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로 얼룩진 기억을 한 조각씩 꺼내어 어루만지다 에피소드 한 편 한 편에 담긴 찰진 표현들
『봄날의 비단구두』는 한 여성의 76년 생애와 결혼생활 50년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담아낸 자전적 에세이이다. 머잖아 멋진 정년퇴직을 하리라 기대하며 39년째 몸담아 온 일터에서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저자는 한동안 절망감에 빠져 지냈다. ‘헌신하면 헌신짝이 된다’던 어느 강사의 말이 자신의 이야기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상처로 얼룩진 기억을 한 조각씩 꺼내어 다듬으며 때로는 웃음으로, 때로는 눈물로 삶의 무게와 그림자들을 덜어냈다. 그녀는 비로소 인생의 봄을 맞이하며, 자신의 발에 맞는 비단구두를 손수 짓는 중이다.
책 속에서 저자는 ‘세실 여사’라는 또 다른 자신을 소환한다. 상처를 안고도 꿋꿋이 살아낸 아내이자 며느리, 어머니로서의 삶이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날것 그대로 펼쳐진다. 결혼생활의 팽팽한 긴장감, 시어머니와의 티격태격한 일화, 자식들을 위해 기꺼이 헌신해온 세월, 분노와 절망 끝에서 마주한 작지만 귀한 행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실을 직시하는 저자의 서술은 독자에게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저자의 글에는 모순적인 두 모습이 공존한다. 관계를 회복하려 애쓰는 다정함과 한없이 약해지는 마음 사이에서 흔들리지만, 온몸으로 부딪치며 답을 찾아온 용기 또한 빛난다. 특히 젊은 시절 내내 가족에게만 쏟았던 헌신의 발걸음을 옮겨, 이제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헌신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이는 지나온 시간을 견디게 한 구원이자 남은 생을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된다.
『봄날의 비단구두』는 한 사람의 자전적 기록을 넘어, 누구나 지나온 삶을 다독이게 하는 위로의 책이다. 고단했던 시간까지도 버리지 않고 정성스레 꿰어 비단구두로 탄생시킨 저자의 여정은 독자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괜찮다. 지금부터가 나의 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