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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한강변 조커

마녀 12
마트료시카 14
블랙 뮤지엄 17
먼 행성으로 돌아가는 20
길냥이 22
조커 24
엘리베이터 26
게이샤 28
폭설 30
사마귀 32
공 34
예언자 36
심야 파티 38
웨스 앤더슨 왕국 41
Perfect days 44
골목길 47
눈표범 50
고양이가 나아 52
마크 로스코 56

제2부 불국사 데이트 사진

불국사 데이트 사진 60
소나기 64
종이접기 66
유치원 앞 은행나무 68
봄날은 간다 71
옷걸이 72
슬로우 모션 74
프리지아를 보러 간다 76
봉화 할머니 79
해방촌 80
건네지 못한 말 83
베란다 풍경 86
스무 살 88

제3부 때로 외딴집이 필요하다

가을 오후 한강 산책 92
때로 외딴집이 필요하다 94
옥상 96
스노볼 98
마라톤 100
차현희 순두부 102
노래를 불렀다 105
흑석동 산책기 108
양말을 신으며 110
오르골 112
심야 토끼 114
줄여 쓰는 회고록 118
안개 122
비상벨 124
울고 싶은 날 127
수면 진입 루틴 130
오지 않는 시내버스 132
나무였던 기억 134
유목민 136
치명적 질환 138
삼중당 문고 140
잠원동 매미 143

해  설
박혜경 일상의 우울을 응시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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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 토끼 : 김기주 시집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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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320316 811.15 -26-1452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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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주 시인의 첫 시집 『심야 토끼』가 시작시인선 0561번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시는 시인이 대상에 대해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유형과 자신의 내면을 투사해 정서적 동일화를 이루는 유형으로 크게 나뉜다. 시집 첫 챕터에는 관찰적 시선이 두드러지는 시들이 주로 수록되어 있으며, 이는 현대 문명 세계를 냉철하고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는다. 이러한 시들은 화자의 독특한 목소리와 세밀한 장면 묘사로 마치 연극을 보는 듯한 상황극적 느낌을 자아낸다.
시집 후반부에선 시인의 정서적 개입이 강해지면서 시와 대상 간 거리가 줄어들고, 시인은 자신의 내면을 대상에 투사한다. 이때 시의 어조는 냉소적에서 따뜻하고 포용적으로 변화하며, 가족사와 일상 속 고단함, 삶의 비애 같은 개인적 경험이 주제로 나타난다. 사라져가는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눈길은 우울과 탈출 불가능한 고통을 담아내며, 내면과 주변 세계가 깊이 연결된 서정적 특성을 드러낸다.
김기주의 첫 시집은 관찰적 거리와 정서적 동일화라는 두 방법론으로 시적 대상을 다루며, 이 두 유형이 시집 내에서 상호 보완하며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개인적 내면의 고통을 동시에 표현한다. 이로써 시집은 역동성과 깊이 있는 서정을 함께 보여준다.

책속에서

알라딘제공
심야 토끼

아파트 정문 앞 2차선 도로
거대한 모터 돌고 있는 빗물 펌프장을 끼고 몇백 걸음 가서
늘 불을 밝히고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을 지나
던킨도너츠 앞 건널목에서 사차선 도로 신호를 기다려
빌라 단지 지나 어두컴컴한 굴다리를 건너면
언제나 거기에 있는 한강공원

새벽 세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어느 날
견디다 못해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인기척 하나 없는 조용한 밤거리를 지나 한강에 갔다.
깊은 밤에 보면 텅 빈 영화관 같은 거대한 한강변
듬성듬성 잡초 끼어든 널따란 잔디밭에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사람이 사라지고 난 무대의 주인공처럼
토끼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달빛조차 거의 없는 캄캄한 밤이었지만
젖소 모양 얼룩무늬 등은 눈에 잘 띄었다.
바람막이 후드티를 뒤집어쓴 나를
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깊은 밤에 한강 잔디밭에서 토끼를 마주치는 게 당혹스러웠지만
토끼는 별로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빨간 눈이 아닌 검은 눈을 깜박거리며 나를 바라보았고
눕혔던 귀를 총총 세우고 고개를 약간 갸웃거렸다.
그런 다음 두 발로 우뚝 서더니
마치 가까이 오라는 듯 허공 속의 왼손을 약간 까딱거렸다.
기이한 인연의 기억은 필요한 법이지, 비어 있는 내 손이 마중을 나갔지만
내민 손을 거부하며 토끼는 뒤로 물러났고
몸을 움츠리고 옆으로 살짝 옮겨 앉더니
시선을 돌려 내가 아닌 강물 쪽을 바라보았다.
뿌연 조명 몇 개가 달린 거대한 철교와
불투명한 꿈자락 같이 겹겹이 쌓인 암갈색 강물을
토끼는 말없이 바라보았고
할 말이 없어진 나도
그 곁에 함께 앉아 마냥 바라보았다.

가끔은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그런 날이면 아무리 해도 잠을 이룰 수 없고
결코 멈출 수 없이 연달아 일어나는 생각들의 꼬리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좀 가라앉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깊은 밤의 한강에 앉아 있게 되기도 하는 법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듯하면서
그런 일을 늘상 겪어온 듯한 표정으로
토끼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을 다 알고 지켜보는 것처럼
그 눈은 점점 더 가느다랗게 오므라들었다.

누군가 울고 있고
누군가 웃고 있고
팔을 휘두르며 싸우고, 목이 쉬도록 소리 지르고
그러다 어떤 사람은 끝끝내 그 길 위에 보이지 않고
그런 풍경들이 강물에 뒤섞여 지나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것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모두 어디로들 가고 있는 것일까.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지울 수 없는 우울의 씨앗 하나가 잭의 콩나무처럼 뻗어나올 때
단숨에 밑둥을 잘라낼 도끼를 구할 수는 없을까.
뭔가 묻고 싶고 확인하고 싶었지만
대화를 거부하듯 토끼는 고개를 약간 돌렸고
오래오래 기다려야만 한다는 뜻인지
앞발로 마른 땅을 두세 번 천천히 긁었다.
지혜가 흘러넘쳐 이제 세상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노쇠한 노인과
지혜를 익힌 적이 없어 앞으로 무수히 자빠지기만 할 어린아이처럼
우리는 나란히 앉아 빗살 모양의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요다같이 웅크리고 앉은 토끼는 끝내 별 말이 없었다.
수많은 이의 아우성 같은 핏빛 기운이 먼 동쪽 하늘에 비치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세상을 점령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