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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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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전정판 머리말
2007년 정책학을 발간한 후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간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신 교수님들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전정판을 낸 이유는 초판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함이다. 전정판을 탈고한 시점에서 초판의 부족함이 얼마나 해소되었는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 이유는 아마도 필자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비록 완전하지 않지만, 전정판은 다음과 같은 취지에서 집필되었다.
첫째, 라스웰을 비롯한 초창기 정책학자들의 고민을 깊이 있게 다뤄 어떤 목적으로 정책학이 독립된 분과학문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다뤘다. 라스웰의 정책학은 ‘극대화 공리’와 ‘인간 존엄성 원리’를 기본으로 ‘발전적 구성’을 유추해 내기 위함이다. 라스웰의 ‘발전적 구성’은 ‘사고의 특정 유형’으로 한 시기의 사회적 상황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 즉 ‘가상적 모형’이다.
라스웰의 정책학은 실증주의자들이 다루는 인과관계의 재현성을 감안한 합리성의 추구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사회적 가치의 조화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다. 하지만 오늘날 정책학은 지나칠 만큼 전자에 의존해 인간을 정형화된 개체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을 하버마스(Jurgen Habermas)는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고 했다. 초창기 정책학자들의 고민은 오늘날 우리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으며, 그들이 권하고 있듯이, 정책학은 다학제 간의 다중 접근 방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전정판은 라스웰을 비롯한 초창기 정책학자들의 정책운동에 담긴 취지를 명확히 전달하는 것은 물론, 정책학의 다중 접근 방법을 소개해 기존의 부족함을 메우고 있다.
둘째,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지성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정책이 인간의 존엄성을 충실히 실현시켜 민주사회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면, 단지 ‘도구적 합리성’만을 가지고 정책 과정을 일률적으로 다루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찍이 이스턴(David Easton)은 ‘후기 행태주의의 도래’와 정책연구를 연계해 정책을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으로 보았다. 카플란(Abraham Kaplan)은 정책학을 ‘체험적(heuristic)’ 접근을 통해 완성된다고 보며, 이러한 입장에서 과학이란 경험에 근거해 스스로를 수정해 가는 실질적인 것으로 본다. 라스웰 역시 정책분석가들은 더 나은 정책을 만들 수 있는 ‘통찰력’을 키워야 하며, 이것은 단순히 무생물체의 미래 상태를 예측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했다.
후기 실증주의 관점에서 ‘사회이론’은 규범적으로 가치를 다룰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사회적 맥락을 달리하는 것으로 보며, 해석학적 접근 방법, 비판이론, 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등이 있다. 이들의 관점에서 파생된 정책분석 접근 방법은 상대주의 접근 방법, 비판 이론적 접근 방법, 포렌식스 접근 방법, 참여적 접근 방법, 논변적 접근 방법이 있으며, 이들은 분석 중심적 접근 방법, 신실증주의적 접근 방법과 같은 실증주의적 접근 방법과 구별된다. 정책연구의 다채로운 접근 방법은, 어떤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모두 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지성들이 고민한 결과이며, 상호 배타적이기보다 상호 보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셋째, 정책은 국가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국가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홉스, 로크, 루소 등으로 이어지는 ‘왕권신수설’로부터 ‘사회계약설’을 다루는 방법이 있으나, 이러한 논의는 국가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너무 현학적이고,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취급치 않았다. 대신 국가 형성의 하향식 상향식 접근법을 사용해 국가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어 무엇을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국가주의, 다원주의, 집단이론, 엘리트이론, 마르크시즘, 조합주의 등과 같은 ‘국가와 사회의 관계’에서 다채롭게 파생되는 관점들의 기원과 가정은 물론 그들의 논리까지를 다루어 이해를 돕고자 했다.
넷째, 20세기의 가장 큰 화두는 민주주의와 합리주의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지만 합리주의는 객관적 관점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 모든 것을 획일화하기 때문에 두 개념은 양립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적 사회에서 관료제의 획일화된 통제 속에서 살고 있다. 결국 우리는 논리적으로 모순된 체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합리주의를 결합해 우리시대에 걸 맞는 ‘합리적 민주주의’를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참여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 담론적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으로 동의보다는 합의에 의한 시민통제를 다룬다.
혹자는 정책학에서 왜 민주주의를 다루느냐고 의아해 하지만 필자는 민주주의야말로 정책학의 기본 원리이며 목표이기 때문에 모든 정책 과정은 그 원리를 감안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다수결의 원칙은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원리로 취급되었으나 이로 말미암아 파생되는 다수의 횡포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편을 나눠 구조적으로 영속시키는 경향을 보인다. 보수와 진보가 그렇듯이 그들의 정치적 주장은 늘 평행선을 그리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기 어렵다. 그들은 시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그런 적 없고 다만 당리당략에 몰입할 뿐이다. 정치는 사회 문제 해결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아렌트(Hannah Arendt)는 말했다.
1990년대 이후,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담론적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갈등을 해소시킬 수 있는 대안으로 자리잡아 오늘에 이른다. 많은 학자들이 ‘숙의민주주의’와 ‘담론적 민주주의’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으며, 필자도 이것을 엄격히 구분하기보다 맥락에 따라 두 개념을 자유롭게 사용했다. 실제로 ‘숙의민주주의’, ‘민주적 숙의’는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행위이론에 입각한 비판이론가들의 사상을 떠올리게 하고, 담론적 민주주의는 후기 구조주의적 입장에서 푸코가 다룬 ‘담론의 형성’, ‘담론적 실천’을 생각나게 한다.
만약 숙의민주주의와 담론적 민주주의를 구별한다면 ‘숙의’는 담론적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의사소통 방법이며, ‘민주적 숙의’가 사회에 정착해 ‘숙의 문화’를 만들어내 보편화되면 사회적 제도로 자리잡게 되어 담론적 민주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담론적 민주주의는 그 시대의 지배적 사상이 되어 “사람들의 사고하는 방법을 조절하는 것(푸코식 담론)”이 되며, 하버마스 식으로 말하면 사회의 모든 주체들이 완전히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실현할 수 있는 ‘생활세계’가 된다. 전정판에서는 참여민주주의, 숙의민주주의, 담론적 민주주의를 대의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사회적 ‘동의’보다는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기제로 소개하였다. 이러한 의사소통 방법은 사회적으로 첨예하게 대립된 갈등을 해소하기에 적합하며, 근래 들어, 우리 정부도 ‘공론화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전정판은 기존의 틀(실증주의)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들을 조화시킨 가운데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1990년대 이후 많은 정책분석가들이 ‘논변 시대의 도래’와 함께 그것을 실천하는 방법들에 대해 말한다. 정책학의 ‘논변적 접근 방법’은 기존의 실증주의적 발상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다채로운 ‘프레임’을 받아들여 토론을 통해 논쟁의 질을 높이는 참여적 접근 방법이다. 논변적 접근을 통한 정책분석 방법은 다양하나, 여기서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전정판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다.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먼저 동료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학위논문에 여념 없는 박사과정의 장다흰, 강태경, 정혜윤, 이경란 선생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늘 곁에서 도움을 준 제자교수 김영재 박사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행정학과 교재의 출판에 평생을 바치신 대영문화사 임춘환 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진정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일하시는 대영문화사 실무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더욱 번창하길 바란다.
우리 가족의 정신적 지주이신 아버지와 기억 속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조금이라도 이룬 것이 있다면 모두 그분들의 몫이다. 가족 뒷바라지에 여념 없는 처 신현숙, 사랑스런 혜승과 제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들의 배려와 희생이 없었다면, 모든 것이 가능치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