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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連)과 결(結) : 김종규 x 우동선 대화 이용현황 표 -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로 구성 되어있습니다.
등록번호 청구기호 권별정보 자료실 이용여부
0003340027 720.2 -26-27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0003340028 720.2 -26-27 서울관 인문자연과학자료실(314호) 이용가능

출판사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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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은 ‘연(連)’이 맺어지고 그 연이 연결되고 짜이면서(結) 만들어지는 어떤 부산물이다
2024년 11월 23일 10시 30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건축과의 강의실 3개를 터서 만든 강연장이 학생과 교수진으로 차 있다. 1999년 1월부터 2024년까지 26년 동안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한 김종규 교수의 최종강연 자리이다. 김종규 교수는 ‘연과 결’이라는 주제로 1시간 반에 걸친 강연을 했다. 준비된 피피티만 286장.
“제가 건축을 시작한 지 지금까지 45년 정도 됐습니다”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한 김종규는 그 45년 동안 ‘연’이 맺어지고 그것에 연결되고 짜이면서 건축이라는 부산물이 만들어졌는데 그 과정의 이야기를 하겠다며 강연을 진행했다.
이 책은 이 최종강연에서 시작된다.
최종강연 이후 2025년 1월과 2월 두 달 동안 같은 대학의 우동선 교수는 김종규와 네 번에 걸쳐 대화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제자, 김종규의 설계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힌 건축가도 참여해 건축은 물론 좋아하는 것, 최근의 관심사까지 김종규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나누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글로나마 김종규의 여러 모습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김종규는 우리나라 최초로 영국의 AA 건축학교 5년 전 과정을 마치고 영국왕립건축가협회 정회원이 되어 돌아온 건축가이자 교수이다. 그가 돌아온 1993년 무렵 우리나라에서는 건축 이론에 대한 갈증, 제대로 된 건축 교육에 대한 요구, 다소 부조리하게 작동되던 건축계의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 등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야말로 한국 건축계가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몸짓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었다.
비록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실질적 당선안으로 선정된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 기념 현상설계(1996),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해 ‘하꼬방’ 같다는 건축주의 혹독한 비평을 들었지만 기존 건축 구법과 다른 접근법으로 주목받은 순애원 노인치매요양시설(1997)을 비롯해 의재미술관(2001), 카이스갤러리(2001), 파주 자유아카데미(2003), 대구보건대학 프로젝트(2002~2004)와 다양한 아모레퍼시픽 프로젝트(2004~2017), 아름지기 통의동 사옥(2013) 등 김종규의 작업은 작업에 담긴 개념과 다소 실험적인 구법으로 매번 건축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국 건축계의 문익점 같은 존재, 김종규
고려 말 중국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붓두껍에 몰래 숨겨온 문익점처럼 김종규는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면서 여러 건축가가 화두로 삼은 ‘랜드스케이프’, ‘엠티네스’, ‘폐허’와 같은 개념을 들여오고, AA 건축학교의 스튜디오 체계를 전파했다. 이런 그의 영향력을 빗댄 말이다.
김종규는 AA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큰 설계사무실에서 실무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폴리테크닉 오브 노스 런던(PNL. Polytechnic of North London, 현 런던 메트로폴리탄대학)의 강의 제안을 받는데 김종규의 졸업 작품을 본 PNL의 교수였던 플로리안 베이겔의 제안이었다. 이 인연은 파주출판도시를 비롯한 1990~2000년대 초반 우리 건축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김종규와 플로리안 베이겔은 국내외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했으며, 그들의 이론적 기반은 국내 여러 건축가의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김종규는 1995년 SA(서울건축학교)의 스튜디오 체제 교육 체계를 마련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당시 활발하게 활동하던 30, 40대 건축가들이 건축적 이론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SA는 후에 한국예술합학교 미술원 건축과로 발전했다. 30, 40대 건축가들의 이론적 기반 토대는 파주출판도시 설계지침으로 이어지고, 헤이리아트밸리 현장으로 연속된다.
뿐만 아니라 김종규의 등장은 학생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의 제자 상당수를 영국 유학으로 이끌어 지금 현재 우리 건축계의 층이 한층 두터워지게 했다.
네 번의 대화와 김종규의 최종강연으로 구성된 이 책은 45년에 걸쳐 형성된 건축가로서 김종규와 교수로서 김종규의 모습 전반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때론 옆자리 앉아 편안히 얘기하는 농담처럼 때론 진지한 이론가처럼 ㅤㄸㅒㅤ론 엄한 선생님같은 모습으로 주고받는 대화가 흡인력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우동선의 편안한 대화법은 다소 사변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재미를 준다.
책을 먼저 본 민현식 명예교수는 “우동선의 대화 방법은 이론가들이 흔히 다루지 않는 사소함, 일상, 미뤄두었던 뒷이야기, 밝히기 어려운 고백, 무관한 듯 보이는 해프닝에 주목”하는데 이런 태도는 건축의 리얼리티에 가장 가까이 이끄는 길이라면서 대화를 이끈 우동선 시선의 독특함이 매력적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책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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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65] 그때 그런 기억은 나요. 술자리에서 민 선생님하고, 랜드스케이프에 관심이 있었으니까 그 얘기를 하면 한국적 랜드스케이프 얘기를 많이 하셨죠. 그런데 나는 이게 “내가 하고자 하는 건 그런 개념이 아니다.” 건축에서의 이런 얘기들을 좀 한 적이 있어요.
[P. 84] 김준성 선생님이 1991년에 귀국하고. 김종규 선생님이 1993년에 귀국하고. 최욱 씨가 조금 나중이네요. 이분들이 IMF 전에 들어오는 것이잖아요? 이것 하고, IMF가 현대건축의 획기(劃期)인 것 같아요. 김종규 교수님이 지금 유일하게 AA를 오래 다니신 분이잖아요.
[P. 99]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을 도시에서 어떻게 볼 거냐’, ‘명동성당이라는 오브제랑 내가 만들어 제안하는 것과 관계를 어떻게 맺을 것이냐’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