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 64] 나는 별생각 없이 옆에 있던 리모컨을 들고 TV를 켰다. 아침에 하는 재미없는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넘기다가 뉴스에서 채널을 멈췄다.
뉴스에서는 전라남도 진도군 근처의 바다에서 ‘노을호’라는 대형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하고 있다는 속보가 나오고 있었다. 노을호는 어제저녁 인천항을 출발해서 제주도로 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현실성이 없는 이야기라서 나는 잠시 멍하니 뉴스 화면을 응시했다. 그 배가 어제 내가 탔어야 할 배였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에 경련이 이는 것을 느끼고서야 비로소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달려갔다. 바닥에 있던 휴대폰을 붙잡았다. 두 손이 덜덜 떨렸다. 휴대폰을 열고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가장 최근에 전화한 사람의 번호가 떴다. 현수였다. 나는 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현수의 휴대폰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민규와 진호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마찬가지였다.
[P. 111] “그러게 가난한 애들이 뭐하러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
그들이 나를 향해 조롱했다.
“노을호 진짜 지겹다. 그만 좀 해라.”
“유족들이 자식들 시체 팔아서 정치에 이용해 먹네.”
나는 손을 내저었다.
하지 마세요. 나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 목소리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지겨우니까 그만하라고.”
지겨워? 뭐가 지겨운데?
“노을호 얘기 이제 지겹다고.”
입 다물어 제발!
나는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으나 말이 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제발 그만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