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꽃 같은 인생에 벼락이 내리치는 순간: 고난에 대하여 첫 벼슬의 다짐 - 청렴은 능력이다 승승장구하는 와중에 문득 찾아온 깨달음 작은 자리에 충실하지 못하면 큰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 변치 않는 의리는 사람을 살게 한다 비방 받는 인생, 이것이 내 운명인가 세상에 나설 수 없는 이름이 되어 보니 유배지로 떠나는 마음
제2부 삶의 본질에 다가가기 - 성찰의 힘 지켜야 할 것 중 가장 큰 것은 나 자신을 지키는 것 무지개를 쫓아 달려가도 멀어져만 가고 벼락은 나무를 가리지 않고, 재앙은 선악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는 왜 화려함보다 소박함에 끌리는가 고향 산천을 그림으로 그리면 병이 낫는다지 권력과 돈을 잃고 슬퍼하는 자, 밤 한 톨을 잃고 우는 어린아이와 같다 은혜를 저버리는 자를 멀리하라 - 첫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 비밀을 만들지 말아라 - 둘째 아들에게 보낸 편지 입장이 다른 사람과 우정을 유지하는 법 은혜를 갚는 가장 좋은 방법
제3부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 - 진정한 자유로움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노년에 하는 공부의 의미 도덕적 인간은 어떻게 가능한가 늙은 아버지의 자부심과 희망 나는 늙어도 유쾌한 선비라네 내가 떠나도 너희들이 있다 지적인 자극을 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할 것인가 생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기록하기
제4부 무엇을 남길 것인가 - 헌신과 감사 죽은 자식이 산 자식의 두 배 며느리의 무덤을 찾아간 날 어머니 같았던 형수에 대한 추억 또 다른 어머니의 헌신을 기억하며 다산이 평생 지키고자 한 네 가지 덕목 경계를 넘지 않은 절제 깨달음은 바른말에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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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다산 : 품격 있는 어른을 위한 인생 수업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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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57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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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57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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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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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57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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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마흔, 촉망받던 관료에서 하루아침에 유배지로 내몰린 다산 그는 어떻게 18년간 유배지에서 500권의 저술을 남길 수 있었을까
절망의 한가운데서도 끝내 자신의 길을 잃지 않은 단단한 내면의 힘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조선 후기의 사상가 다산은 한국 지성사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한 시대의 빼어난 정치가이자 사상가였고, 실학을 완성한 개혁가이자 백성을 위한 행정가였다. 젊은 다산은 벼슬길에 나가자마자 정조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아 승승장구했다. 그는 정조가 추진한 개혁정치의 핵심 실무자로서, 조선의 제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국가 운영의 비전을 제시했다. 젊은 다산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명예로운 날은 길지 않았다. 정조와 다산의 개혁정치가 진전될수록 기득권 세력의 공격도 드세졌다. 불운하게도 정조는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게 된다. 그와 동시에 정조와 다산이 추진했던 개혁은 좌초되었고, 다산은 당파 싸움의 희생양이 되어 유배를 떠나게 된다. 마흔을 앞둔 나이에 다산은 모든 것을 잃는다. 벼슬도, 명예도, 학문적 기반도. 꽃길만 펼쳐지던 인생길에서 벼락과도 같은 폭풍우를 만난 것이다.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 뒤 18년 동안이나 억울한 유배 생활이 이어졌다. 《마흔에 읽는 다산》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다산이 느닷없이 절망의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장면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저자는 이 거대한 인물을 단지 대학자의 위치에서 바라보지 않는다. 좌절과 실패를 견디며 자신만의 사유를 완성한 인간 다산의 생애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다.
저자는 마흔 즈음 겪은 인생의 고비에서 다산을 다시 만났다고 고백한다. 다산 사상을 오랫동안 탐구해온 연구자로서 다산의 생애와 학문과 사상에 대해서야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생의 질문에 맞닥뜨리자 비로소 다산의 ‘삶’이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저자는 다산의 글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다산은 말없이 일러주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고난을 견디는 법에 대하여, 품격 있는 어른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단단한 삶에 대하여. 그는 어디에서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다만, 자기 생의 전부를 증언으로 남겼을 뿐이다. 그 증언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뒤로 나는 날마다 다산을 만났다. 그의 문장은 어느덧 내 안의 어둠을 비추는 등불이 되었다.”_〈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은 실존적인 질문 앞에서 저자가 다산과 나눈 대화의 기록인 셈이다. 저자는 다산이 직접 쓴 글을 통해 당시의 상황과 심경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다산은 방대한 저서 외에도 시와 산문, 편지, 묘지명 등 수많은 글을 남겼다. 저자는 다산이 남긴 수많은 글 가운데 저자 자신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은, 통찰력과 지혜가 빛나는 글을 가려 뽑아 보여준다. 덕분에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마치 다산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된다. 절망의 한가운데서 오롯이 자신을 지켜낸 인간 정약용의 내면이 손에 잡히듯 다가온다. 선을 실천했으나 비방이 돌아올 때, 유배지에서 분노와 회한에 사로잡힐 때 다산은 절망감을 솔직하게 글로 썼다.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어릴 때 뛰어놀던 강가에 선 마음, 나이 들어 치아가 빠지고 머리숱이 줄어들어도 흔쾌히 받아들이겠다는 유쾌한 내용까지, 독자는 다산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공감하고 위로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실패, 불안, 관계의 문제로 흔들리는 독자에게 다산이 삶으로 보여준 생에 대한 긍정성
18년간 유배지에서 다산은 500권의 저술을 남기고, 제자를 가르치고, 농사를 짓고, 학문을 다시 세운다. 놀랍게도 그 절망의 시기야말로 다산의 사유가 깊어지고 철학이 완성된 시간이었다. 그는 삶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백성의 현실을 체감했고, 학문이란 고담준론을 넘어 현실을 위한 것이어야 함을 깨닫는다. 그렇게 탄생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법과 사회의 질서를 새롭게 설계한 ‘조선판 사회개혁 청사진’이었다. 그의 실학은 추상적인 학문이 아니라 삶의 문제를 다루는 구체적 지혜, 곧 생활 속 철학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다산은 여전히 살아 있는 사상가이자 인생의 스승이다. 그는 권력의 중심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언제 유배가 풀릴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에서도 그는 묵묵히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걸어갔다. 저자는 다산이 모든 것을 잃고 난 뒤 도달한 깊고 고요한 긍정성에 주목한다. 다산은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삶의 태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내가 다산초당에서 연못을 고치고 정자를 세우며 밭과 텃밭을 돌볼 때, 어느 하나 소홀히 하지 않았던 모습을 너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은 내 소유가 될 것을 바라서 한 일이 아니었다. 자손에게 유산으로 남기려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일이 내 마음에 기쁨을 주었고 성실히 응답하는 삶이 곧 나의 도리였다.” 이처럼 다산의 생에 대한 긍정성은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는 버팀목이었다. 지금, 인생을 다시 세우고 싶다면, 《마흔에 읽는 다산》은 가장 품격 있는 인생 수업이 될 것이다.
책속에서
[P. 7] 이 책에서 ‘정양용’ 대신 ‘다산’이라는 호칭을 택한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 이름은 그가 유배지에서 다시 얻은 또 하나의 자신이자, 고난을 통과하며 새로 태어난 인간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다산’이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절망을 지나온 이만이 지닐 수 있는 평정과 지혜를 떠올린다.
[P. 7] 가난에 흔들리고, 가족의 한숨에 마음이 꺾이는 자신을 그는 숨기지 않았다. 그 정직함이야말로 다산을 품격 있는 인간으로 만든 덕목이었다. 그는 이상을 말하면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고, 세상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그의 글이 지금도 우리를 위로하는 이유는 바로 그 솔직함에 있지 않을까. 그는 결코 완벽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진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