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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노력과 투혼이 발휘된다면……?

우리 삶은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게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노력과 투혼이 발휘된다면 그 결과는 그 자신과 사회에 오히려 재앙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초기 불교에 의하면 붓다의 깨달음은 나를 비롯하여 우주 삼라만상에 독립적인 존재는 단 하나도 없다는 ‘인연 즉 연기법(緣起法)’이다. 연기법은 한마디로 상호작용이다. 연기법, 현대의 과학인 양자론, 그리고 게임이론은 겉보기에는 무관해 보이지만, 이 셋은 ‘관계’, ‘사건’, ‘상호작용’이라는 핵심 개념을 공유한다. 이 셋은 고대와 현대, 과학과 철학, 이론과 실제의 분야에서 너와 나는 독립적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옳은 게 아니라, 너와 나는 독립적일 수 없다는 ‘관계론적 세계관이 옳다’는 진리를 웅변하는 것이고 그 핵심 개념의 종착점들은 결국 ‘사랑이고 자비’라고 주장한다.

불교란 무엇인가? 한국에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초기 불교인 『니까야』와 『아함경』을 통하여 붓다의 깨달음은 ‘인연(因緣) 즉 연기법(緣起法)’임을 밝힌다. 연기법은 인과(因果)와는 다른 상호작용이다. 상호작용의 다른 표현은 ‘사건이고 관계’이다. 연기법은 나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의 모든 존재가 실체가 있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사건으로 잠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기법의 다른 표현이 공(空)이고 무상(無常)이고 중도(中道)임을 밝힌다. 팔만대장경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연기법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서양의 과학과 철학이 제1 원인을 찾아왔으나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 양자론에 이르러서야 제1 원인은 없고 모든 존재는 사건으로 잠시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는 연기법과 뚜렷하게 일치하는 설명이라고 하고 있다. 이처럼 연기법과 양자론은 우리 눈앞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 모든 존재의 실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심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연기법과 양자론은 ‘너와 나도 사건으로 존재하게 되므로 너와 나는 둘이 될 수 없다.’라는 걸 밝히는 것이기 때문에 ‘너와 나는 공존해야 한다’는 당위성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이는 우리를 자연스럽게 윤리와 도덕적인 삶에 이를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연기법은 ‘사랑과 자비’라는 것이다.
윤리와 도덕적인 삶은 선언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살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실천이 수반되어야 하는데 윤리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방향과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 게임이론이라고 하고 있다. 저자는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를 이해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결을 무작정 시도한다면 문제는 점점 더 해결 불가능한 수렁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바와 같이 나의 이기심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도, 반대로 모든 종교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원수를 사랑하고,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내밀며 무조건적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것도 삶의 답이 될 수 없다는 걸 밝힌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결과도 상호작용의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상호작용 하기 전까지는 이기심이나 이타심의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연기법, 양자론, 그리고 게임이론은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지만, 이 셋은 ‘관계’, ‘사건’, ‘상호작용’이라는 핵심 개념을 공유한다. 연기법, 양자론, 게임이론은 고대와 현대, 과학과 철학, 이론과 실제의 분야에서 너와 나는 독립적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이 옳은 게 아니라, 너와 나는 독립적일 수 없다는 ‘관계론적 세계관이 옳다’는 진리를 웅변하는 것이고 그 핵심 개념의 종착점들은 결국 ‘사랑이고 자비’라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