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즈 ______ 12 100호 아네모네 ______ 13 미역귀 ______ 15 겸상 ______ 16 검은 누드 ______ 18 모호한 안전 ______ 20 푸른발부비새 ______ 22 둥근 배에 등을 대면 ______ 24 세한도 ______ 26 호주머니에서 커피명가가 나왔어요 ______ 28 바다 문지방에서 ______ 30 도마라는 나무가 있다 ______ 32 수레국화 ______ 34 온몸이 눈이다 ______ 35 물방울감옥 ______ 36 루시 ______ 37 불면不眠 ______ 38
2부
만개滿開 ______ 40 절차 ______ 41 푸른 유방 ______ 42 낙화 ______ 43 너에게 가는 길 ______ 45 우리 거서 보까 ______ 46 결별은 생각하지 않아요 ______ 48 노을이 낳은 어둠 ______ 50 잠깐 ______ 51 시월 ______ 52 섬 ______ 53 땅거죽 ______ 55 생강나무 가지에 새가 돌아오면 ______ 57 분홍설법 ______ 58 바다 밑 모래사막 ______ 59 물렁한 둑길 ______ 61 자궁 ______ 62
3부
거기에 있지 않은 사람 ______ 64 봄 봄 ______ 66 달뿌리풀 ______ 67 피차 ______ 68 11월 ______ 69 끼니 ______ 70 꽃잎에 눈이 쌓이면 ______ 71 연애 시절 ______ 72 어떤 인사 ______ 73 벌름거린다 ______ 74 날지 않기로 맘먹고 ______ 75 낯선 남자가 지켜보고 있다 ______ 77 조개의 입 ______ 79 신속 처리해 드립니다 ______ 80 외출이 생포되었다 ______ 82 봄과 도마뱀 ______ 84 장마 ______ 85
4부
하지 ______ 88 적설량 따지지 말고 ______ 89 목련꽃그릇 ______ 91 장마 구름이 잠깐 해를 올려놓을 때 ______ 92 민들레밥 ______ 93 슬하 ______ 95 노을증후군 ______ 97 봄가을 ______ 99 세월을 방석처럼 깔고 앉아 ______ 101 귀옥 ______ 103 밥과 무덤 ______ 105 질베르 호펠스 ______ 107 흙 마당 곱게 쓸어 나뭇가지로 그린 그림처럼 ______ 109 압축 ______ 111 흰눈물 ______ 113 슬과 픔이 출몰할 때 ______ 114
│해설│신상조(문학평론가) 범람한 저 독백의 속살에 내 귀가 들어가 ______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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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발부비새 : 김기연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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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범람한 저 독백의 속살에 내 귀가 들어가 ─신상조(문학평론가)
1 머뭇거리거나 띄엄띄엄 말하거나
시집 같은 일기를 읽는다. 글쓴이는 강변에 자리한 집으로부터 걸어서 약 십 분쯤 거리에 있는 마을의 우체국을 다녀오는 길이다. 날씨가 흐리더니 그가 우체국 문을 나서는데 몇몇 눈송이들이 허공을 가른다. “눈송이들은 우체국 앞의 담뱃집 유리창으로 하나, 그리고 그 옆 잡화점 지붕으로 하나, 잡화점 옆의 감나무 가지 위로 서너 개, 이런 식이다.”라고 일기에는 적혀 있다. 이어지는 글은 다음과 같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달리 “비가 올 때는 그것이 달려오는 소리부터 날카로워 지상의 존재들은 긴장한다. (…) 눈은 소리를 하늘의 심처深處에 묻으며 오고, 몸을 새처럼 가볍게 지상에 내려놓는다.” 사람의 언어도 눈과 비에 기대 표현할 수 있다면, 김기연의 시어는 날카롭게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비보다는 머뭇거리며 내리거나 띄엄띄엄 내리기 시작하는 성근 눈발을 닮았다. 눈과 비에 대한 사유를 기록한 일기는 시간을 뛰어넘어, 한 낯선 시인의 시어에 무람없이 섞인다. 『푸른발부비새』는 김기연의 네 번째 시집이다. 시인은 1993년 등단 후, 첫 번째 시집 『노을은 그리움으로 핀다』를 2001년에 펴냈다. 만인사에서 『소리에 젖다』를 2006년에, 작가세계에서 세 번째 시집 『기차는 올까』를 낸 게 2014년이니 햇수로 10년이 넘어 네 번째 시집을 내는 셈이다. 과작에 속하는 시인의 시작詩作 세계를 단순화하자면 시집 제목에 사용된 ‘젖다’와 ‘피다’라는 서술어, 그리고 ‘그리움’과 ‘기다림’이라는 명사로 요약할 수 있다. ‘기다림’은 세 번째 시집의 제목 ‘기차는 올까’란 질문에서 유추한 단어다. 주지하다시피 ‘그리움’과 ‘기다림’은 다른 말이 아니다. 젖는다는 감각이 그리움이란 정서와 결부된다면, 핀다는 행위는 기다림이라는 자세와 연결된다. 다만 시인은 그리움과 기다림의 시학을 젖은 감각 속에 숨겨왔다. 젖음은 표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내부로 스미는 감각이지 않은가. 젖음은 입체적 표면의 혼란을 멀리하며 시인의 내면으로 숨어들어 그림자와도 같은 흔적만을 드러낸다. 『푸른발부비새』는 그 젖음의 감각마저 통어하고 지운 형태를 지향한다. 그런즉 『푸른발부비새』에서 시인은 단순화의 시학을 더 작정한 듯싶다. “말은 말이 반이고 침묵이 반이다.”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김기연의 시는 하다 만 말 같고 화자의 나직한 목소리는 속삭임처럼 들린다. 순수하게 정제된 시어만을 사용한다기에는 태생적인 ‘말 없음’과 ‘말 줄임’이다. 비약을 차단하며 간신히 몸 밖으로 밀려 나온 시어들. 그 말 없음과 말 줄임 사이에 난 길은 소위 여백이다. 성글게 내리다 어느샌가 땅의 표면을 하얗게 덮어버리는 눈처럼, 김기연의 시는 지표의 혼란스러움을 지운 단순함의 여백으로 우리 앞에 놓인다. 가령 시인은 「날지 않기로 맘먹고」에서 산불이 지나간 산에서 알을 품은 꿩이 조무래기들의 막대기가 위협하는데도 날아가지 않는 어느 날의 기억을 재생한다. 시는 사건적 요소인 ‘산불과 알을 품은 꿩’, 사물적 요소인 ‘꿩과 조무래기들’로 구성된 서사가 전달하는 ‘무엇’이 무엇인지를 끝내 들려주지 않은 채 “꿩도 알도 먹을 수 없던 그런 날이었다”라는 진술만으로 끝맺는다. 목숨을 담보한 꿩의 모성애가 전달하고 싶은 ‘무엇’에 해당할 터이지만, ‘무엇’이 무엇인가에 대한 판단은 오롯이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다.
2. 뒷말 뭉텅 날려버리고도 피차 통하는
내밀한 서사의 누설을 망설이는 행간의 여백, 그리고 시의 후반부 전체를 통째로 생략하는 방식은 『푸른발부비새』에서 자주 반복되는 어법이다. 창자를 밀어내듯 어렵게 뱉어내는 말들, 이미지나 인식 일부만 분절해서 드러내는 간략함은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는 ‘이심전심’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전주명가콩나물국밥집의 주문은 간단명료하다 ─콩 하나! 뒷말 뭉텅 날려버리고도 피차 통하는 뜨거운 국밥
날달걀 타닥 깨어서 넣고 반동강 난 껍데기에 날개 몽땅한 파리 한 마리 바짝 당겨 앉는다 왼손 손바람으로 허그적 날리는데 요것 봐라 금세 다시 날아와 한사코 겸상한다
나는 뚝배기에 고개 들이밀고 저는 달걀껍데기에 전심전력 파고들고
식후 돌아갈 처소야 다르겠지만 숨 멎고 쉬는 일이사 뭐 동족이지 않겠는가? ─「겸상」 전문
전주명가콩나물국밥집 주메뉴는 ‘콩나물국밥’이다. 간단명료한 “─콩 하나!”는 “콩나물국밥 1인분 주세요”라는 주문임을 손님도 알고 주인도 안다. 주목할 점은 이어지는 “뜨거운 국밥”의 중의성이다. “뒷말 뭉텅 날려버리고도 피차 통하는”게 말이 가진 지시적 의미뿐이라면 상에 놓이는 음식이 ‘뜨거운 국밥’임을 애써 강조할 필요는 없다. 독자나 시인 모두가 아는 뻔한 사실을 위해 안 그래도 짧은 시에 굳이 한 줄을 할애한 건 아니다. 요컨대 명확하거나 수다스러운 말의 지시적 기능을 생략함으로써 오히려 손님과 주인 사이에 ‘뜨거운’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됨을 시인은 놓치지 않는다. 그러니 1연의 마지막 행에서 국밥이 뜨겁다는 ‘사실’만을 읽는다면, 김기연 시의 감성적 구축을 자칫, 모르는 채로 지나치게 된다. 그의 시를 오롯이 읽으려면 언어의 진행을 세심히 더듬어나가며 정서적 온도를 느낄 필요가 있다. 김기연 시인에게 정서적 온도는 현실이라는 감각을 통해 체험되는 리얼리티를 의미하고, 삶의 진실이란 그러한 리얼리티로부터 발명되는 또 다른 현실이다. 시인은 “뚝배기에 고개 들이밀고” 열심히 국밥을 먹는 자신과, “달걀껍데기에 전심전력 파고”드는 파리가 “숨 멎고 쉬는 일”에서 나란한 “동족”임을 인식한다. 김기연의 시는 많은 경우, 현실에서 인지된 대상을 서술함으로써 그 대상으로부터 비롯된 새로운 인식을 꺼내는 과정을 거친다. 시에서 주목할 인식은 이 땅에 생존하는 모든 존재에 불어넣어진 ‘숨’과 그 숨이 멎고 쉼에 따른 ‘일’이다. 사람인 ‘나’와 해충인 ‘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이성이 힘을 행사하지 않는 내면세계의 전개다. 화자와 파리의 “겸상”은 김기연 시의 따뜻한 내면을 극적으로 보여 준다. 빈 소파에 앉았다
딸 동미가 곁에 와 앉는다
동미 딸 채윤 따박따박 둘 사이에 들앉는다
쌀알만 한 아랫니 두 개 뾰조족 내밀며 웃는다
문득,
삼라만상이 만개하네
─「만개滿開」 전문
‘빈 소파에 화자가 앉는다’는 시의 첫 행은, ‘화자 옆에 딸인 동미가 와서 앉는다’로 시작하는 것에 비해 의미심장하다. 이는 김기연의 시가 사람과 소파를 수평의 층위에 놓는다는 의미이고, 소파를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와 거의 같음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소파에 앉은 화자 옆에 딸인 동미가 와서 앉고, 그 옆에 동미의 딸 채윤이 와서 앉는 이 무언의 ‘함께 함’은 핏줄의 끈끈한 정을 넘어 시적 연대의 실현으로 와닿는다. 세 사람의 육체를 형성하는 뼈와 살과 피, 혼인과 출생으로 이어지는 법적 관계가 물리적 층위라면, 서로를 대상으로 실현되는 존재 방식은 삶의 안팎을 아우르는 정서적 층위에 해당한다. 물리적 층위는 삶의 필연적 결과이나 정서적 층위까지 당연하다고 할 수는 없다. 때로 가족에 대한 우리의 감정이 끝끝내 화해하지 못한 견고하고 어두운 풍경을 보여 준대도 그건 놀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미 딸 채윤”이 “쌀알만 한 아랫니 두 개 뾰조족 내밀며 웃는” 모습은 한시적인 시공간 안에서 내밀한 삶의 흔적이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김기연 시의 진경이라 할 수 있다.
3. 한 우주를 함께 돌아보는
봄날 오후 깜박 쉬어가는 나비의 잠이라 하자 이 하룻밤
(중략)
주섬주섬 어둠 들쳐 안고 휘적휘적 돌아가는 지상의 물고기여 어두운 해여
─「바다 문지방에서」 부분
「바다 문지방에서」에서는 내면의 심미적 풍경이 꿈꾸듯 아름다운 김기연 시의 서정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의 시에서 풍경(장소)은 인식?압축?발견된다. 메를로 퐁티에 따르면 물리적 환경은 일련의 변증법을 거쳐 내부인으로서의 ‘장소 경험’을 불러온다. 예컨대 “나비의 잠”은 환몽幻夢처럼 짧고 덧없는 삶을 상징한다. “하룻밤” 꿈에 불과한 생을 끝마치고 “휘적휘적 돌아가는” 존재를 시인은 “지상의 물고기”와 “어두운 해”라 칭한다. 물고기는 지상에 살 수 없고 어두운 해는 더 이상 해가 아니다. 선명한 윤곽들이 서서히 희미해지며 해가 ‘문지방인 바다’를 넘어가고 있다. 역설의 삶이 저무는 일몰의 풍경이다. 김기연의 시는 시적 대상이 놓인 하나의 국면이 내면적 심상을 거느린 서경적 구조 자체로 드러나거나, 그 서경적 구조를 개성적으로 변주하고자 시인의 상상력이 가미된 형태로 표현된다. 앞서 「만개滿開」에서 채윤의 ‘쌀알만 한 아랫니’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바다 문지방에서」의 ‘일몰’이나 이번에 읽을 시에서의 ‘몸짓’은 후자에 속한다. 특히 「푸른발부비새」에서 형상화된 새들의 구애는 시인의 심미안이 포착한 ‘서경’이자 그의 미적 인식이 발명한 ‘사랑’이다.
저 구애는 죽을 때까지란 말 주춤주춤 춤으로 쓰는 중이랍니다
밝은 푸른색 물갈퀴 발에서 춤이 나와요 어깨를 들썩이며, 들썩이며, 느린 고갯짓으로 다짐을 하죠
─너에게 나를 보내려 해
태평양 연안 바닷바람은 찰진 박수를 쉼 없이 보내고요 너풀너풀 날개를 편다는 건 맘도 펴고 몸도 편다는 것 서로의 뒤태를 따라 둥글게 돌아요 한 우주를 함께 돌아보는 걸 거예요
─내가 너를 용납할게
자갈밭을 뒤지고 뒤져 지푸라기 한 올 입에 물고 마주 섭니다 정중한 예물이에요
저 한 쌍 비로소 고고의 관습대로 자유로운 구속에 드네요 죽음이란 별고로 별거할 때까지
─「푸른발부비새」 전문
푸른발부비새는 이름 그대로 밝은 파란색 물갈퀴가 특징인 바닷새다. 이 새는 멕시코에서 페루에 이르는 남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 분포하고, 암석 연안이나 절벽 위 맨땅에 둥지를 튼다고 한다. 그렇지만 새를 설명하는 백과사전 어디에도 “저 구애는 죽을 때까지”라는 구절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는 눈에 띄지 않는다. 구애를 죽을 때까지 한다는 건지, 죽을 때까지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빌미로 구애한다는 건지 불명확한 이 구절은, 마지막 연에서 “죽음이란 별고로 별거할 때까지”라는 진술로 미루어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에 해당하는 서약임을 알 수 있다. “밝은 푸른색 물갈퀴 발에서 춤이 나”온다는 문장은 가시적 이미지에 시인의 주관적 심상이 겹쳐서 제시된 표현이다. 푸른발부비새 한 쌍이 추는 ‘구애의 춤’에 걸맞게 이 시는 말놀이의 요소와 의태적 심상으로 인한 율격이 두드러진다. “주춤주춤 춤”, “어깨를 들썩이며, 들썩이며”, “별고로 별거”한다 등의 언어유희가 연쇄에서 비롯되는 운율을 불러온다면, “너풀너풀” 날개를 펴고 “서로의 뒤태를 따라 둥글게 돌”아가는 시각적 심상은 “찰진 박수”의 청각적 심상이 불러일으키는 생기발랄함 속에서 리드미컬하면서도 우아하게 움직이는 새들의 몸짓을 서경적으로 묘사한다. 이 작품은 푸른발부비새 한 쌍의 구애에 빗대 사랑의 발생과정과 혼례의 예식까지를 면밀하게 추적하고 있다. 시인은 결혼이라는 “고고의 관습”이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기 전까지는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 굳고 신성한 의식임을 밝히려 노력한다. 신뢰가 넘치는 사랑과 그 사랑에 대한 보증은, 우선 에로스적 낭만과 무관한 “용납”을 필요로 한다. “자유로운 구속”이라는 역설은 또 어떠한가? 김기연의 시에서 구속과 자유는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사랑은 상대를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는 동시에, 자발적으로 그에게 구속되고자 하는 능동적 무능력이다. 조르조 아감벤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무능해질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핵심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다. 결혼제도로 상징되는 사랑에 관한 이러한 전제는 시인이 시적 영감의 방문을 받는 순간에도 보편적 도덕성을 중심에 놓는다는 인상을 부추긴다. 이 도덕성은 합리적 언어로 포착한 사회 규범적 체계로서의 도덕적 의식이나 동정심과는 다른, 보다 근원적이고 순정한 연민으로의 포용이다.
엄마는 없고 엄마 품은 없고 종일토록 그립고
꺼칠한 시멘트 바닥에 몽땅 분필로 큼지막이 엄마 그리네 기억의 미소까지 그리네
터진 신발 벗어두고 그림 엄마의 품에 드네
땅은 엄마라 했던가 쪼그려 귀 대고 있는 단발머리 루시
눈 감고 가만 그 심장 소리 떠올리고 있네
─「루시」 전문
루시는 난민이다. 그렇다면 이 시는 난민을 소재로 삼음으로써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동시대성의 구현에 목적을 두는 걸까? 하지만 매스컴과 미디어에서 반복하는 난민에 대한 묘사치고, 루시는 카메라 앞에 선 전형적 희생자의 모습과 거리가 멀다. 시인은 전쟁과 학살을 경험한 거대 서사 속의 루시가 아니라, 고아가 된 한 아이의 내면을 조명함으로써 미시 서사로서의 현실을 발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엄마를 잃은 아이의 이름이 하필 루시임은 주목을 요한다. 이 이름은 ‘최초의 인류’라고 불리며 인류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고인류 화석의 아이콘을 떠올리게 만든다. 엄마 품이 그리워 시멘트 바닥에 몽땅 분필로 큼지막이 그림을 그린 후, 쪼그려 땅에 귀 대고 심장 소리를 듣는다는 단발머리 루시. 어쩌면 이 외로운 고아 소녀는 인류 미래의 아이콘이다. 아이를 품어줄 세계의 심장은 죽어버렸다. “엄마는 없고/ 엄마 품은 없고”라는 점층은 ‘없음’을 강조한다. 난민 아이에 대한 연민 가득한 서정은 심장을 잃어버린 객관적 사회 모순에 대한 일단의 저항이다. 밥상을 앞에 놓은 사람과 파리의 공존(「겸상」), 사람과 사물 간, 사람과 사람 간에 존재하는 이해와 사랑(「만개滿開」), 신랑과 신부가 약속하는 믿음과 헌신(「푸른발부비새」), 난민 소녀 루시가 요청하는 생존권의 문제는 문학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명제를 호명한다. 폐쇄적 이기주의가 표방하는 고립과 단절, 배제와 차별이 공식화된 인류의 실존방식 전반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김기연 시의 의미 축을 구성한다. 시인의 시에서 서정은 기술세, 인류세, 자본세로 명명되는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고 전 지구적 유대와 연대를 도모할 기제로 작용한다.
4. 영아, 밥 무그러 온나!
『푸른발부비새』에서 시인은 창조 행위의 가능성을 주로 시의 형식에서 찾는다. 이를테면 「노을이 낳은 어둠」에서 조사를 활용한 행간 이월은 시의 행을 자꾸만 해체함으로써 의미의 지연과 시어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
앉지도 못하고 서성대는 가을바람 에 흔들리는 추녀 끝 거미줄 에 걸리는 끝물 노을 이 낳은 어둠 은 그대 빈 내 마음에 만수위로 고였다가
후둑 후두둑, 속절없이 내린 낙엽이 쓸고 다니는 저 적멸 ─「노을이 낳은 어둠」 전문 3행과 5행의 처격조사 ‘─에’, 그리고 7행과 9행의 주격조사 ‘─이’와 보조사 ‘─은’을 행간 이월하지 않은 채 읽어보자. 시의 1연은 ‘앉지도 못하고 서성대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추녀 끝 거미줄에 걸리는 끝물 노을이 낳은 어둠은’이라는 황당하도록 긴 수식으로 이루어진 주어 ‘어둠’이, “그대 빈 내 마음에 만수위로 고였다”는 서술절을 거느린 하나의 문장임을 알 수 있다. 조사의 반복적 이월은 시행의 형태를 가로로 길게 만든다. 이와 같은 가시적 형태는 “속절없이” 떨어진 낙엽과 “적멸”이 환기하는 하강 이미지와 부합하면서, 시행 그 자체가 내면 의식의 도구이기도 함을 드러낸다.
꽃 나비 꽃 나비 꽃 나비
─「낙화」 부분
나비 어지러이 날고 “왕벚나무 연분홍” 꽃잎 난분분 난분분 흩날린다. 시행의 배치에 따른 시각적 효과다. “행은 시가 스스로를 하나의 존재이게 하는 장치”라고 말한 이는 메리 올리버다. 한편, 조사가 행간 이월에만 유효한 건 아니어서, ‘역시’나 ‘또한’이라는 뜻을 부여하는 보조사 ‘─도’는 「섬」에서 아예 ‘도島(“나 도島”)’로 존재적 변신을 꾀하기도 한다. 조사 다음으로 문장부호의 사용도 흥미롭다. 「너에게 가는 길」에서 “비, 나이다”는 이어지는 “장맛비”라는 단어가 시의 한 연을 차지한 무게만큼이나 반점의 역할이 크다. ‘비’ 뒤에 찍힌 반점은 ‘비Rain’를 강조하면서도 화자가 정성을 다한 기도, 치성을 넘어 비손에 가까운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정서적 울림을 준다. 「슬과 픔이 출몰할 때」는 아예 슬픔이라는 단어를 접속조사 ‘─과’와 주격조사 ‘─이’로 나눠놓거나, 온점을 방점이나 감탄사처럼 사용해서 “슬.픔”이라며 부호가 화자의 격한 감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산비둘기 울음소리를 흉내 낸 부사어 “극구극구극구”(「둥근 배에 등을 대면」), 흔히 속된 말로 ‘씹다’라고 표현하는 험담을 미역귀 ‘씹는’ 소리에 빗댄 “오도독오도독오도독”, 소문이 빠르고 싱싱하게 번져 가는 모양을 미역의 미끌미끌한 감촉으로 나타내는 “미끄덩미끄덩미끄덩”(「미역귀」)은 사물과의 접촉에서 오는 느낌이 우리의 감정에 구체적으로 호소하는 시적 자산임을 알게 한다. “달그락달그락”, “포롱 포로롱”(「민들레밥」), “주섬주섬”, “휘적휘적”(「바다 문지방에서」), “벌럼벌름벌름”(「벌름거린다」), “꾸르릉꾸르릉”(「불면不眠」)……. 김기연의 시는 음성 상징어가 사용되지 않은 시를 찾는 편이 오히려 어려울 정도로 소리 자체가 의미를 나타내는 말들 천지다. 추상적 어휘인 슬픔조차 “흑흑흑 칠흑으로 흐느”(「슬과 픔이 출몰할 때」)끼는 색과 소리로 구체화할 정도다. 말소리와 의미가 밀접하게 연결된 음성 상징어는 감정이나 상황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김기연 시의 특징을 드러내기에 족하다. 이와 같은 생생한 재현 중에서도 『푸른발부비새』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입말의 잦은 출현이다.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700 적막의 슬하에 들었다
앞산 참나무숲에서 떠올라 뒷산 소나무숲으로 지는 달은 오가는 길 묵지 않아 여태 신월인데
발길 뜸한 이가 우체부만은 아니다
도란도란 자란 강아지풀 꼬리에 잠자리 날갯잠 들고 축대가 흘러내린 뒤란 발잔등 야윈 고욤나무 가지마다 오목눈이 새 떼의 흰 똥이 핀다
사슴이 사슴을 부르며 우는 녹명처럼 700번지 흙담 너머 ─영아 밥 무그러 온나! 건너실 대숲까지 닿던 그 소리는 간데없고
지나간 태풍에 조금 더 여윈 지붕은 그만큼 넓어진 허공을 안고 있다
─「슬하」 전문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 700” 번지가 “적막의 슬하에 들었다”라는 1연은 그곳에 사시던 화자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음을 의미한다. 고욤나무, 오목눈이 새 떼의 흰 똥으로 제시되는 자연이 그대로인 데 반해, 뜸해진 ‘우체부’의 발길처럼 사람의 자취는 사라졌거나 사라지는 중이다. 세월의 무상함이 짙게 밴 정서를 배경으로 “─영아 밥 무그러 온나!”라는 입말이 주는 리얼리티가 정감 그 자체의 진실성으로 다가온다. ‘녹명’은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그들을 환대하며 베푸는 잔치의 장면을 사슴의 우는 소리에 빗대어 노래한 시에서 유래했다. 그 따뜻하고 환한 정서가 ‘무그러 온나’라는 방언에 실려 한없이 절실해진다. 문학에서 입말은 사실성을 높이는 장치다. 김기연 시의 입말은 시 전체에서 한 행이나 많아야 두 행 정도를 차지함으로써 언어의 이질성으로 인한 충돌로 주제를 강조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개중에서도 특정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언으로서의 입말은 감정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는 동시에 말하는 이를 심정적으로 편들고 공감하기 위한 장치다. 부모란 “아래위 뭉텅 잘린” 은행나무가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 칼 맞으며” 사는 도마로 살다가 “초록 잎”(「도마라는 나무가 있다」) 같은 자식을 세상에 자랑하는 존재다. “─야야, 오늘은 인제 못 갈제?”(「노을증후군」)라거나, “─야야, 앞 논 논두렁에는 쑥이 천지삐까리긋다”(「봄가을」)는, 그 입말의 주인을 상실한 화자의 아픔과 그리움을 한 줄 방언으로 압축한다. 이러한 김기연 시의 입말을 새로 구분하자면 방언 사용자의 입말과 표준어 사용자의 입말로 나뉜다. 방언을 구사하는 입말은 미성숙한 자아를 가진 화자의 어린 시절에 닿아있다. “─영아 밥 무그러 온나!”란 목소리를 회상하는 화자는 과거의 정서 속에 머문다. 반면 표준말을 구사하는 입말은 화자가 성숙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만 버려요 엄마!’”(「100호 아네모네」)라는 속엣말은 방언을 구사하는 입말과의 괴리를 드러내면서 성숙한 화자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김기연 시의 시간은 입말을 통해 시간을 역행하거나 현재로 순행하며 양방향으로 흐른다. 시적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제한적 서술, 조사를 활용한 행간 이월과 반점 기호의 사용, 한 단어가 한 행을 차지하는 언어의 무게, 방언과 표준어로 구분되는 입말의 사용 등, 시인의 속내를 짐작하도록 유도하는 숱한 내재적 휴지부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시에 스며든다. 이것은 시인의 시가 우리에게 스며든다는 말보다 어쩐지 능동적이다. 화자 쪽으로 한껏 몸을 기울인 자세로 들으려 애쓰는 청자처럼, 까치발 들고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바깥에 시선을 던지는 사람처럼, 우리는 시인의 시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언제나 진행되는 과정에 놓여 있는 그의 시에 우리의 마음을 하염없이 얹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