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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경제학’이란 말만 들어도 공부하기 어렵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이 많다. 사실 경제학은 입문하기가 매우 어려운 학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훈련되지 않은 눈에는 경제학원론 책에 가득 찬 수식과 그림이 마치 해독할 수 없는 암호처럼 보이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경제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배우는 사람들의 이런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수식이나 그림으로 책을 가득 채우는 이유가 배우는 사람들의 이해를 돕는 데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니 말이다. 자신도 경제학을 처음 배울 때 그런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먹기 일쑤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오히려 지도자로서는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너무나도 쉽게 생각되는 동작인데도 선수들이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하니 답답하기만 할 따름이다. 선수들의 처지에 서서 왜 그 동작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자기가 선수였을 때는 별 어려움 없이 쉽게 소화했다는 기억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을 가르치는 우리들도 그런 반성을 한번 해봐야 할지 모른다. “이렇게 쉬운 것도 잘 몰라?”라고 다그칠 것이 아니라, 어느 부분에서 왜 어려움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몇십 년 동안 경제학과 함께 살아온 사람에게는 쉬운 것일지 몰라도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무척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한 진리에 불과한데도, 이를 깨닫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돌아보면 나 자신도 이 사실에 눈뜨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사람마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목적이 다름을 인식하고 각자에게 ‘맞춤형 경제학 교육’을 제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모두가 장래 경제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가 되려는 사람을 교육시키려면 기초부터 아주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 경제학의 추상적 논리에 익숙하게 만들기 위해 실생활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논리의 훈련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경제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 중 장래 경제학자가 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사실 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조차 사회에 나가서는 경제학과 아무 관련이 없는 일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제학의 기술적 측면을 세밀하게 가르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대학을 떠나는 순간 까맣게 잊어먹을 게 분명한 경제학 지식이 아닌가? 물론 대학에서의 교육이 사회생활에 꼭 도움이 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과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 것이 분명한 사람들에게 복잡한 수식과 그림으로 고문을 가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전공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호기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는 기본 개념과 기본 이론의 학습에 경제학 교육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경제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체험하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을 가르쳐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런 사람들에게는 직관에 초점을 맞춘 교육을 통해 경제학의 관점에서 본 세상을 체험하게 해주는 편이 훨씬 더 낫다.
맞춤형 경제학 교육이 가능해지려면 경제학 입문서도 다양한 수준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즉 가장 쉽고 기초적인 책부터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은 책까지 여러 수준의 입문서가 있어 각자의 목적에 알맞은 책을 고를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뜻이다. 적합하지 않은 입문서를 선택해 경제학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사람은 길을 잃고 방황하기 십상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 중 이런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이 무척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책이 목표로 하는 바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경제학에 입문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길라잡이의 역할을 해주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읽어보면 곧 알 테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수식은 단 두 개에 그친다. 그것도 복잡한 수식이 아니라 무한급수의 합을 구하는 아주 간단한 수식이다. 또한 그림은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림과 수식에 겁을 먹고 경제학에 입문하기를 두려워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서 이런 극단적인 접근법을 사용했다.
이 책은 가장 쉽고 기초적인 수준에서 경제학의 기본 개념과 기본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내 생각에 더 이상 쉽게 풀어서 설명할 수 없다고 느끼는 수준까지 난이도를 낮췄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도 이 책을 능히 소화해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든 이 책을 길라잡이로 삼을 수 있다. 이 책 제목에 ‘열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 발을 내딛고 싶은 모두에게 문을 활짝 열어놓고 기다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수박 겉핥기식 공부에 그치는 것이 아닌가라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경제학 공부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경제학적 직관을 얻는 일이지 수학적 기법을 익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제공하고 있는 경제학적 직관만 충실하게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경제학에 대한 이해가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랐다고 자부해도 된다. 사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 중에도 이 책이 제공하는 수준의 경제학적 직관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책이 읽기 쉽다 해서 결코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또 하나의 내 목표는 경제학 공부가 재미있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자는 것이다. 우리 교육은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염증을 느끼게 만든다. “공부해라. 공부해라.”라는 맹목적인 성화가 그 주요한 원인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지 못하는 졸렬한 교수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선생님의 설명을 노트에 적고 이걸 그대로 암기해 시험을 치는 것이 공부의 전부였다. 이런 공부에서 재미를 느낄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공부에 재미를 느끼게 만들려면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왜 그럴까?”라는 지적 호기심을 갖게 만들어 주어야 비로소 공부에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공부라는 것은 그 의문이 풀리는 과정을 뜻하고, 바로 이 과정에서 공부가 재미있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런 지적 호기심이다. 경제학의 기본 개념과 기본 이론의 맹목적 학습이 아니라 스스로 제기한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경제는 뒤로 젖혀두고 이론 그 자체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도 경제학 공부를 재미없게 만드는 또 다른 원인이다. 모든 경제이론의 근저에는 현실의 경제현상이 깔려 있는 법이다. 따라서 현실의 생생한 경제현상과의 밀접한 관련하에서 경제이론을 가르쳐야 이해도 쉽고 흥미도 느낄 수 있는 법이다. 이론 그 자체를 위한 이론을 배운다고 느낀다면 그런 공부에서는 아무런 흥미도 느낄 수 없다. 이 책을 쓸 때 이론과 관계되는 현실의 사례를 풍부하게 들어줌으로써 설명에 생동감을 불어넣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책의 초판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열린경제학』이란 제목으로 첫 판이 나온 것이 1995년이니, 벌써 20년이 넘는 긴 세월이 흐른 셈이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예상 밖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무척 기뻤다. 수식과 그림이라는 장벽에 막혀 감히 경제학에 발을 붙일 생각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으로 쉽게 설명한 경제학 입문서를 써보자는 의도가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때만 해도 명확하게 이런 의도를 갖고 쓴 입문서가 그리 많이 나와 있지 못한 상황이었다.
책을 쓴 사람은 언제나 절감하는 바지만, 막상 책이 나오고 나면 이것저것 부족한 부분이 많이 눈에 띄게 마련이다. “왜 이걸 다루지 못했을까?”, “왜 좀 더 쉽게 설명할 수 없었을까?”, “왜 글을 좀 더 가다듬지 못했을까?” 등등 이런저런 후회가 끊임없이 밀려온다. 사람은 언제나 지나고 나서 뒤를 돌아볼 때에야 보이지 않던 것이 비로소 눈에 띄는 법인가 보다. 늘 남모를 아쉬움을 안고 살다가 드디어 2001년 개정을 결심하게 되었다. 이왕 개정을 한 김에 제목도 『새 열린경제학』으로 바꿔 달고 독자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 뒤로 16년이라는 실로 긴 시간이 흘렀다. 교과서라면 당연히 주기적으로 개정해 최신의 흐름에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대중서를 너무 자주 개정하는 것도 그리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 이렇게 긴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연히 여기저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책만 갖고 경제학에 입문할 차비를 완벽하게 갖춘다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더 이상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다는 나름대로의 절박함에서 개정을 서두르게 되었다.
이번 개정을 통해 어느 정도 그럴듯한 체제를 갖춘 입문서를 만들게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경제학의 주요 분야에서 꼭 알아 두어야 할 기본 개념과 기본 이론은 거의 모두 다뤘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의 최근 동향을 반영하는 데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밝히고 싶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경제학의 세계에 처음 발을 내딛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기 짝이 없는 길라잡이가 되어 주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이런 내 바람이 실제로 얼마나 성취되었는지를 평가하는 것은 순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내가 쓴 책들(『경제학원론』(공저). 『경제학 들어가기』(공저), 『미시경제학』, 『재정학』(공저), 『이준구 교수의 인간의 경제학』)에서 그대로 따온 부분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일일이 출처를 밝히는 것이 번거로운 데다가, 대중서까지 엄격하게 그런 원칙을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에서 출처 표시를 생략했다. 더군다나 모두 내가 스스로 쓴 글이라 남의 업적을 훔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출처 표시에 큰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무엇보다 우선 예쁜 표지를 그려준 신비아 양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하려고 한다. 내 팬클럽의 초대 회장으로 활약하기도 한 그는 내 표지 디자인 부탁을 단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내가 쓴 책들의 표지가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것은 순전히 그의 덕분이다. 그리고 바쁜 중에도 틈을 내 교정의 궂은일을 서슴없이 맡아준 정지영 박사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는 내가 그동안 쓴 수많은 책에서 나와 함께 ‘오자 제로’라는 무모한 목표에 도전해 온 바 있다. 이 책에서 그 목표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는지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으로 지켜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편집과 교정 등 여러 가지 일들을 성실하게 수행해준 문우사의 여러분들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