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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손목을 내려다보게 됐다.” - 배우 류승룡

손목 위의 물건 하나가 하루의 질감을 바꾼다. 이 책은 그 사실에서 출발한다.

아날로그 시계를 차면 시간이 흐른다. 초침이 원을 그리고, 알림은 오지 않고, 시간은 끊기지 않는다. 스마트워치를 차면 시간이 쪼개진다. 걸음 수, 수면 점수, 심박수, 아직 채우지 못한 활동 링—시간은 데이터가 되어 화면 위에 나열된다. 한 사람이 보내는 같은 하루인데, 손목 위의 시계가 바뀌면 시간이 바뀐다.

저자는 이 경험을 스위스 시계 300년 역사 위에 놓는다. 1883년 미국 전역에 표준시가 도입되던 날, 농부가 회중시계를 꺼내 들던 장면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백 개의 지역 시간이 네 개로 통합되고, 시간의 주인이 태양에서 철도로 넘어간 날. 그 9분의 차이가 사라진 순간부터, 시간은 더 이상 자연이 아니라 제도가 되었다.

1장은 시간이 어떻게 돈이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프랭클린의 “시간은 돈이다.”에서 테일러의 스톱워치까지, 시간이 경제적 자원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2장은 스위스 쥐라 계곡으로 들어간다. 바쉐론 콘스탄틴의 270년, 브레게의 투르비용, 쿼츠 쇼크에서 살아남은 블랑팡, 발레 드 주의 독립 시계공 필립 듀포—태엽과 톱니바퀴가 만들어 낸 ‘영원의 시간’을 기록한다. 3장은 센서와 알고리즘이 손목에 도달하는 과정이다. 조니 아이브의 첫 구상, 애플 하트 스터디 41만 명, ECG 기능의 FDA 승인—시계가 착용자를 읽기 시작한 순간을 포착한다.

4장에서 두 시간이 충돌한다. 파텍 필립의 “다음 세대를 위해 잠시 맡아두는 것”과 애플의 “건강의 미래는 당신의 손목 위에”가 나란히 놓인다. 스마트워치를 벗었는데도 진동을 느끼는 ‘유령 진동 증후군’, 수면 점수에 집착하다 잠을 망치는 ‘오소솜니아’, 걸음 수가 보험료를 결정하는 바이탈리티 프로그램—센서가 몸에 새기는 흔적과 제도로 확장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동시에, 기계식 시계의 그림자도 외면하지 않는다. 포장을 뜯지 않은 채 정가의 열한 배에 낙찰되는 시계, 데이터에서 벗어날 자유가 가장 비싼 자유가 되는 시대다.

이 책의 힘은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스마트워치를 벗어라.”도, “기계식 시계를 차라.”도 아니다. 두 시계가 만드는 두 시간을 나란히 놓고, 그 차이의 지형도를 그린다. 그리고 두 시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시간으로 ‘숨’을 놓는다. 바늘도 아니고 센서도 아닌, 횡격막의 수축과 이완으로만 존재하는 시간. 그것이 이 책이 찾은 세 번째 좌표다.

시계에 관한 책이지만, 결국 시계를 차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아침마다 서랍장 앞에 서서, 오늘은 어느 쪽을 찰까 고르는 그 사람. 모르고 집으면 습관이고, 알고 집으면 선택이다. 이 책은 그 ‘앎’을 위한 지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