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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라예프 사건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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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3332672 843 -26-257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열람신청 후 1층 대출대) 이용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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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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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가장 정직한 증언자, 빅토르 세르주의 대표작 국내 초역
■ “『툴라예프 사건』은 끊임없이 재발견되었다가 다시 잊히기를 거듭해 온 경이로운 소설이다.” ― 수전 손택

대숙청의 광풍 속에서 울린 한 발의 총성
역사상 가장 거대한 권력 기계에 맞선 인간 존엄의 기록

“섬뜩할 정도로 날카롭고 푸르스름한 초승달이
마치 완벽한 목의 선처럼 밤하늘 위로 떠올랐다.
루블료프는 생각했다. 불길한 달이로군.
공포란 정확히 밤처럼 찾아온다.“ (본문 중)


20세기 혁명의 소용돌이 한복판에서 아나키즘 운동과 볼셰비키 혁명에 온몸을 던졌으나, 끝내 스탈린 체제의 독재와 관료화에 맞서다 투옥되고 추방당했으며, 남은 생을 망명객으로 떠돌아야 했던 지식인 빅토르 세르주. 그의 대표작 『툴라예프 사건』이 마침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비평가 수전 손택이 “20세기의 가장 매혹적인 도덕적·문학적 영웅 가운데 한 사람”이라 일컬은 세르주에게, 소설이란 무엇보다 “입 없는 자들, 침묵당한 자들에게 목소리를 돌려주어야 할 책무로서의 진실” 그 자체였다. 대숙청이라는 역사의 가장 참혹한 정점을 무대로 삼아 거대 권력의 작동 원리를 서늘하고도 희비극적으로 해부하는 이 작품은, 전체주의의 공포와 그 안에 도사린 모순을 누구보다 내부자의 시선에서 정직하게 증언한다. 오늘날 『툴라예프 사건』이 아서 쾨슬러의 『한낮의 어둠』, 조지 오웰의 『1984』와 나란히 전체주의의 공포를 그려낸 20세기 정치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동안 국내 독자에게 소설로는 단 한 번도 소개된 적 없던 세르주의 문학 세계는 기존의 정치·사회 소설이 밟아온 궤적과 뚜렷이 갈라선다. 비평가 존 버거가 정확히 짚었듯 세르주는 인간을 결코 “역사적 힘의 익명의 대행자”로 다루지 않았다. 노동자에서 변호사, 배신자, 영웅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만난 모든 이에게 깊이 공감했기에, 상투적인 전형을 빚어내는 일이 방법론적으로 불가능했던 작가”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 소설은 체제의 폭압을 건조하게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거대한 권력 기계의 톱니 아래에서 기묘하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끝내 공포로 물들어가는 인간들의 춤을, 그리고 그 춤을 감싸는 경이로운 자연의 묘사를 유려하게 그려낸다. 눈앞의 절망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를 저 별들로 이끄는 서정적 비상과 우주적 동경”을 함께 품은 이 신비롭고 시적인 서사 속에서, 차디찬 정치적 현실에도 인간성을 놓지 않으려는 세르주 특유의 뜨거운 휴머니즘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떠오른다.

“신문들은 담담하게 ≪툴라예프 동지의 때 이른 사망≫을 알렸다.
첫 번째 비밀 수사는 사흘 만에 67명의 체포자를 만들어냈다.“ (본문 중)

고결한 이상을 잃은 인간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거대하고도 쓸쓸한 정신적 황무지


소설은 “모든 불행은 인간이 생각한다는 데서 비롯된다”는 서늘한 통찰과 함께, 눈 덮인 모스크바의 어느 겨울밤 고위 관료 툴라예프가 정체 모를 총탄에 쓰러지며 시작된다. 무결점의 철권통치를 과시하던 전체주의 권력은 사건 직후,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는 ‘거대한 음모’를 조작해내기 위해 방대한 수사 기계를 가동한다. 그렇게 단 한 발의 총성은 지구 육지의 6분의 1에 달하는 광대한 대륙 전체를 광기 어린 대숙청의 소용돌이로 물들여 간다. 툴라예프 살인 사건은 이를 해결하려는 자, 의심하는 자, 저지른 자, 저항하는 자, 외면하는 자, 그리고 이를 발판 삼아 더 높은 권력을 움켜쥐려는 자들에게 겹겹이 에워싸이고, “공포란 정확히 밤처럼 찾아온다”는 고독한 독백처럼 끝 모를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오르기를 되풀이한다. 독자는 권력의 그물에 걸려든 인간 군상의 밀실 같은 심리적 공포를 생생히 체감하는 동시에, 정교하게 직조된 한 편의 누아르를 읽는 듯한 압도적 몰입과 서사의 쾌감을 함께 맛보게 될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이야기는 순전한 허구가 아니다. 소설의 방아쇠가 된 익명의 총성은, 1934년 레닌그라드 당 지도자 세르게이 키로프가 암살된 실제 사건을 강하게 환기한다. 스탈린은 이 암살을 구실 삼아 ‘올드 볼셰비키’를 비롯한 수많은 이들을 숙청의 제단에 올렸고, 세계사에 유례없는 대숙청과 여론 조작용 재판이 그 뒤를 이었다.

아나키스트에서 혁명가로, 그리고 추방된 증언자로
한 권의 소설에 새겨진 세르주의 생애

“삶은 결국 우리의 비천한 흙더미를 이겨낸다.” (본문 중)


『툴라예프 사건』이 지닌 서늘한 진실성은 작가 자신의 삶에서 길어 올린 것이다. 러시아 급진주의자 망명객의 아들로 벨기에에서 태어난 세르주는 청년기에 아나키즘에 투신했고, 이후 볼셰비키에 합류해 혁명의 심장부에서 코민테른의 언론인이자 편집자, 번역가로 일했다. 그러나 좌익반대파에 가담한 그는 스탈린 체제에 의해 당에서 축출되고 두 차례 투옥되었으며, 오렌부르크로 유형에 처해진다. 그를 침묵의 심연에서 건져 올린 것은 로맹 롤랑을 비롯한 유럽 지식인들의 국제적 석방 운동이었다. 1935년 파리에서 열린 국제작가대회를 계기로 그의 이름은 세계에 알려졌고, 이듬해 세르주는 마침내 소련을 떠날 수 있었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여정 또한 작품 못지않게 극적이다. 세르주는 1940년 파리에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나, 나치의 유럽을 피해 대륙을 가로지르는 망명길에 오르며 원고를 품고 다녀야 했다. 끝내 멕시코에 정착해 작품을 완성한 그는, 그러나 생전에 이 책이 출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947년 멕시코시티에서 가난 속에 세상을 떠났고, 『툴라예프 사건』은 그로부터 이듬해인 1948년에야 비로소 빛을 보았다. 소설을 관통하는 절박함과 정직함은, 자신이 살아낸 시대를 끝내 증언하고자 했던 한 인간의 마지막 안간힘에 다름 아니다.

세월을 견디는 저항의 문학,
그리고 정교한 한국어의 결


『툴라예프 사건』은 스탈린주의 숙청을 다룬 허구 문학 중 가장 뛰어난 걸작이자,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사 문학의 고전”으로서, 스탈린주의라는 거대한 단일 체제가 어째서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었는가를 가장 문학적인 방식으로 증명해낸다. 이번 한국어판은 원작이 지닌 결을 조금도 흘려보내지 않으려는 치밀하고 정교한 번역을 통해 완성되었다. 불빛 같은 통증이 뒷덜미에 박히는 듯한 정치적 긴장감에서부터 행간에 스민 시적인 영혼의 언어에 이르기까지, 세르주가 벼려낸 묵직한 울림은 아름다운 한국어 문장으로 온전히 되살아났다. “인생에는 패배의 한복판에서조차 모든 것을 희망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 미래는 소진되지 않는다”는 소설 속 문장처럼, 이 책은 암흑의 시대 한가운데서도 삶과 인류애의 가치를 치열하게 되물으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오래 지워지지 않을 여운과 한 점의 등불을 건넨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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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모든 불행은 인간이 생각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당신도 모르는 사이 당신 안에 생각하는 어떤 존재가 있어서, 문득 침묵하고 있던 뇌에 짧고 시큼하며 견딜 수 없는 문장을 하나 내뱉는 데서 비롯되며, 그 뒤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되어버린다.
[P. 18] 정의는 분명 마르크스에게 있을 터였으나, 로마시킨은 거기서 정의를 찾아내는 법을 알지 못했다. 정의는 혁명 속에 있었고, 레닌의 영묘에서 깨어 있었으며, 수정관 아래에 누워 있는, 분홍빛이 감도는 창백한 레닌의 방부 처리된 이마를 비추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경비병들이 그를 지키고 있었는데, 사실 그들이 지키고 있던 것은 영원한 정의였다.
[P. 29]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슬픔에 사로잡힌 로마시킨은 생각했다. ≪저 사람, 거짓말을 하고 있군!≫ 그리고 자신의 대담함에 겁을 먹었다. 다행히도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