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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자어류략(朱子語類略)』은 주희(朱熹, 1130〜1200)가 제자들과 강학하면서 나눈 문답을 수록한 『주자어류(朱子語類)』 가운데 「훈문인(訓門人)」에 해당하는 조목을 상·하 2편으로 나누어 필사한 책이다. 『주자어류』는 주희 사후 제자들이 각자 기록한 어록을 바탕으로 성립한 책으로, 남송의 여정덕(黎靖德, 1226?〜1277)이 여러 어록(語錄)·어류(語類) 계열 자료를 종합하고 중복을 산정(刪定)한 뒤, 26문(門)으로 분류하여 함순(咸淳) 6년(1270)에 140권본 『주자어류대전(朱子語類大全)』으로 간행하였다.

『주자어류』는 이기(理氣)·귀신(鬼神)·성리(性理)·학(學)·사서오경(四書五經)·역사(歷史)·문장(文章) 등 주희 학문의 여러 영역을 포괄한다. 그 가운데 권 113부터 권 121까지는 「훈문인」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주희가 문인들에게 학문과 수양의 방법을 깨우쳐 준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훈문인」에는 독서와 강론에만 치우치지 않고 몸과 마음을 근본으로 삼아 공부해야 한다는 주희의 학문관이 잘 드러난다.

2. 저자

주희는 남송대의 대표적인 유학자이자 성리학의 집대성자로,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 등이다. 복건성(福建省) 우계(尤溪)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부친 주송(朱松, 1097〜1143)에게 유교 교육을 받았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호헌(胡憲, 1086〜1162), 유면지(劉勉之, 1091〜1149), 유자휘(劉子翬, 1101〜1147) 등에게 배웠고, 한때 불교와 노장 사상에도 관심을 두었다. 이후 연평(延平)의 이통(李侗)을 찾아가 배우면서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 계통의 학문을 접하였고, 이를 계기로 유학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는 데 전념하였다.

주희는 젊은 나이에 과거에 급제하여 복건성 동안(同安)의 주부(主簿)로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평생 실제 관직에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고, 대부분의 생애를 강학과 저술에 바쳤다. 그는 장식(張栻, 1133〜1180), 여조겸(呂祖謙, 1137〜1181) 등과 학문을 토론하며 성리학을 심화시켰고, 육구연(陸九淵, 1139〜1193)과의 논변을 통해 자신의 학설을 더욱 정밀하게 다듬었다. 또한 남강(南康) 재임 시기에는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을 재건하여 성리학 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주희의 학문은 이기론(理氣論), 심성론(心性論), 수양론(修養論), 경전 주석학을 포괄하며, 특히 『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에 대한 주석을 집대성한 『사서장구집주(四書章句集注)』는 이후 동아시아 유학의 기본 경전 해석 체계가 되었다. 이 밖에도 『근사록(近思錄)』,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주역본의(周易本義)』, 『시집전(詩集傳)』, 『초사집주(楚辭集注)』 등 여러 저술과 편찬서를 남겼으며, 그의 글은 뒤에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으로 정리되었다.

주희의 사상은 중국뿐 아니라 조선과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에서는 주희의 경전 해석과 성리학 체계가 학문과 정치 이념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으며, 그의 학설은 오랫동안 지식인 사회의 표준적 학문으로 받아들여졌다. 한편 주희가 제자들과 강학하면서 나눈 문답은 후학들에 의해 기록되어 『주자어류(朱子語類)』로 편찬되었다.

3. 형태적 가치 및 특징

본서는 2권 1책으로 구성된 오침안(五針眼)의 선장본(線裝本)이다. 표제(表題)는 ‘어류략(語類略)’이며, 권수제는 ‘주자어류략(朱子語類略)’이다. 필사본(筆寫本)이며, 무계(無界), 무어미(無魚尾)이다. 행자수는 12행 자수부정(字數不定)이다. 권수제면에는 장서인(藏書印) 「조창홍인(趙昌弘印)」이 날인되어 있다.

편명은 「훈문인상(訓門人上)」과 「훈문인하(訓門人下)」로 이루어져 있다. 「훈문인」은 학문을 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태도와 공부의 실제를 강조한다. 특히 책과 문자에만 매몰되는 태도를 경계하고, 독서와 강론을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에 실질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또한 학문은 일시적인 이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 가며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훈문인」은 주희의 성리학적 공부론, 독서론, 수양론이 문인 교육의 실제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본서는 『주자어류』 가운데 이러한 「훈문인」 부분만을 상·하 2편으로 나누어 필사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며, 이는 『주자어류』가 조선에서 단순한 사상서나 어록집으로만 읽힌 것이 아니라 실제 강학과 수양을 위한 학습 자료로 활용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해제: 임윤수, 감수: 옥영정)

4. 참고자료

• 김문식, 조선본 『朱子語類』의 간행과 활용, 사학지, 43, 2011, pp. 63〜87.

• 박성규, 주희 『주자어류』 (해제). https://terms.naver.com/list.naver?cid=41893&categoryId=41905&so=st4.asc (접속일. 2026. 6. 4.)

• 한국민족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 (접속일.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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