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솔길에서 만난 다산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B000150280
181.157 -26-10
부산관 종합자료실(1층)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인간 정약용의 다채로운 풍경 《목민심서》와 수원화성, 강진 유배와 다산초당은 다산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말들이다. 하지만 이 몇 마디만으로는 그 글을 쓰고 그 시간을 살아 낸 정약용을 온전히 보여 주기 어렵다. 이 책은 다산이 직접 자신의 생애를 정리한 〈자찬묘지명〉과 신유사옥으로 숨진 그의 벗들에 대한 ‘묘지명 열전’에서 출발해 그의 여러 호와 시문, 가족에게 보낸 편지 등을 통해 그의 삶을 새롭게 읽는다. 정조와 새 시대를 꿈꾸던 청년 관료, 백성의 현실을 가까이서 목격한 암행어사, 하루아침에 정치적 기반을 잃고 강진으로 내몰린 유배객, 제자들과 함께 학문 공동체를 일군 ?학자이자 교육가, 유교와 불교의 경계를 넘어선 지성인으로서의 다산을 돌아본다. 나아가 역병에 맞선 의원, 서예와 그림을 평한 미술평론가, 500여 권의 책을 ?기획 저술 편찬한 출판인, 차와 바둑을 즐긴 생활인으로서의 면모까지 두루 살핀다. 이 책에서 만나는 다산은 ?하나의 이름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다채로운 인물이다.
다산에게 묻고, 그의 삶에서 답을 찾다 다산은 왜 가장 빛나던 자리에서 땅끝 유배지로 밀려났을까? 강진에서 보낸 18년의 ‘절대 고독’의 시간을 그는 어떻게 견뎠을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그리고 다시 기회를 힘으로 바꿀 수 있었던 내공은 어디서 나왔을까? 이 책은 독자가 다산 정약용에게 품을 법한 궁금증을 따라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정조의 각별한 신임을 받으며 개혁의 중심에 섰던 시절부터, 정조의 죽음 뒤 정치적 몰락을 겪고 강진으로 유배된 과정, 사의재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다산초당에서 강학과 저술에 몰두한 시간까지 차근차근 되짚는다. 다산에게 유배지에서 얻은 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그는 천주교 신앙을 정말 버렸을까? 저자는 이처럼 독자가 궁금해하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도 피하지 않는다. 이 책은 다산을 멀리 있는 위인이 아니라 오늘의 독자가 질문을 건네고 그 삶에서 답을 찾아갈 수 있는 인물로 되살려 낸다.
백성의 삶에서 탄생한 다산의 학문세계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함께 그가 남긴 글을 함께 살펴본다.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삶과 학문의 관계망 속에서 각 저술이 어떤 삶의 경험과 문제의식에서 태어났는지를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암행어사와 지방관으로 일하며 목격한 백성의 고통, 유배지에서 마주한 가난한 사람들의 삶, 정치적 좌절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개혁의 뜻이 그의 시와 저술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경세유표》는 낡은 국가 제도를 새롭게 설계하려는 구상에서 나왔고, 《목민심서》는 지방관으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흠흠신서》에는 형벌을 신중히 적용하고 억울한 죽음을 막으려는 다산의 절박한 문제의식이 담겼다. 세 저술은 관직 경험과 유배 생활을 통해 확인한 조선 사회의 모순에 대한 그의 구체적인 처방이자 실천적 응답이었다. 이 책은 다산이 무엇을 썼는지만이 아니라, 왜 그런 책을 써야 했는지를 보여 준다. 저술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삶의 조건, 각 책에 담긴 현실 인식과 집필 동기를 함께 살핌으로써 다산의 방대한 학문세계를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독자는 그의 책들이 개인적인 학문적 성취가 아니라,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의 삶을 바꾸려 했던 한 지식인의 오랜 고민에서 태어났음을 확인하게 된다.
《오솔길에서 만난 다산》은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결과물을 소개하고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성취를 가능하게 한 한 인간의 삶을 가까이에서 보여 준다. 독자는 다산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며 시대의 모순에 맞서고, 좌절 속에서도 삶과 학문을 다시 일으켜 세운 정약용을 만난다. 그 만남은 오늘 우리의 삶과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질문으로 이어진다.
책속에서
[P.31] 영광과 오욕,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생의 파노라마 속에서 그는 자신의 내밀한 삶의 서사를 무덤에 안고 들어가기를 거부했다. 기득권 세력인 노론이 지배하는 관제 이데올로기로 자신의 좌표가 찍혀지거나 자리매김당하는 것도 거부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드라마를 연상시키는 파란의 스토리, 긴박했던 사건의 순간들을 그는 연대기처럼 묘지명으로 복원했다.(다산 입문서 <자찬묘지명>)
[P. 89] 글쟁이인 다산에게 편지는 그의 일상이자 일생이었다. 다산의 편지에는 그의 인생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그는 삶의 족적을 남기듯 편지 한 편 한 편을 삶의 기록으로 남겼다. 분명 다산은 기록의 가치와 힘을 아는 사람이었다. (편지로 풀어 보는 다산의 ‘인생극장’)
[P. 112] 다산은 고관대작이나 지체 높은 관리보다 가난한 자들을 먼저 보살피라고 권했다. 그는 “동쪽에다 베풀어도 보답은 서쪽에서 나오기도 한다”며 “지혜로운 사람은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고 말한다. 생명 앞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이나 부귀빈천을 떠나야 한다는 다산다운 조언이다. (역병에서 백성 살린 의원 정약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