 있다고 시인은 말한다. 왜 울고 있을까. 기다림 때문이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일로 문은 울고 있다. 이는 신의 기다림과도 통한다. 인간이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지만 돌아오지 않는 인간들로 인해 신의 눈은 항상 부어 있다. “슬픔에 출렁이는 문 앞에서/ 한없이 젖고 마는 나는/ 문 앞에서 돌아서는 문”이었다. 회개의 순간에 그의 어깨에 달빛만 걸쳐놓고 돌아서는 문이었다. 진정한 회개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시인의 고백이 문의 초상이다. 문은 시인을 기다린다. 그러나 시인은 아직 문 앞에서 들어가지 못하고 문이 되어 망설인다.

그 문을 넘기 위해 시인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다음의 시편들은 시인이 지향하는 곳을 가리키고 있다.

아침부터 햇살이 창문에 다리를 길게 뻗는다
염천에 땀방울 등줄기 타고 미끄러지는 시간,
늦가을 홍시를 꿈꾼다

젊은 날
땡감처럼 허공의 나뭇가지에 아둥바둥 매달려
함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떫은 성미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홍시가 되기 위해서는 땡볕과 폭풍우를 견뎌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오래 견뎌온 나는 홍시를 꿈꾼다
그 힘으로 온몸에 단맛이 스미고
가을 붉게 숙성된 풍경을 그리워한다
- 「홍시를 꿈꾸며」 전문

이 시는 이선주 시인이 추구하는 방향의 실마리를 알려준다. 먼저, 시인의 묘사는 새롭고 인상적이다. “햇살이 창문에 다리를 길게 뻗는다”는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을 부여한다. 뜨거운 여름, 햇볕이 쨍쨍거리는 염천의 시간, 땀을 흘리면서도 시인이 꿈꾸는 것은 ‘홍시’다. 홍시는 시인의 지향점이자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하는 대상이다. 시인은 젊은 날의 자신을 ‘땡감’으로 상징화시킨다. 그리고 ‘땡볕’과 ‘폭풍우’라는 시련의 시간을 극복해야 비로소 단맛을 지닌 ‘홍시’로 성숙할 수 있다고 노래한다. 시인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를 짧고 간명하게 드러냈다.

진흙탕만 보이던 시간이었어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와 울던 사랑

잃어버린 길 위로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 악몽을 꾸었지

귀가 멀고 섬유화된 폐처럼 어둠에 갇혔지

팔도 다리도 없이 진흙탕을 뒹구는 두려움

눈도 귀도 혀도 없이 영혼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시간 앞에 암담으로 울었지

흑암 속에서 별이 보였어

단맛을 잃지 않고 겨울을 건너온 봄동처럼

천둥과 번개의 음표로 청중의 가슴을 아름답게 때리던 베토벤처럼

팔도 다리도 없지만 희망을 전해주는 닉 부이치치처럼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헬렌켈러처럼

빛나는 초인들의 별

진흙탕에서 피어나는 꽃

나는 눈에 쌓인 어둠을 털고 니체의 별을 바라보았지
- 「니체의 별」 전문

시인의 젊은 날의 고뇌를 엿볼 수 있는 시어가 ‘진흙탕’이다. “눈보라 속에서 길을 잃고 제자리로 돌아와 울던 사랑”도 진흙탕 같고 “잃어버린 길 위로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는 악몽을 꾸”던 시간도 진흙탕 같고 “귀가 멀고 섬유화된 폐처럼” 어둠에 갇혀 있는 시간도 진흙탕 같다. 시인은 이 시간에 ‘암담’으로 운다. 암담은 어둠보다도 깊은 절망이다.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우울과 그늘을 포함하는 말이다. 시인은 암담의 시간과 함께 ‘흑암’을 가져온다. 흑암은 단순히 물리적 어둠을 넘어 절망과 무지, 고통과 죽음, 영혼의 암흑은 상징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바닥의 바닥이다. 시인의 자신을 얼마나 치열하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이 끝없는 어둠의 절망 속에서 시인은 ‘별’을 보았다고 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채소인 ‘봄동’처럼 빛나는 별의 이미지는 “천둥과 번개의 음표로 청중의 가슴을 아름답게 때리던 베토벤” 같고, “팔도 다리도 없지만 희망을 전해주는 닉 부이치치” 같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헬렌 켈러처럼” 빛나는 사람들이다. 절망의 상황에 놓여 있지만 절망하지 않는 사람들을 ‘빛나는 별’이라고 표현하며 그들을 이정표로 삼아 시인도 ‘진흙탕’에서 올라오는 ‘꽃’이 되고자 한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의 “눈에 쌓인 어둠”을 털어낸다고 한다. 어둠을 털어 내고 니체가 말한 ‘초인’의 별을 본다. 이 ‘초인’이 시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긍극적인 가치이며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된다. 빛나는 영혼을 가진 시인의 정신이란 바로 초인이 아니던가. 이처럼 시인은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통해 새로운 별을 바라본다. 바로 ‘초인’이다.

억새는 저항한다

석양이 몰고 오는 붉은 어스름에
강물에 눈 부시는 윤슬에
비튼 난장으로 후리는 바람에

저항한다

흔들리는 일은 온몸으로 저항하는 일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온몸을 흔든다

억새는 은발의 레지스탕스

흔들리며
씨앗을 심는다
- 「은발의 레지스탕스」 전문

시인은 초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진흙탕’의 세계에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 “석양이 몰고 오는 붉은 어스름에/ 강물에 눈 부시는 윤슬에/ 비튼 난장으로 후리는 바람에” 저항하며 흔들리는 억새처럼 시인도 온몸으로 저항한다. “흔들리는 일은 저항하는 일/ 쓰러지지 않기 위해/ 온몸을 흔드”는 억새는 시인의 표상이다. 이 억새가 “은빛 레지스탕스”로 비약하는 지점이 시의 압권이다. 억새가 저항의 상징인 레지스탕스로 새롭게 태어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신의 가슴에 씨앗, 바로 저항을 심는다. 시인이 생각하기에 이렇게 불의로 가득한 세상을 의미하는 ‘진흙탕’에 저항하는 자야말로 사랑으로 진정한 초인의 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6. 참회와 은총의 미학
참회는 인간이 자기 안에 있는 어둠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은총을 발견하는 영성을 지닌다. 참회는 무릎을 꿇는 태도이며 자신의 상처를 심미적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참회는 영혼의 정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은총이 스며드는 시간을 맞이한다. 이 시간 또한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참회는 직선의 길, 즉 크로노스가 아니라 스스로 돌아보는 길,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시인은 참회를 거쳐 은총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여정으로 하고 있다.

철길은 녹슨 평행선
침목 사이에 풀꽃이 피었다가 진다
기차의 경적은 철로처럼 끊겨 있다
소나무에 옷자락 스치며 인연의 에움길을 걷는다
그대는 교집합으로 똘똘 뭉쳐있는 둥근 공이었나
퍼즐처럼 제 자리를 찾아내는 기억들
바닥을 통통 튀며 구른다
빗질한 머리에 동백기름 바른 할머니처럼
가지런해진 마음이 수평을 이룬다
녹슬어도 또 만날 수 있겠지
불투명한 미래는 보증할 수 없는 담보물
기분을 가불하지 않겠다
달빛 창가에 말러의 4번 교향곡이 부팅되면
다윗의 참회의 눈물,
미제레레로 화답하는 고요한 파문
머물다 간 시간이 홀로 접점이다
그대와 나는 철길처럼 흐르는 평행선
은총으로 흐르는 길
- 「길은 은총으로 흐르고」 전문

철길은 녹슬어 있다. 다시 말해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선이다. 그래서 침목 사이에 풀꽃이 피었다가 진다. 한때는 기차가 지나가면서 융성했을 자리는 녹이 슬어 있다. 시인은 이 상황을 “기차의 경적은 철로처럼 끊겨 있다”로 표현할 수 있는 시인이다. 경적도 철로도 끊어진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이 끊어진 길과 대비되는 인연의 길을 생각한다. 그래서 “인연의 에움길”이 힘을 얻는다. 인연의 길에서 만난 “그대는 교집합으로 똘똘 뭉쳐있는 둥근 공이었다/ 퍼즐처럼 제 자리를 찾아내는 기억들/ 바닥을 통통 튀며 구른다”를 통해 그대의 의미를 ‘교집합’으로 표현한다. 교집합은 겹침을 의미한다. 이곳의 시간과 저곳의 시간, 이곳의 장소와 저곳의 장소에서 그대와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철길처럼 인연이 끊어져 있지만 이제 시인은 절망하지 않는다. “빗질한 머리에 동백기름 바른 할머니처럼/ 가지런해진 마음이 수평을 이룬다”를 통해 시인의 마음은 끊어진 철길과는 다른 또다른 수평을 이룬 마음의 철길이다. 녹이 스는 일로 절망하지 않고 “녹슬어도 또 만날 수 있겠지”라고 말함으로써 긍정의 자세로 나아가는 철길이다. 시인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불투명한 미래는 보증할 수 없는 담보물”이다. 다시 말해 미래는 알 수 없다. “달빛 창가에 말러의 4번 교향곡이 부팅되면/ 다윗의 참회의 눈물,/ 미제레레로 화답하는 고요한 파문” 때문이다. 미제레레Miserere는 라틴어로 ‘자비를 베푸소서,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말이다. 이 말속에 시인이 말하고 싶은 바가 들어 있다. 말러의 4번 교향곡Symphony No. 4 in G Major은 대자연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담은 천국의 노래라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다윗의 참회의 눈물이 함께 교집합으로 들어와 있다. 결국 시인은 이러한 예를 통해 우리는 죽음으로 만나지만 죽음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철길처럼 흐르는 평행선”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죄인인 인간을 향한 자비와 죽음 이후 천국이 기다리고 있는, 그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참회로 거듭나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한다. 그 길이 “은총으로 흐르는 길”이다. 삶이 모두 은총이라는 의식, 사랑이라는 의식이 시인의 하루를 여는 이유가 된다.

모서리 뒤집고 지상을 때린다

양철지붕 용마루와 치미, 골, 역치로도

한여름 홍역 앓고 난 풋감 위에도

바람의 무등 타고 계절을 건너가는 아름드리 참나무도 때린다

깊게 뿌리 내린 나의 기억과 한 겹이 더 늘어난 나이테와

천 년을 서 있는 바위의 마음을 때린다

회초리는 수억 년 전부터 회초리

나의 후회와 회한과 어리석음을 때리는

소나기는 회초리

회초리에 맞아

비 그친 뒤

맑게 갠 나의 영혼
- 「소나기」 전문

시인이 말하는 참회는 무엇을 의미할까. 시인에게 소나기는 회초리다. 지상을 때리는 회초리다. “양철지붕 용마루와 치미, 골, 역치로도/ 한여름 홍역 앓고 난 풋감 위에도/ 바람의 무등 타고 계절을 건너가는 아름드리 참나무도 때”리는 회초리다. “깊게 뿌리 내린 나의 기억과 한 겹이 더 늘어난 나이테와/ 천년을 서 있는 바위의 마음을 때리”는 회초리다. 이 회초리가 “나의 후회와 회한과 어리석음”을 때린다. 자신을 때리는 회초리처럼 자신의 잘못을 때리는 회초리. 참회는 아픈 것이다. 양심의 회초리로 후회와 회한과 어리석음의 시간을 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간이 없으면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없다. 시인의 영혼은 참회의 회초리에 맞아 맑은 영혼으로 거듭난다.

지금까지 이선주 시인의 시를 종교적인 관점에서 영성과 자기 성찰, 기도, 어머니, 참회 등의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았으나 이 모든 것을 시에 녹여내는 것은 시인의 시적 능력이다. 시인은 깨어진 시간을 잇는 장인이다. 시적 표현의 뛰어남과 비유의 참신함을 갖춘 시인의 앞으로의 시가 더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인은 자신의 자리를 ‘바리새인’의 자리에 둠으로써 사랑을 잃어버린 ‘진흙탕’과 같은 세상에 ‘저항’한다. 이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시의 정신이다. 이 저항을 통해 다다르고자 하는 초인은 세상의 더러움과 악함에 물들어버리는 순응이 아니라 저항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저항의 등불이며 참회이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모든 것이 신의 은총이자 사랑이라고 말한다. 시인이 사랑하는 이유도 신의 은총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사랑이야말로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 저항하는 무기다. 시인의 시가 뛰어난 점은 이러한 특정 목적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가장 인간적인 고뇌와 방황을 품고 있으면서도 비유와 상징을 통해 빼어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바리새인과 진흙탕, 초인, 크로노스의 시간과 카이로스의 시간, 어머니, 홍시, 등의 시어뿐만 아니라 음악과 미술, 철학과 인문학적인 요소를 끌고 와 다양한 시적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이선주 시인의 시 세계는 크로노스의 시간, 즉 흘러가며 소멸하는 일상의 시간 속에서 벗어나 카이로스의 시간, 질적 변화와 각성이 일어나는 순간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접힌 시간에 관한 사유」와 「카이로스 속으로」에서 시인은 상처와 불안을 직시하며 이를 통해 ‘결정적 순간’을 맞는다. 이 시간은 절망을 전복하고 내면의 리듬을 회복하는 구원의 통로이다. 시인은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견디지 않고, 그 속에서 신의 은총과 인간의 성찰이 만나는 찰나를 포착한다. 카이로스의 시간은 그에게 참회와 부활, 저항과 은총이 교차하는 시적 구원의 순간이다. 이선주 시인의 『니체의 별』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면서 앞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의 확장과 영성으로 빛나는 시의 큰 걸음을 고대한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가드너의 정류장

아침햇살이 반백의 머리에 은빛 왕관 씌우고
푸른 바람에 입맞춤하는 봄의 정원

가녀린 줄기, 보랏빛 구슬 흔들리는 버들 마편초
바람에 분홍 깃털 하늘하늘 춤추는 깃털동자
은빛 대롱에 선명한 진분홍 마음 내보이는 우단동자
붉고 흰 화동 앞세우고 오종종 봄길을 걸어오는 채송화
어머니 은은한 향기 그리운 천리향 금목서

때가 되면 찾아와 웃음꽃 한 소쿠리 담기는 아이들

크리스티나* 유혹에 가드너의 심장이 쿵쿵거린다
파랑새도 가드너의 가슴에 날개를 달아준다

어둠의 전언 밀려오면
노을을 머리에 이고 귀갓길 서두르는 황금빛 가드너


퀸오브스웨덴이라 불리는 영국 장미.
홍시를 꿈꾸며

아침부터 햇살이 창문에 다리를 길게 뻗는다
염천에 땀방울 등줄기 타고 미끄러지는 시간,
늦가을 홍시를 꿈꾼다

젊은 날
땡감처럼 허공의 나뭇가지에 아둥바둥 매달려
함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한 떫은 성미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나는 안다
홍시가 되기 위해서는 땡볕과 폭풍우를 견뎌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오래 견뎌온 나는 홍시를 꿈꾼다
그 힘으로 온몸에 단맛이 스미고
가을 붉게 숙성된 풍경을 그리워한다
접힌 시간에 관한 사유

카풀 시간 훌쩍 넘기고, 늦어서 미안하다고 연락을 한다

한 시간이나 남았다는 메아리

이런, 한 시간이 접혔다

접힌 한 시간 동안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만끽한다

접힌 시간은 여유로움과 사색의 시간

조급함을 밀어내고 훈기를 불어넣는 시간

도마 위에 올려진 물고기인양 시간에 허덕이며 몸부림치던 순간을 생각한다

칼날에 잘려 토막나던 시간

접힌 시간은 상처를 싸매고 다시 일어서는 기회

조각난 시간을 이어 스테인글라스가 되듯

이제, 희망의 노래가 되리

독수리 날개 치듯 비상하리

접힌 시간, 환하게 펼치며 빛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